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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팅스

갑자기 문득 오리가 예전에 술 마시다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일본 자전거 여행에서 돌아와 그걸 글로 쓰는 거에 대해 얘기 중이었는데
자전거 여행은 특히나 더 '소중한' 경험이기에 그걸 글로 남겨서
일종의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었다.

흠, 지금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건 꼭 의식적으로 한다기보단 여기 와서
느끼는 바가 있어서, 평소의 여행이라면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에 일기장에
끄적끄적하겠지만 지금은 노트북에 인터넷도 되고 하니 겸사겸사 쓰게 된다.ㅎ

이제 영국에 들어온 지 만 하루가 넘어가는 것 같다.

오사카에서는 여행사에서 예약해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싱글룸에 들어섰는데 어찌나 낯설던지. 자꾸 누군가 나를 뒤따라 더 들어올
사람이 있을것만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뭔가 어색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디 혼자 가서 자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어색함에 옷도
갈아입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혼자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호텔 들어오는 길에 보아두었던 로손에 내려가서 맥주를
사왔다. 사람들이랑 어디 같이 여행을 가면 씻는 문제에 상당히 예민해지다가도
혼자 그렇게 남겨지니 씻기도 귀찮아지고, 기분이 참 묘한것이..

아침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부페식을 먹었다. 공짜로 먹고 자고 하는건데,
욕심을 부릴만도 한데 식욕이 당기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먹고 일어섰다.
보니깐 나처럼 혼자 먹는 사람들도 참 많아보였다. 오사카 공항 입국 심사를
할때부터 보았던 한 여자분이 있었는데 그분도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나처럼 혼자 어학연수를 가는 포스가 느껴졌는데, 말을 걸어볼까
싶다가도 그 분에게서 풍기는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울할 포스에 압도되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그 분이 나를 봐도 그런 암울한 기운이 풍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런던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아침에 좀 늑장을 부려서 발권 시간이 좀 늦어져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좋은 자리를 못 받고 양 옆으로 모르는 사람이 앉아있는 좌석으로 배정을 받았다.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해도 되게 신경쓰이는 자리였다. 잠도 잘 안오고, 영화는 세 편이나
봤다. 식객, 버킷 리스트, 밴티지 포인트. 일본어 자막이 나오는데 들리는 것도 거의 안 들리고
그냥 그림보면서 스토리 대충 짐작하면서 보았다. 버킷 리스트에서는 왠지 멋진 대사들도
나오고 했을 것 같은데 그걸 다 놓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국 심사. 스쿨레터를 요구받았다. 영국에 얼마나 있을 거냐고, 왜 6개월이나 있냐고
묻길래 학교를 등록했다고 말했다. 속으론 내 학생비자를 보고도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
궁금했지만 말이 안 되니 뭐...미화에게 연락을 해야하는데 동전은 없고 지폐밖에 없는 상황.
뭘 사먹고 바꾸기도 어렵고, 환전 카운터에서는 못 바꿔준다고 하고, 결국엔 나 같은 유학생
혹은 출장 온 사람을 픽업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분이 동전으로 바꿔다
주었다. 국내용 전화카드를 어디서 사야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핸드폰으로 걸어주겠다고
해주었던 사람이었다. 내심 그 사람이 자기가 동전으로 바꾸어다 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럼 커미션을 때는 거 아닌가 의심 반 두려움 반이었는데, 허허.

어렵게 미화를 만나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 기차를 타려고 했던 캐논스트리트 역에선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_-;; 처음엔 운전사가 실수한 줄 알고 무거운 짐을
낑낑 대며 반대편 플랫폼으로 다시 옮겨서 전철을 다시 탔는데 또다시 역을 지나쳐 버렸다.
후. 결국 그냥 한 정거장을 걸어서 이동을 했다. 처음 밟아보는 런던 거리. 무거운 짐들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둘러볼 엄두가 안 났다.

........................


어렵게 도착한 홈스테이. 세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12살 난 랜지라는 친구가
나하고 말동무가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서 귀엽다고 해얄지 고맙다고 해얄지.
나름 그간 주워들은 지식으로 영국의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 대화를 시도해보려다
포기했다. 으흐.

내가 등록한 학교?학원?에는 한국인이 대여섯명 정도 있는 것 같다. 나름 눈치를 보면서
접근. 오늘 다운센터까지 동행을 해서 생존 정보들을 주워 모았다. 어허. 모리슨이라는
큰 마트가 내 레이더에 들어와버렸다. 굶어죽진 않을 것 같다. 자취를 할 방과 아르바이트를
좀 알아보면 될 것 같은데 이번 주 다음 주 시간을 좀 두고 알아봐얄 것 같다.

여행은...욕심은 나는데 일단 이곳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더 원하는 것 같다, 내 몸이.

정말 조용한 도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조용하다. 내일은 좀 더 나가서 우체국 위치와
도서관 위치를 파악해보아야겠다. 머릿 속에 지도를 그려보면서.

영국 발음을 알아듣는게 예상한 것보다 더 어렵다. 수업 내용은 원체 기대를 하진
않아서 생각보다 선생들이 더 재미있고 학생들도 적극적이어서,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일 것 같다. 까칠하게 그들 하나하나 분위기 하나하나를 물고 늘어지면 역시나
기대에 못 미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ㅎㅎ 내가 특별한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자각이 들지 않도록 잘 어울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같은 곳에 던져놔도 각자의 습성 습속에 따라 어떻게 적응하는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어떻게
잘 조율할지, 스트레스 안 받으며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서울 떠나기 전에 집회 제대로 참석 못하고 온게 아쉽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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