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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내가 빈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88년 11월 말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않은 나에게 중부 유럽의 추위는 혹독했다.

그때 나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부모님이 두 분 다 세상을 뜨신 직후였고, 나 자신은 가족도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운 지루한 투쟁, 이루지 못한 꿈, 도중에 끝나버린 사랑, 발버둥치면 칠수록 서로 상처밖에 주지 않는 인간관계, 구덩이 밑바닥 같은 고독과 우울, 그런 것뿐이었다. 내가 너무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그래도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이 막연했다. 죽고 싶다고 절실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죽음이 항상 내곁에서 숨쉬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 서경식, <청춘의 사신>, 76쪽.

 

책을 보다 울컥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목으로 올라올 때가 있다. 이 책 그리고 다음 책 이렇게 이어서 빠르게 계속 읽다보면 내가 무뎌질까봐 아껴보는 서경식 선생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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