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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들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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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편지를 받고서 나는 보수 기독교인들이 세월호 미디어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랜덤으로 뿌리는 거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 "혹시 이런 편지 받은 사람 있나요?" 하고 물었고 페이스북 친구들은 "회계하라!"가 반복되는 것으로 봐서 일거리 구하는 회계사인 것같다고 해서 하하 웃고 말았다.

두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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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사무국에서 연락이 와서 "감독님, 요즘 이상한 편지 돌아다니는 거 아시죠?"라고 해서 무슨 편지요? 라고 물었는데 이 편지였다. "감독님을 잘 아는 사람인 것같다"라는 말을 해서 무슨 편지인지 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뭐 이런 내용. 20대 때 장애인동호회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촬영 때문에 한 번, 주점에서 서빙하느라 한 번, 두 번 오프에 나갔었다. 인적 교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당시 동호회 멤버였던, 그리고 지금은 시인으로 활동하는 H님에게 1990년대에 동호회에서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는가 물었고 동호회 붙박이였던 H님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알려주었다.

 

<세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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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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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편지>

한동안 뜸하다가 올 5월에 게릴라메일이 왔다.

"오랜만이야~"라는 다정한 제목이 있길래 클릭했다가 

네 줄을 못 읽고 닫았다.

"

어머 미례야.
너 똑같다.
어떻게 지내니
어쩜 대학 때랑 하나도 안 변했어.
방부제라도 잔뜩 먹은거니?
외모부터 성격까지.

난 진짜 박근혜 최순실 보면서 끔찍했어. 어쩌면 반성이라는 걸 몰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억울해 하잖아.
아마 박근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본인들이 잘못한 걸 모를 거야. 지금처럼 진심으로 억울해 하겠지. 그렇지 않니?

너 여전하다더라.
진짜 몇 명을 죽인거야?
하늘이 무섭지도 않냐? 너 남편이 목사라면서. 목사 빽으로 지옥 안갈 수 있다고 믿고, 막 사람 죽이고 다니는 거야?

너 대학 때도 그렇게 그러고 다니더니.
지금도 권위 있는 남자 옆에 붙어 살면서,
여자후배들 괴롭히고, 그런다면서?
너는 평생 친구 없이, 남자들 옆에 기생해서 사는 게 어쩜 그렇게 똑같니.
남자들 앞에서는 굽실굽실 하거나, 아예 후려서 너 좋아하게 만들거나.

그러면서 니 주면 재능있는 사람들 질투하고. 걔네 괴롭해서 우울증 걸리게 만들고. 미영이 알지? 네가 개박살 냈잖아. 걔 그 이후로 우울증 걸려서 정신 병원 엄청 들락거렸어. 자살시도 한참 하고. 결국 정신분열까지 가서, 얼마전에 죽었어.
걔 일기장에 네 이름만 잔뜩 쓰여 있었다더라. 빨간색 싸인팬으로.

네가 그렇게 사람들 괴롭혀서 얻는게 도대체 뭐니?
남자들이 여자들 강간하고 다니듯, 너는 다른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강간하고 다니고.
네 주변에서 그렇게 너한테 괴롭힘 당한 뒤에 죽은 애가 내가 아는 애만 2명이야.
개네 말고도 더 있겠지.
나 또 어떤애가 우울증으로 약먹고 손목 그었다는 얘기 들었어.
그 애도 니가 괴롭혀서 우울증 걸렸다고 하더라.
도대체 얼마나 세게 괴롭히 길래 우울증 걸려서 정신병원까지 들락거리게 하는거야!

남자들이 여자 한명 놓고 윤간하는 거랑 너가 사람 한명 개박살 내는 거랑 똑같애.
너 살인자야.

 

니가 칼들고 총들고 죽이지 않았으니까, 감옥 안갔지.
지속적으로 괴롭해서 우울증, 정신분열증 걸리게 만들고. 결국 자살하게 만들고.
너가 죽인거 하나님은 다 알지.
네가 살인마라는 거 말이야.


너 자식도 있다면서 무섭지도 않니?
우리가 저주 기도 하고 있어.
너가 사람들 괴롭혔던 만큼 네 자식들이 똑같이 겪으라고.
그래야 공평한거 아니겠니?

너는 이런 말들이 억울하다고 느낄 거야.
마치 박근혜 최순실이 억울해 하듯이.
박근혜는 세월호에 대해 오히려 억울해 하잖아. 여자의 사생활 이러면서.
류미례 보는 줄 알았어. 너는 니가 후배들은 물론이고 선배언니들까지 갑자기 다 화내고 괴롭힌 다음에. 너 스스로 억울해 하잖아.

살인자 류미례.
너는 반드시 지옥에서 죽지 않는 불에 평생 고통스러워 하게 될 거야. 네 아이들도 마찬가지지. 물론 네 아이들은 죽기 전에 그 고통을 맛보게 될 거야. 네가 다른 사람에게 했듯 똑같이 어느날 칼만 안들었지, 인생을 풍비박산 냈듯이. 네가 다른 사람에게 했듯 다른 사람들이 네 애들한테 할 거야.
인생은 인과응보니까

미례야. 똑바로 살아.
살인자 류미례. 똑바로 살아라.

"

 

그리고 여섯번째 편지.

수요일에 오마이와 스토리펀딩에 글을 보내고

금요일에 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데

사무실 Moon이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길래

"왜, 또 pd가 뭐라 그래?" 했더니

스토리펀딩은 별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편지가 또 왔어. 갈수록 상태가 심각해"

 

여섯번째 편지는 아직 받지 못했다.

Moon에게 "만지지 말고 비닐에 잘싸서 가지고 있어줘"라고 부탁했다.

 

첫번째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하하 웃고 내린 후에

두번째 편지를 받고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JP를 찾아갔었다.

편지 때문에 제이피를 만난 거였는데

그 후 그 밤을 생각하면 편지생각은 달아나고

제이피가 생각난다. 

 

영화제 심사회의가 있던 밤이었다.

나는 두번째 편지를 받고서 

내가 관여하는 영화제들에 하나하나 전화를 했고

두 개의 영화제에 그 편지들이 뿌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집행위원장과 사무국장 모두가 편지를 받았던 곳에서는

나와 통화하던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왜 제게 알리지 않았어요? 물었고

그는 이랬다.

"이름도 밝히지 못할 이따위 편지.

알릴까말까 고민하다가 알려봤자 속만 상할 것같아서 그냥 서랍 안에 넣어뒀다"

 

그날 밤 또다른 영화제의 심사회의가 있었고

회의가 끝난 후 그 영화제 사무국장에게도 말을 했다.

편지 안왔나요? 아마 곧 편지가 올 거예요.

미리 말씀드려요.

 

원래 제이피를 만날 계획은 아니었지만

긴 심사회의가 끝나고

내게 오는 편지 얘기까지 한 후라

무척 피곤했고 그리고 제이피가 떠올랐다.

그래 제이피라면 이 상황에 대해서 공유할 수 있겠다.

제이피는 나를 알고 남편을 알고 장애인권운동을 나보다 오래했으니까.

 

제이피의 사무실 앞에서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데

제이피가 언덕 저편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제이피의 집은 사무실과 가까웠다고 들었다.

제이피는 "여기다 차를 세우면 딱지를 안 끊어" 했고

"뭔 소리야? 저번에 여기 차 세웠다가 JY 차에 딱지 붙어있는 거 봤거든?

여기 차에서 얘기하자" 

내가 고집을 피우자

그러면 여기 차를 세우고 여기 들어가자,

해서

제이피 사무실 1층, 창가 자리에 앉아 차를 보면서 얘기를 했었다.

 

제이피는 내가 가져온 편지들을 꼼꼼히 읽고서

"000네." 하고 웃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불안과 의문이 다 사라졌다.

아, 그라면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있겠네.

 

어떻게 하지?

이 편지 말이야 앞에 내 이름 대신에 000 하고서 똑같이 보낼까?

똑같이 무기명으로, 똑같이 애매한 주소 써서.

그러면 최소한 '네가 누군지 알아. 그러니가 멈춰' 정도의 경고는 할 수 있잖아

 

내 말 끝에 제이피는 지체없이 말했다.

하루야. 세상이 나쁘더라도 너는 나빠지면 안돼.

너는 이런 단어 하나도 네 입에 올리면 안돼.

세상이 진흙탕이더라도 네 마음에는 흙탕물 한 점이라도 튀기면 안돼.

 

그럼 어떻게 하냐.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한테 전화라도 하고

아니면 "사실이 아닌데 그냥 잊어버려" 말이라도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 관여하고 있어.

000영화제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편지가 왔나요?" 물어보지도 못햇다. 

나를 잘 모르고

이름만으로 나를 초대한 사람들에게

나는 편지 얘기를 할 수는 없거든.

 

한참동안 우리는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내가 말했다.

형, 그냥 백지 한 장에 "꼬리가 길면 잡힌다"

이렇게 한 줄만 써서 보내면 어떨까?

그건 그냥 속담이고

"당신이 하는 일을 내가 알고 있다"라는 경고는 되잖아.

만약에 형이 말한 000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아니라면

이게 뭐야, 하고 궁금해하다 넘길 것이고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라면

내가 자기 행위를 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잖아.

 

제이피는 "그래, 그래볼래?" 하고서는 막 웃었다.

물론 나는 편지를 보내진 않았다.

그날 그 밤에 제이피랑 얘기를 하고 나서는 마음이 풀렸으니까.

제이피가 말했다.

"또 편지 오면 읽다가 같은 편지인 것같으면 얼른 편지를 다시 넣어버려.

내가 읽어줄께"

 

그 뒤로 편지가 두 번 더 왔다.

5월에 게릴라메일과 페이스북으로 또 편지가 왔을 때

제이피에게 "또 편지가 왔어. 이번엔 게릴라 메일이야" 전화를 했었다.

제이피는 그때 목포에 있었다.

"게릴라메일? 그럼 000이 아닌 거 아니야? 잘생각해봐."

나는 메일을 제이피에게 포워딩했다.

6월말에 제이피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고

7월에 제이피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1월 24일에 다시 편지가 왔다, 고 사무실 Moon이 전해줬다.

두번째 편지까지는 꼼꼼히 읽었지만

세번째 편지부터는 읽지 않았다.

 

뜯어서 사진만  찍고 콘솔박스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어서

꼼꼼히 읽어보다가

그제 새벽에 갑자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피도 없는 지금

이제는 나의 감각을 믿을 수밖에 없다.

 

Moon은 내게 

편지들을 다 읽다보니 기묘한 집착 같은 게 느껴진다,

라는 말을 했다.

경찰조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결심을 하고 그동안 알리지 않았던

가족과 사무실의 다른 동료들에게 알렸다.

 

그동안은 가만히 있었다.

제이피가 000일거라고 말을 했을 때

그게 사실이라면

혹시라도 내가 법적 대응을 해서

000임이 밝혀진다면

000의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장애인권운동을 하고 있지만

누구와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어렵게 단체 하나를 꾸려서 대표를 하고 있지만

존재감없는 상황.

만약에 편지를 보낸 사람이 000이고 그것이 경찰조사를 통해 알려진다면

도덕성이 생명인 운동판에서

그의 사회적 생명은 끝이라고

제이피와 나는 판단을 했었다.

 

경찰조사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그냥 000이 그만 멈춰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제이피는 세상에 없다.

편지를 주제로 한 마지막 대화에서

제이피와 나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000가 아닌 것같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다시 같은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도 없이 

제이피는 떠나버렸다.

 

이젠 혼자만의 감각으로

혼자만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최초의 편지가 온 게 2016년 6월.

 

그리고 2017년 11월 24일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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