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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

'애정결핍'이란 표현은 너무 단정적인 것 같아서 말하기가 꺼려지지만, 그렇게 보이는 친구들이 가끔씩 눈에 들어온다. 전국 상위 3%학생들이 온다는 외고여서, 중학교 때 난다긴다 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그런 학생들이 더 많다고, 다른 교사들은 말한다.

 

한 아이의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서 '쟤는 애정결핍'이구나 평가/판단을 내린 뒤, 그 아아에게 일부러 더 데면데면하게 반응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씻긴 나의 몸은, '애정결핍증상'을 보이는 상대를 맞닥뜨리자마자 곧바로 스스로를 관계에서의 강자로 위치시킨 것이다. 마치 연애에서도 매달리는 쪽이 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실 그 학생을 이번 겨울방학 단어시험을 들어가면서 알게됐는데 이상하게 호감이 잘 가지 않는 친구였다.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 왠지 밉긴한데, 막상 돌이켜보면 왜 미운지 '관찰'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관찰'도 못 하면서, 다시 말하자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 맘에 안 들었는지도 잘 말하지 못하면서 그냥 그 학생 일반에 대해 으레 선입견을 거쳐 판단하는 내가 무서워졌다.

 

비폭력대화의 눈으로 보면 학교는 정말 온갖 '평가'가 난무하는 공간이다. 비단 성적이나 서열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화소재로 삼으며 걔는 착하고 걔는 하는 짓이 참 이쁘다는 식으로 칭찬을 하는 표현들이 자꾸 내 레이더망에 뭔가 찝찝한 감정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걔는 싸가지가 없어, 걔는 늘 저래, 이런 식의 비난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나의 에너지를 모든 관계에서 불편부당하게 쏟아붓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그냥 더 친해지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한편으론 괜히 비호감인 사람들이 있다(외모가 주는 영향도 상당할 것 같은데 단순히 외모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포스라고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호불호는 더욱 굳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나의 '편향'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다만 내가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할 때, 나의 이런 생각뒤에 어떤 느낌과 욕구가 있는지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타인을 마냥 평가하고 재단하며 관계를 맺는데에 어느새 익숙해지고 경직되어 버릴 것 같은 경각심이 번쩍 들었다.

 

'애정결핍'이구나 생각을 들게 만든 그 학생은 아마도 관심과 사랑, 인정, 보살핌, 친밀함 등을 원했을 것 같다, 라고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난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고 적절한 거리(자기보호)를 두고 싶다. 나로 하여금 괜히 얄미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구체적인 그 학생의 행동이 뭔지 주의깊게 관찰을 해보면 내 마음이 그나마 좀 가벼워질 것 같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속 편하게 쓰자면, 그냥 편애는 하되 공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유능함(얄팍함?)을 가지고 싶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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