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09/12/09

*오리한테 선물로 받은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 있다. 지난 한 주 원고 하나를 쓰는데 내가 쓴 문장이 너무 맘에 안 들어서 내내 혼자 씩씩대다가 김연수 글을 마주하니 너무 비교가 된다. 소설 쓰는 사람들이 새삼 부럽다. 염이 자기는 문장에 너무 신경이 쓰여서 번역을 하면 속도가 안 난다는 얘기를 한번 해준 적이 있는데 요즘 그 말에 부쩍 공감이 된다.

*전철을 타고 왔다갔다 하다보니 흥미로운 장면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는 그 혼잡한 용산행 급행열차 안에서 아저씨들 언성높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들의 발화가 시작된지 한 10초나 되었을까, 금세 그들의 목소리 톤이 엄청난 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노약자석을 두고 벌어진 다툼이었다. "아니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을 차지해 놓고서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라고 언성을 높여 혼을 내는 남성은 추측건대 환갑은 넘긴 나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까 송내역에서는 할아버지가 곧 내린다고 말씀하셨잖아요"라고 볼멘소리로 말을 하는 남성이 종내에는 볼멘 목소리로 "저도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구요, 좀 앉아있으면 안 됩니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 두 남성들의 다툼은 급행열차가 온수역을 지날 때 쯤 시작되었는데 열차가 개봉을 지나 구일을 통과할 즈음에는 그 50대의 남성이 성질을 못 참고 "아니 이 할아버지가 어디서 반말로 성질이야? 좋게 말해선 알아듣질 못하는 영감이구만!"이라고 외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에 그 할아버지 왈, "아니 젊은 것이 어디서 대들긴 대들어? 어른이 좋게 얘길 하면 말끼를 알아들어야지! 요즘 도덕이 땅에 떨어졌어 땅에!"라고 외친 뒤 "아니 세상이 말세야 말세.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구"라는 말만 큰소리로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말 그대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계급장 떼고 붙자"는 말이 어떤 상황에서 나올지 알 것 같다. 씁쓸한 코미디다.

조용한 객차 안, 나는 그들의 싸움을 듣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자꾸 나왔다. 버럭 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르는 할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니 집에 같이 사는 아버지라는 사람 생각도 났다. 한국 가부장 남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참 그랬다. 짜증도 났다가 그들이 불쌍해지기도 하다가. 그들은 왜 그리도 당당한 것일까. 그들이 믿는 구석은 목소리 크기와 나잇살 밖에 없는건가. 완전 씨니컬 모드.

 

예전에 한번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둘이서 노약자석을 두고 싸우는데 한 쪽에서 '내가 일년에 나라에 내는 세금이 얼만데, 천만원도 넘는다구'라면서 노약자석에 앉은 자신을 정당화하자 다른 한 쪽에서 '아이고 그렇게 세금 많이 낼 정도로 부자인 사람이 전철은 왜 타고 다니나?'라고 받아치는 것이다. 평가하는 말을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세상에 정말 천박한 사람 많다.

 

* 전철에서 목소리 다 들리게 통화하는 사람, 이동하면서 내 몸을 밀치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짜증이 확 올라온다.  '죄송합니다' 아님 '지나갈게요'라는 말로 미리 신체접촉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밀치면서 무표정하게 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잘 안 간다. 까칠모드다.


* 점심을 밥과 누룽지 김치 김 그리고 케이준 샐러드라고 나온 샐러드에 요거트드레싱에 먹어서 기분이 그닥 좋진 않다. 아무리 먹을게 없어도 샐러드 드레싱을 간 삼아 밥을 같이 먹진 말아야겠다.

 

급식실에서 한달에 한번씩 그 달 생일이 있는 교직원들 케익을 하나씩 챙겨서 주는데, 오늘 가보니 12월 생일에 내 이름이 빠져있더라. 이젠 별로 놀랄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화가 안 나는 건 아니다. 비정규직은 아예 교직원 범주에 들어가지도 않는거냐는 요지의 메세지(존중!)를 비폭력대화로 잘 전달해볼까(따질까) 하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이다, 내가 더 비참해진다, 이 두 가지 생각으로 그냥 모른척 지나가기로 했다.  

그 많은 교직원 생일을 주민등록번호로 조회를 하는 것일까 생각하니 그럼 내 주민등록번호는 아예 급식실에 안 넘어간거고 따라서 내 개인정보는 보호가 된거구나 싶다가도, 만약 그런게 아니라 급식실에서 모든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정규직 교원만 골라서 케익을 골라준걸까 상상을 하니 더 비참해진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나의 억측일 뿐이라고 믿는다. 쳇. 

근데,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해보니 책상에 학교 체육선생님 결혼식 초대장이 와있는거다. 심지어 초대장 봉투에 'XX 선생님' 스티커까지 붙어있었다. 결혼식장은 하필 또 강남 소망교회란다. 케익도 안 챙겨주는 학교에서 결혼초대장이나마 안 빠지고 받았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아님 케익은 안 주면서 넉달 동안 다섯마디도 안 해본 선생님 결혼식 초대장은 꼬박 챙겨주는 것인가 라고 비웃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