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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 밀린 작업일지 쓰기

일이 너무 많다.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일은 너무 많아서 자꾸 펑크를 낸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인간들을 참 싫어했는데 내가 그런 인간이 되어가고 있구나.

싫은 인간형이 되지 않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런 짓을 안하는 방법

둘째, 기준을 완화하는 방법.

나이들어 자기의 원칙을 하나씩 포기하다보면 인간은 망가지는 법이다.

나는 망가지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 몸이 못 견디는 거지.

 

1. 7월 22일 금요일

원래 일정: 10시부터 2시까지 중등교육, 4시부터 6시까지 인권영화 상영회 진행

그런데 갑자기 본심회의가 아침 10시로 잡혔다.

첫번째 일정의 경우 교육참여자인 중학생들이 너무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는 관계로

금,토,일 집중 교육을 잡고 동료들을 보조교사로 섭외한 상태였기에 

먼저 시작하게 하고 나중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본심이 몇시간이 걸릴지 담당자에게  문의를 했지만 답은 없었고

본심이  너무 늦게 끝날 상황에 대비해서 새벽에 상영회 진행 시나리오를 작성.

작성완료 후 동료에게 혹시 모를 사고가 생겼을 때 대신 진행해줄 것을 부탁하는 메일발송.

진행하기로 했던 상영회는 다섯 편의 인권영화를 시민들과 함께 보는 것으로

시작 전에 상영회의 의미를 설명, 그리고 각각 영화설명 후 감상, 그리고 인권해설을 하는 식.

영화선정, 배급사에 연락해 상영료 지불하고 영화수급, 그리고 대본 작성.

이 모든 일에 드는 품이 15만원이었다. 

결국 이 모든 일의 총화인 상영회 진행은 동료에게로 넘김. 

본심은 6시에 끝났고 다행히 동료는  상영회를 잘 진행했다고 함.

중간에 영화 하나를 잘못 트는 실수. 그래도 관객들이 너무 좋아했다니 다행.

 

본심은, 글쎄, 심사위원 중에 독립피디가 있어서 약간  긴장했지만

무리없이 잘 진행이 되었다.

몇 편 구제하고 싶은 작품이 있었는데 그냥 넘긴 게 나중에 미안했다.

마지막에 한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 둘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토론하는 것을 보면서

뒤늦게 든 후회였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약해...............미안해요 감독님들.

다큐멘터리가 강세. 나는 다큐멘터리감독.

20년 전 존경했던 선배를 면접관으로 만나는 기묘한 경험.

20년 후에도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데. 고되다.

http://www.seoulfc.or.kr/ReferenceLibrary/Notice/index.asp?no=6&mode=view&IDX=1522&p=1

 

2. 7월 23일 토요일

중등교육 이틀차. 

교육일정을 몰아서 잡고, 미디어교사를 더 섭외한 결과 아이들이 놀랍게 변했다.

2001년에 나는 결심했었다.

목동의 한 중학교에 미디어교사로 파견갔다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참여자들을 만남.

그래서 중등교육은 절대 맡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는데 깜박 잊고 맡은 거다.

첫날은 '우리 하은이가 학교에서 저렇게 지내겠다' 싶어서 다 예쁘기만 했는데

그 후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쳐도 자유로운 아이들을 보며

15년전 결심을 잊어버린 스스로를 무척 원망함.

그래서 강사료 포기하고 후배들을 대거 영입.

1모둠에 1강사. 교육효과는 최고. 

아이들이 의욕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촬영을 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리고 출연자를 섭외하기 위해 인터뷰요청서를 고민하며 작성하고

어떻게 말할까 떨려하며 전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디어교육은 진정 전인교육이구나, 라는 점을 발견.

근데 예산이 문제인 거야......

 

3. 7월 24일 일요일

교육 마지막 날. 황당한 일을 겪음.

첫째 둘째날 3학년 세명 중 한 명(A라 하자)만 나와서 영상물의 기획과 촬영을 진행.

셋째날은 편집을 해야하는 날.

그런데 중3 친구 한 명(B라 해야지)이 더 왔다.

A는 "나는 너랑 안해. 다 차려놓은 밥상에 밥숟가락 놓으려고?"

(와, 이 발언에 나는 깜놀.......여기 학교 맞아?)

가능하면 같이 하라는 내 말에 A는 밥숟가락론을 고수.

 

문제는 B는 편집프로그램인 프리미어를 다룰 수 있는데

A는 프리미어에  대해서는 그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상태.

나는 A를 설득했다.

A야, 선생님도  편집기사 고용해서 일해.

너가 연출과 촬영을 맡은 거고 연출 포지션에서 B의 도움을 얻는 거야.

그래도 A가 혼자 하기를 고집하길래

"그래 그래라, 그런데 너 프로그램 배우는 것부터 해야해서 힘들거야

하지만 그건 니 선택에 따른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둬"라고 하고

B를 다른 모둠에  보냄. 

다른 모둠에서는 오퍼레이터로 B를 쓰면서 좋아함.

 

B가 새로이 결합한 모둠을 지도하고 있는데

A의 보조교사의 전언:A가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엄마는 보조교사를 바꾸게  한 후

"A가 해달라는대로 하지 않으면 교장한테 전화하겠다"라고 협박.

그런데 우리는 이미 A가 해달라는대로 해준 상태인 걸.

담당교사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하던 교육 진행함.

선생님들 너무 힘들겠다.

담당선생님은 말씀해주시길 뉴타운의 혁신학교라서 부모들의 학구열이 대단한데

교장선생님한테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다,고.

선생님들 정말 힘들겠다.

A의 엄마가 안됐다.

우리 하은이랑 동갑인 A의 그런 행태를 보며 나는 우리 하은이가 갑자기 좋아짐.

하은이도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지만 그건 자기의 몫,

적어도 수업 시간에 엄마한테 일러서 엄마가 선생한테 전화하게 하지는 않는데.

내가 보조교사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이미 걔 하자는대로 했잖아. 그런데 뭐라는 거야?"

모르겠어요. 거의 쌍욕을 해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교육은 잘 끝났고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됨.

교육 끝나는 날, 감동한 담당 선생님이 

2학기 때 또 하자고 해서 네네 하며 웃었....(지만 다시 부르시면 어떡하지 걱정) 

 

3. 7월 25일 월요일:재난의 날

지난 한주일동안 단어 그대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는데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두 개의 원고 펑크.

그동안 내게는 다섯 개의 써야할 원고가 있었고 

그래서 세 개는 보냈고 두 개는 굽신굽신하며 마감일자를 늦춘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썼어야할 원고는 5개가 아니라 7개였던 거다!!!

미디어교육에 썼던 노트북의 전원을 가져와버려서

우체국에서 택배를 보내고 있던 중에 "원고가 아직 안들어왔다"는 전화를 받고서

작업실에 가서 빛의 속도로 글을 써서 원고를 보냄.

오후에 경비팀 직원분이 문을 두드리시더니 "아줌마, 뭐 잃어버린 거 없어요?" 하심.

(학자들은 나를 감독님이라 부르고 경비팀 직원들은 나를 아줌마라 부름)

가보니.............................

아침에 캡쳐할 테입을 옮기는 데에 수레를 썼는데

내 귀한 카메라와 내 귀한 촬영본 테입 한상자를 길에 떨어뜨리고 온 것도  모른 채

몇 시간을 보낸  거다.

다섯 명의 경비팀 직원들이 다 모여서 나한테 뭐라뭐라 그랬다.

아니, 이 중요한  것을 길에 버리고 오고

몇 시간 째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니!!!

직원중에 한  분은 "내 아들이 mbc에 있는데 카메라는 진짜 귀한 거잖아요?"

아 부끄러워..........

 

3. 7월 26일 화요일

새벽 2시에 잠이 깼는데 카메라 생각을 하니 잠이 안왔다.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만큼 

잃어버렸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곱씹고  곱씹고  곱씹고....그러다보니  잠이 안옴.

그래서 일어난 김에 미디어교육 수료작 코멘트 작성해서 보냄.(이런 건 다행)

 

11시 파견예술인회의:에휴  갈수록 고난. 예술인정체성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1시부터 돈대 답사

아트필름 컨셉 잡고 시나리오 짜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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