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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화에 또 큰 비가 온다고 그래서
작업실이 또 물에 잠길 수 있어 대비하러 작업실에 왔다.
저번 비에 진행중인 작업 문서, 노트북 등등이 물에 젖었고
방을 빌려주신 회장님이 제습기를 두 대나 돌려서 말렸다고는 하는데
종이들은 다 떡이 되었다.
또 큰 비가 온다고 해서 짐들을 소파, 탁자, 책상, 의자 위에다 몽땅 올려두었다.
하은이 병원에 입원해있던 중 작업실이 침수되었다고.
사실 그 당시엔 다른 일들이 너무 커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은이 퇴원하고
경의 장례식을 치르고
집 이사를 하고
......
그리고 이제사 작업실에 와서
종이뭉치가 되어버린 내 써치록들과
자판입력이 잘 되지 않는 내 맥북프로를 다시 본다.
7월 28일 이전이었다면
또 속이 상해서 앓아누웠을텐데
지금은 그냥 그런가 싶다.
반응이 더 늦어지는 듯.
2.
내 안에 아직 풀어지지 않은 감정이 덩어리째 뭉쳐있는 것같다.
아마도 슬픔의 분량이 가장 많을 것같은데
문득문득 눈에서 물이 줄줄 흐르기는 하지만
어떤 감정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 밑바닥에 묵직하게 뭔가가 있는데
문제는 그 감정이 표출되는 게 아니라
다른 감정이 표출된다는 거다.
주로 화다.
화가 난다. 작은 일에도 화가 난다. 참을성이 없어진 것같다.
며칠 전에 우리를 아껴주시는 교회 어머님께서 새 집을 보러 오셨는데
나한테 "짐승들 많이 키우지 말라"고 하셨다.
평소같으면 조용히 있었을텐데 나는
"저희가 사온 것도 아니고 그냥 갈 곳 없는 생명들이라서 거두고 있을 뿐이예요"라고 했고
그 어머님은 tv에서 본, 쓰레기더미에서 개들과 함께 사는 어떤 사람 이야기를 하며
그건 비정상 아니냐고 했고
나는 "제가 알아서 할께요"라고 했다.
또 있다.
지난 금요일에 새로 교육을 시작한 학교가 있는데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가르쳐야해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엄마는 다음 날 가시라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꼭 목요일에 가야겠다고 했다.
목요일 삼량고수업이 끝나고 집에 왔는데 엄마는 옛집에 토마토를 따러 가셨고
한 시간이나 있다 온 후에 일산에 데려다달라고 했고
나는 화는 내지 않았지만
내가 너무 바쁘다고, 지금 가면 차가 너무 많이 막힌다고..
했으나 엄마는 그래도 꼭 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화가 났지만 화를 내지는 못하고 엄마를 모셔다 드렸다.
돌아오는 길에 무의도 한방병원에 들러서
모름이의 엄마와 형제들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할 때다.
가능한한 사람들은 만나지 말고.
3.
병원에 가는 일이 힘겨워졌다.
그냥 병원 가는 일이 부담스럽다.
왜 그렇지?
나를 병원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같아서
병원에 가는 내가 좀 구차하게 여겨진다.
선생님으로부터 그 부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들은 후에
가지 말까.....생각하면서도
쭈뼛쭈뼛 두 번 정도 더 가긴 했는데
안가게 되니 더 가기가 힘들어진다.
작별인사는 해야 할텐데...
4.
낡은 컴퓨터들의 데이터를 백업한다.
데이터를 백업하고나면 컴퓨터들은 버릴 것이다.
남편이 컴퓨터들을 버리겠다고 했을 때만해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데이터 백업을 위해 컴퓨터를 켜는데
켜는 데만도 몇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니터가 문제인 건지 본체가 문제인 건지 라인이 문제인 건지
2대의 모니터, 3대의 본체, 2개의 라인으로
온갖 조합을 다 해보면서 서서히 지쳐간다.
그래서 결국 버리는 거다.
사는 일은 너무 복잡하고
나의 마음은 늘 불균질적인 감정들로 뒤섞여있다.
경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하느라, 아니 실감하느라
사소한 감정들, 사소한 일상들을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
문제적 상황이라는 건 알겠는데...
좀 쉬어야할 것같은데
미뤄진 일들이 너무 많고
벌써 개학이다.
새로이 3개의 수업이 시작되었고
9월이 되면 교육은 6개로 늘어난다.
버겁고 벅차고 힘들다.
그런데 감당해야만 한다.
힘들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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