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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뤼미에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휀이었던 염승주답게 염승주의 2005년 베스트 무비는 <까페 뤼미에르>라고 했다. 

 

 

얼굴 본지도 몇 년에다가, 그렇다고 앞으로 몇 년 후에 얼굴 볼 것인가 하면 그럴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을 두고 나는 참으로 이러쿵저러쿵 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런 사람이 있긴 하지.

직접 보며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 사람을 가끔 떠올리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영향을 조금 가끔 받고 있는.

난 왜 그런 사람이 하필이면 멸치대가리 염승주일까.

(염승주말고 다른 사람도 물론 있겠지, 예를 들면 존 레논이 그렇고...)

하여간에 나도 <까페 뤼미에르>가 무척 보고싶었다. <킹콩>보다 <까페 뤼미에르>가 더 보고싶다.

 

<까페 뤼미에르>의 광고를 보고 아, 이 영화 보고싶군,이란 생각을 하자마자 시사회신청을 열라 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대여섯군데를 들러, 똑같은 답변을 써놓고, 회원가입을 하는 지랄을 하느라 두어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시사회 시간이 밤12시이니 규민이 재워놓고 나가면 딱 맞겠다, 티켓 두 장 오면 하나는 누굴 줄까, 일본인이랑 같이 보고싶은데 아는 일본인이라고는 하야타형밖에 없고, 이 양반은 밤 열두시에 만나 영화티켓을 건네며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나와 영화가 좋으면 팔짱을 끼고 밤거리를 걸을 지도 모르는 낭만의 상대로는 왠지 끌리지 않는군, 그렇다면 어떡하나, 학교에 일본어 선생을 꼬셔볼까...하는데 시사회에 당첨 안 됐다. 그 후에 들은 소리는 <까페 뤼미에르>가 염승주의 2005 베스트 무비라고.

 

2006년엔(이 까마득한 숫자라니.) 영화를 좀 많이 봐야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영화 보는 습관을 들이기가 힘들다. 영화를 보자면 약 두시간 쯤(집에서 비디오로 볼때나 그렇지 영화관에 가자치면 반나절이나) 꼼짝없이 시간을 묶어두어야한다는 것인데, 애 낳고 키우다보면 금 한 다라이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게 두 시간이라, 이 금쪽보다 귀한 것을 어디 한 군데에 묶어쓰겠다는 과감성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러고서는 하는 짓이 인터넷이다.

인터넷 딱 삼십분만 하고, 책 한 시간, 나머지 삼십분은 차마시며 신문을 봐도 좋고, 손톱 맛사지를 할까, 인생을 음미하며 철학을 생각할까,하고 컴퓨터를 켜고는 두시간 홀랑 인터넷인 것이다. 이놈의 인터넷 정지해도 싸다.(아직 정지하지 못했음)

 

따라서 점점 영화와 나는 멀어지고(언제 가까운 적 있었던가만은) 그냥 이렇게 멀어지는 것이 수순인가보다,하고 생각하였다. 나에겐 내가 감당 못 할, 그러나 너무 가까와져버려 거부할 수는 이미 없는 것이 생겨버렸으니 영화 쯤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영화는, 보면 재미있으니, 보면 또 보고싶고..

요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어서 특히 그런가보다.

요즘 본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어찌나 재미있는지 여러번 보면서도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새삼, 감상의 기쁨이랄까.

(규민이가 아직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보지 못해(귀신때문에 무서워서 중간에 자꾸 빨리 돌려야함) 비디오로 복사를 못하고 있어 이 디비디를 빌려준 누군가에게 너무나 미안함)

오히려 처음 봤을땐, 캐릭터마다 이미지가 과다하게 느껴져서 싫었다. 이게 내가 에스에프나 환타지를 싫어하는 이유인 듯.

그러나 보면 볼수록 드러나는 것은 감정과 일상을 표현하는 섬세함, 세밀함, 풍성함.

섬세하고 세밀하고 풍성한 감정과 일상의 표현이란 창작의 원론 같은 것이다. 결국 아무 데도 더 가지 않았다. 아무리 길고 뛰는 디지털 시대 어쩌고 하지만, 세상은 늘 제자리인 것을. 줄기세포, 인간은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전기용접 따위로 신을 흉내내었다고 하려하다니.

황우석 얘기는 아무 데서도 하지 않는다고 결심했건만, 하필이면 엄마 아빠 앞에서 몇 마디 했다가 대판 싸우기만 했음. 으으으... (아니다, 황우석은 엄마랑 싸우고, 아빠하고는 이명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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