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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다섯번째 영화의 제작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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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2/03
    2016/02/02
    하루

2016/02/02

네버엔딩스토리를 쓰고 있구나...

 

1. 여행

아이 동반 해외여행은 2013년 인도가 처음이었다.

인도여성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숙소가 나온다길래 비행기값만 보태면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하은이를 데려갔었다.

그 때 일주일동안을 울며불며 따라가겠다는 은별을 달래면서 약속했던 게

"다음에 해외여행 갈 때 차례차례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 다음 차례는 한별. 남편의 대만 출장길을 함께 했다.

 

 

그리고 2013년 10월, 남편이 갑자기 실직했다.

그 때 이후로  나의 세계관은 좀 많이 바뀌었다.

뭐랄까 원래 나는 하루하루 열심히 근면하게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그 일 이후, 인생 뭐 별 거 있나, 와 같은 태도로 변했다.

몇년동안 안쓰고 모아뒀던 내 비상금도 남편한테 다 들어갔다.

모으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라는 진리를 그 때 실감.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은별이가 있었다.

은별은 "나는 언제 가?"하며 잊을만하면 물어왔고

그래서 처음으로 오로지 여행만을 위한 여행을 준비했다.

은별이 가고 싶은 나라 1순위는 영국이었다. 공주가 있어서다.

그래서 태국으로 정했다. 비행기값이 싼 나라 중에서 공주가  있는 나라.

상황이  상황인지라 괜한 감정이입까지 되어서 은별이 애처로웠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잘 나갈 때의 자식들인 오빠와 언니들은 이거저거 다 해봤는데

몰락 이후에 태어난 나나 동생은 그러지 못했던 거랑 겹쳐지는 거다.

 

 

<로컬 인 방콕>이라는 책을 구해서 은별에게 주면서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 데려다주겠다"라고 했다.

그래서 은별은 호텔도 '그랑데 센터포인트호텔 터미널21'로 골랐고

(지금 숙소의 세 배 가격이다)

스파도 렛츠 릴렉스에서 했다.

그러니까 언니, 오빠에 비해 몰락한 상황에서

애처로움을 그런 식으로 보상해주고 싶었던 것같다.

 

 

여행 첫날부터 하은은 30바트짜리 쌀국수를 먹어서인지

짜뚜짝시장에서 발맛사지를 200바트 내고 하는데 비싸다고 걱정했다.

그저께 와콜에서 속옷을 사주려고 터미널21에 갔는데

"은별이랑 호텔에만 있었다더니 여기도 와봤어?"라고  물었다.

"응 숙소가 이 건물에 있었거든"이라고 대답하면서 아차 싶었는데

하은은 모르고 그냥 지나친 듯했다.

 

은별이 방콕 마사지샵 노래를 불러서인지

하은도 방콕에서 마사지를 꼭 받아보고 싶다고 해서

오늘 실롬 숙소 근처 마사지샵에 데려갔는데

하은이가 무척 좋아했다.

뭔가 황량해보이고 싼티나는 마사지샵에서 좋아하는 하은을 보며

갑자기 평등감수성이 확 올라가면서

내일 렛츠릴렉스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

인생 뭐  별 거 있나

그리고 어차피 이 여행경비는 11월에 한국에 잠깐 다니러 온 태국 거주 한국인에게

왕창 바꿔둔 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생 뭐 별 거 있나.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이 미워진다.

7월부터 진행되던 일이 10월 1일 실직으로 결말이 났을 때

가장 늦게 안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가장 먼 존재.

오빠는 네가 어떻게 행동했길래 너한테 그랬겠냐고 하지만

(오빠는 남편이 치명적인 실수를 했을 때에도 "유서방 기죽이지 마라"라고 하는 사람)

나의 행동과 무관하게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저버린 그를 떠나지 않는 건 아이들 때문이라는 걸 그도 나도 안다.

슬픈 관계.

 

2. 삐그덕

별 일 없던 어제 하은은 무려 5시간 넘게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같은 자세로 그렇게 오래 있냐"라고 하는 말을

하은은 건강을 염려하는 말로 잘못 알아들었다.

밤 8시에 폭발.

"머나먼 방콕에 스마트폰 하러 온거냐?"

......

모든 게 엉망진창.

관계든 촬영이든 직업체험이든 미래든

모든 게 다 부질없다.

결산도 안할 거다.

나도 삐뚤어질 테다,

라는 자세로 어제부터.

 

또 아침엔 미안해서 잘해주다가 

오후에는 망고스틴을 너무 먹고 싶어해서

멀리 캄펭페까지 다녀왔다.

(참고로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  망고스틴은 엄청나게 비쌈)

정말 모든 게 삐그덕.

이제 오늘만 지나면 집으로.

너무 길었다.

 

3. 꿈

세개의 꿈을 꾸었다.

첫번째 꿈은 밀양. 밀양 어르신들이 우리 집에 와서 주무셨다. 그런데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았다.

나는 미안해하고 어르신들은 괜찮다 이해해주셨다.

두번째 꿈은 피구. 네모가 한 칸 뿐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한 칸에 몰아넣어져 있다.

우리 편과 남의 편이 다 섞여 있다. 나는 아는데 네모 바깥에 있는 우리 편들은

네모 안의 우리편과 남의 편을 구별하지 못해 자꾸 실수한다. 답답하다.

세번째 꿈은 전쟁. 정글 같은 곳에서 우리 편은 쫓기고 있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몇 명 안남은 상태에서 나는 몇몇 병사와 같이 숨어있다.

그런데 갑자기 페르시아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반가웠지만 결말이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꿈 속의 나는 등장인물이면서도 후일담 기록자이다.

그러니까 꿈은 꿈 속 나의 회상인 것이다.

나는 내내 슬퍼하며 그 꿈을 다시 회상하고 있는 중이었던 거다.

 

4. 몸

배변이 안된다. 

2012년에 인도에 갔을 때 일주일 넘게 배변이 안되어서 걱정했었다.

세 끼를 다 먹는데 배변은 안돼.

일주일이 넘어서자 걱정이 커졌고 

내 사정을 안 교수님이 중국인 동료 교수에게서 약을 얻어주었다.

조금 걱정하는 중이었는데 자칭 설사전문가라고 하는 련감독님이

설사 끝에는 원래 변비가 오는 법이니

장을 잘 달래주라 조언.

 

약국에서 안되는 영어로 설염에 바를 연고를 샀고

다리에 붙일 거즈도 샀다.

거즈를 붙이면 정강이가 가려운 게 덜하다.

오늘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온 몸에 두드러기.

점심에 먹은 건 쏨땀,  스시. 저녁에 먹은 건 쏨땀, 스프링롤, 밥, 김치.

두드러기가 몸에 나는 것도 모자라서 두피까지. 가렵다 정말.

눈이 부어오름. 내일 아침에 과연 눈이 떠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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