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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

1.

하은 입원해있을 때 

병원주차장에서 쥐약 먹고 죽어가던 고양이.

동물병원에서 이름:모름

이라고 되어있어서

모름이라고 부르다가

이제 우리가 서로 알게 되었으니

알음=아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주차장 바닥에 죽어있던 노랑이를 수풀에  옮겨두었는데

다음 날 없어서 청소하시는 분이 치우셨나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그동안 아름이네 가족 모두를 돌보고 계셨다 한다.

하은의 보호자로 여기저기 따라다닐 때

물리치료실에 빈 자리가 많길래 "저도  해도 되나요?" 물었더니

"보호자는 보호자일 뿐"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씀하시던 분.

조금 민망해져서 그 후로는 바깥에 앉아 책만 읽었었는데.

 

물리치료실과  수기치료실을 다녀온  하은이는

죽은 아기고양이를 누가 치웠는지를 듣고 와서 알려주었다.

나중에 아름이네 가족을 돌보던 간호사 선생님을 만났다.

엄마와 다섯 아기들.

노랑이가 둘 있었는데 순한 노랑이와 활발한 노랑이 중에서 

순한 노랑이가 죽었다고 알려주셨다.

까망이=모름이=아름이가 얌전한 아이라는 것도.

 

병원에서 퇴원한 아름이는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지내게 했었다.

아름이는 아주 조용했고

늘 숨어있어서

얘가 어디 갔나,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나는 여전히 고양이들에 대해서 신비감, 혹은 미스터리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간이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곤 하니까.

없어진 줄 알고 몇 번이나 놀랐다.

아름이가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은 공간은

책꽂이의 책 위였다. 

아름이가 또 없어져서 찾다가, '드디어 나가버렸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보니 쌓인 책 바로 위에서 자그맣게 웅크리고  있는 아름이를 발견하곤

안심했던 순간.

 

독약때문인지 늘 힘이 없고 눈꼽이 끼던 아름이.

새집으로 옮기자마자  아기고양이 세 마리를 욕실에 가둬두었다.

밖에서 놀러왔다가  눌러앉은 무니, 입양이 안돼  남게된 까미, 그리고 아름이.

그렇게 두고  정동진영화제에 다녀왔더니

욕실 창문이 열려있었고

두 아이는 나가고 없었다.

홀로 조용히  남아있던 아름이.

아름아, 너 외톨이인 거니?

 

아름이는 다행히 하루하루 회복해갔고

이제는 다른 애들과 잘 논다.

다른 애들은 사람을 경계하지만

아름이는 우리들을 반긴다.

컨테이너에 있을 때에도 그랬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조용히 와서  앉아있던 아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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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는 놀다가도 우리가 오면 다가온다. 

은별은 고양이털 알러지가 있어서

좋지만 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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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는 아름이의 가족을 돌보는 간호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아름이 가족들이 무더위에 너무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간식이라도 주고 싶어서 캔을 들고 갔다.

병원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접수대에 맡겨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간호사선생님이 나를 보고 계셨다.

마중나온 거냐고 여쭤보니 아이들 밥시간이라 하셨다.

그래서 아름이네 가족들을 다 볼 수 있었다.

다섯 중에서 독약먹고 죽은 노랑,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는 아름,

그리고 한 마리가 무더위에 잘못된  것같다고 하셨다.

아름이의 엄마와 두 형제들.

무의도한방병원은 바로 뒤에 우거진 숲이 있어서 

고양이들이 지내기 좋을 것같았지만

간호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고양이들이 많이 몰려들어

아름이네 가족들이 지내는 게 쉽지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아름이네 엄마의 수술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름이한테 가족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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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선생님과 헤어지는데 괜히 울컥했다.

떠나온 후에도

처음 차를 세울 때

멀리서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갑자기 이해할 수 없이 자주 울컥한다.

멘탈이 정상은 아닌 듯.

 

2.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름이를 살렸으나

신은 경을 살리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딜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졌던 한가닥 희망.

그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빨리 떠날 줄 알았다면 곁에 좀 있을 걸,  후회된다.

 

입관을 할 때 경의 발을 만져보았다.

화천에서 투병할 때 경의 발은 부어있었다.

신장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했다.

얼굴만 남은 채 천으로 꽁꽁 싸여있던 경의 몸.

역시나 천으로 꽁꽁 싸여있는 경의 발을 만져보는데 여전히 부어있는 것같았다.

경의 여동생은 경의 얼굴을 안았지만

나는 경의 얼굴을 쓰다듬기만 했다.

차갑고 축축했다.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변해버릴 수 있다니.

 

가까운 죽음은 아버지가 유일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새벽이면 깨어서 옆에 자는 언니가 숨을 쉬나 보고 다시  잠들곤 했었다.

그리고 경이 죽었다.

그는 내게 늘 다정했으므로

그의 부재를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외로워진다.

 

어느 새벽엔 남편이 잘 자나 보고 오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이별,  갑작스러운 부재는

늘 이렇게 불안을 내게 남기는 것같다.

 

2016년 워커스와의 인터뷰 때

경과 깊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경이 투병중일 때

워커스 기자에게 인터뷰 녹음본을 달라고 부탁했는데

지우고 없다고 했다.

종이기자는 영상기자들과 달라서  

오디오파일을 그렇게 없애버리나보다.

혹시 나라도 녹음하지 않았을까

안한 걸 분명히 알면서도 폰의 음성파일들을 검색해보는데

거기 경의 목소리가 있었다.

워커스 인터뷰 소리는 아니었다.

 

미디어위가 우리 집에서 회의할 때

받아적지 못해서 녹음을 했었다, 내가.

s형과 열띤 토론을 하면서

조금씩 취해가던 경의 목소리.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너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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