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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우주를 데려온 건 차가 쌩쌩 달리는 시골길,

갓길도 없는 그 시골길에서 몸이 반쯤은 차도에 있는 채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곧 죽을 것같았다.

깜박이를 켜고 차를 세운 후(나의 안전을 위해 필수였으니까)

다가갔을 때 나에게 오지 않았다면

우주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댓가가 없어도 기뻤던 건

길에서, 혹은 동물보호에서

그냥 스러졌을 생명들이

조금 더 살아있을 수 있는 데에 내가 역할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그랬다.

나는 정말 그랬다.

나는.....길에서 스러져갈 생명들이 나 때문에 살아있는 게 너무 기뻤고 좋았다.

나는 그랬다.

나는 그랬다.....

 

 

2.

나는 오늘 건강하고 생생한 한 생명을 죽였다.

2년 전에 개구리를 치어죽인 후 심리치료를 받았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라니를 사고를 무릅쓰면서까지 한 번도 치지 않았는데

나는 오늘 개를 치어죽였다.

 

여성영화제에 갔다가 엄마를 만나고

행복하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하늘의 기숙사행에 동행해야지

옆자리 앵두랑 같이 노래도 부르면서

정말 평화롭고 행복하게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가던 시간은

서울로 나가던 차들이 막히던 시간.

강화로 들어가는 나는 그냥 차없는 도로를 쌩쌩 달리면 되었다.

속도위반만 조심하면서.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어.

이제 와서 재구성하는 중이야.

왜냐하면 그 개는 갑자기 앞에 쑥 나타났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다른 아무 일도 안하면서 전방주시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에서 개가 쑥 나타난 거야.

나중에야 알았다.

아직 따뜻한 몸으로 심장이 뛰는 이름 모를 개를 차에 싣고

24시간동물병원에 가기 위해 유턴을 하려는데

반대천 차선엔 주차장처럼 차들이 서있었던 거야.

이름모를 그 개는

서있는 차들 사이를 지나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선 거야.

나는 그래서 그 개를 볼 수 없었던 거지.

 

개가 차에 부딪는 소리는 컸다.

충격도 컸다.

나는 절망한 채로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 뒤로 다른 차가 왔고

그 차의 진로는

내가 방금 친 그 개를 또 칠 것같아서

얼른 차에서 내렸는데

다행히 그 차도 나처럼 깜박이를 켜고서 멈췄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친 개가 움직였다.

나는 다행이다 생각하며 뛰어갔다

뒷차 운전자는 사실 반대편 차선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불안하게 뛰어다니는 개를 구하기 위해서

유턴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친 개를

치어서 쓰러진 개를

그 이전에 팔짝팔짝 뛰는 상태에서 먼저 발견한 후

구하기 위해서 내 방항의 차선으로 온 사람이었던 거다

 

함께 있던 앵두는 울면서 빨리 개를 병원에 데리고 가자고 했고

그남자는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름 모를 개를 안아 차에 태우고

22분 거리에 있는 24시간 동물의료센터에 갔다.

가는 동안 막내 앵두는 개에게 힘을 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해서 들은 이야기는

이미 심장이 멎었다는 것이었다.

 

심폐소생술을 할까요?

의사가 물었다.

나는

그럼 살 수 있나요?

물었고...

의사는 가능성이 많이 낮다고 했다.

 

그럼 제가 그냥 집으로 데려가겠습니다,라고 했고

의사의 허락을 구한 후

카드결제를 준비하면서

심야진료라 기본진료비도 많이 나오겠지 싶었는데

그냥 가라고 해서

죽은 개를 차에 싣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나흘만에 만난 우주가 무척 반가워하면서

내 옆에서만 맴돌았다

배변패드에 쉬를 잘해서 간식으로 상을 주고나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우주를 보며 살짝 울었다

 

방금 전에

너처럼 살아서

너처럼 나를 빤히 볼 수 있는 어떤 애를

내가 죽였어.

우주야.....

그래서 내갸 지금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무명강아지는 내일 집 앞에 묻어주기로 했다.

불법이라고는 하지만

그래, 매립용 봉투에 넣어서 버리는 게 합법이라고는 하지만

시신이라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고 해도

무명개의 시신이  쓰레기장으로 가는 건 피하고 싶었다.

죽어서라도 우리 집에 있으면 좋을 것같다.

이 곳은 무명개가 있던 그 거리만큼

위험하지도 않고 삭막하지도 않으니까.

 

평생 쌓아온 공든탑이 무너진 기분이다.

내가 생명을 죽이다니.

사고당시의 상황이 계속 리와인드 되면서

나는 반복해서 후회, 또 후회를 하고 있는 중.

그리고 이런 후회들은 부질없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가정이니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안녕, 평화를 빕니다. 무명강아지님.

정말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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