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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그런 말은 없지만 저 같은 경우는 '양심적인 원호 거부자'라고 합니다. 가능한 한 원호를 안 쓰고 서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학교나 관청에 가서 공식 서류를 만들 때는 원호를 쓰게 돼 있어요. 제가 서기로 쓰면 컴퓨터 입력을 못 합니다. 학교 같은 경우 사무 직원들이 그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합니다. "서 선생 때문에 우리가 쓸데없는 것도 다 고치고 입력해야 하나?" 이런 얘기를 합니다. 누군가가 폭력적으로 곤봉 가지고 원호를 쓰라고 위협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가 어쩔 수 없이 원호를 쓰게 됩니다. 불과 몇 년 동안 그렇게 자연스럽게 됐어요. (중략)

여기서는 주민등록 번호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컴퓨터 같은 아주 현대적인 기술과, 천황제라는 전근대적인 군주제 지배가 결부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주제적인 사고방식으로 첨단 기술을 사용하면 아주 효율적으로 인민을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략) 이렇게 컴퓨터로 해 버리고 나면 아무도 저항할 수 없게 됩니다. 주민등록 번호가 비합리적이라고 해서 저항하면, 이 번호 없이는 휴대전화도 못 사고, 티켓 예매도 못 하니까 너무 불편하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거고요. 오히려 주민 번호를 갖고 있는 것을 정당한 시민 취급을 받는 자격처럼 착각합니다.

(중략)

김상봉 교수와 만나 대담을 다 끝낸 뒤에도 김상봉 교수가 그러더군요. "이제 서로 속을 많이 알게 됐고 서 교수님이 저보다 연배가 위이니 '형님'이라 부르고 싶다."고요. 그 제안에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타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냉정하다, 또는 서운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회는 타자와 타자가 만나는 것이죠. 부모나 부부도 타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저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쌍하다고 말합디다. 너무나 디아스포라적으로 어렵게 섭섭하게 외로운 세상을 살아온 신세였기 때문에 가족의 따뜻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대합니다.

(중략)

아이들도 태어난 순간 타자이긴 하지만 적어도 사춘기가 지나면서 그야말로 타자가 되어 가는, 존중해야 하는 타자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때까지 있어 온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너무 서양적인 개인주의나, 포스트모던적인 보편주의를 주장한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데 그건 아닙니다. 이 사회가 가족주의적인 사고방식, 문화 때문에 지금 있는 억압 상황을 바로 보지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입니다.

(259-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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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일본에서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과 얘기를 하다가도 재일조선인 이슈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느냐 너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듣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 처지가 그 정도가 되겠냐마는 사람들로 듣는 반응의 양상들이 왠지 낯설지만은 않다.

 

국민, 국가, 예술에 대한 디아스포라의 시각들이 한번 읽으면서는 아 그렇구나 지나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와 곱씹어보게 만든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나 루쉰을 인용하며 '희망'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대목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希望. 稀望. little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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