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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이 되니 공항에서도 이렇게 글을 쓸수가 있다.

어제는 황사때문에 하늘이 뿌옇더니 오늘은 날이 화창한 편인 것 같다.

 

수화물 제한 30KG에 걸릴까봐 노심초사 하며 어젯밤부터 짐을 쌌다 풀었다를

계속 반복했는데 의외로 쉽게 지나갔다. 26.4kg 정도? 왜 이리도 다 못 채운 3.6kg에

미련이 남는지.ㅋㅋ 덕분에 다른 캐리어 하나와 등에 맨 가방 하나는 꽉꽉 채워넣어서

벌써 어깨가 뻐근하다.

 

집에서 여유있게 출발을 해서 부모님과 함께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 공항에 도착.

환전을 하고, 우체통을 찾아 편지를 넣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티케을 발권하고 나니 이제 겨우 4시였다. 비행기는 5시 55분 출발인데. 혼자 떠난다는

생각에 혹여나 늦을까 하는 노파심에 서둘렀더니 이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랫집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때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시간에 대해서도 많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마 그 동안의 여행경험에서 얻은 큰 수확인

것 같다. 안 그랬으면 난 지금쯤 패닉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 워낙 이것저것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면세점에서 무얼 살 것도 없고 아직 비행기 입장은 시작도 않은 시각에 혼자 창가

소파에 앉아 이렇게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가 여전히 낯설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너무나 많이 울어버려서 정작 마지막에 엄마와 헤어질 때는

눈물이 안 나왔다. 뒤돌아서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순간 나도 목이

뜨거워질 뻔 했지만 엑스레이 검사대를 눈앞에 보니 금세 긴장이 되어 감정이

드라이해진다. 결정적으로 내가 핸드폰을 엄마한테 안 넘겨주고 내가 쥐고 들어가는

바람에 엑스레이 검사대에서 다시 밖으로 나가 엄마를 찾으려니 울다 웃는 꼴이

되어버렸다. 씨익.

 

이렇게 쓰고 있으려니 또 눈물이 찔금하는 건,,,런던에 도착하면

이 기분에 좀 변화가 오려나.

 

나름 스스로 내 상황에 거리두기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덜 쿨해지고 더 따뜻해지려고

노력했었는데, 이번에 떠나는 여행은 스스로 거리두기가 잘 안된다. 그래서 계속

찔찔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왜 영국으로 떠나는 거지 질문이 던져지는 것을

무의식중에 꾹꾹 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제 비행기가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비행기 운전은 어떻게 하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운전에 대한 관심이란.ㅋ

이런 걸 보면 영국에 가서도 난 변하지 않고 왠지 평소 일상의 습관들 생각들을

그대로 하며 지낼 것 같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에서 보면 배두나가 사는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한데. 여기서 청소하시는 분들은 역시나 아마도

비정규직이겠지 하는 생각. 그래도 공항에서 일을 하면 무언가 들고 나는 사람들의

기운을 받아 좀 더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

 

지금 보니 비행기가 일본에서 도착해서 사람들을 다 내리고 나면 거기에 다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타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와보고 이런 저런

수속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항은 뭔가 내가 파악할 수 없는, 손에 잡을 수 없는 거대한

덩어리로만 보였는데, 이제 슬슬 공항의 시스템이 파악되고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노동자들처럼 누군가에게 고용된

사람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니 좀 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이젠 공항에 들어와서 뭔가 두렵고 울렁울렁한 마음들은 차차 없어지게 될 것 같다.

 

내일도 다시 탑승 수속을 하려면 뺏다 풀었다 하는 과정을 밟아야 할텐데,

이 많은 짐을 바리바리 들고 풀고 할 생각에,,,으 정말 끝이 없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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