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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 거리에서 헤엄쳐라~

벌써 2년 전 일이다.
짝꿍이랑 무슨 용기에서 그랬는지, 중국 윈난성으로 배낭여행을 한 달간 다녀온 적이 있다. 중국어라곤 고교시절 제2외국어를 한 것이 고작인데...
밤에 도착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난 뒤, 버스를 타고 우리나라 명동쯤 되는 시내 한복판으로 나왔다. 한순간에 다가오는 이국풍경, 순간 얼마나 막막하던지 자고 일어나니 딴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각자 다양한 자신의 악기를 들고 나와 공연을 하는 모습>


한참동안 적응기간이 지난 뒤에 우리 일행은 쿤밍 중심가에 있는 취후공원(탑골공원정도의 분위기인데, 크기는 20배 이상 된다)을 찾았다.

거기에는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는데, 우리나라처럼 할아버지중심으로 장기판을 벌이는 게 아니라 몇몇씩 모여 함께 경극을 하고 악기연주를 하시는 거다.
산책을 하며 경극을 듣고, 자리를 옮기면 또 다른 코너에서 악기연주를 하신다.
산책을 하는 시민들도 주변에 잔뜩 모여 음악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마도 각 동아리에서 나온 모양인데, 우리가 너무 즐거워서 박수를 쳤더니 좀더 빠른 곡을 연주하여 우리의 박수에 화답하신다.

우리나라처럼 일상적인 놀이문화 하나 변변치 않고, 문화라고하면 모두 공연중심으로 바뀌어 전용무대가 아니면 보기 힘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가지고 나와서 어울리고 함께 즐기고 있었다.
 
반대로 얼마 전 수원에 있는 청소년 문화회관을 갔을 때인데, 후미 구석진 복도에서 청소년들이 힙합댄스와 비보이댄스를 연습하고 있었다.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들이었는데, 변변한 연습공간 하나 없어 후미진 복도구석에서 연습하는 것도 가슴 아팠지만, 좀 더 넓은 마당으로 나와서 연습도하고 주변사람들도 구경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우리나라는 모든 문화예술은 공연장이 아니면 즐기거나 볼 수 없고, 연습과정역시 일상적으로 즐기는 놀이가 아닌 빡센 공연준비니깐...’

 

우리가 일상적으로 문화를 공유하고, 문화를 즐긴다는 건 어떤 걸까?

수원에는 ‘대안공간 눈’이라는 열린 갤러리가 있다.
주인장이 물려받은 집을 개조해 갤러리로 만든 것인데, 이 갤러리는 전시 및 관람 모두 무료로 운영된다. 그리고 이 공간은 그림전시뿐만 아니라 한 켠에 북까페도 있고, 차도 음미하면서 즐길 수 있다.
‘대안공간 눈’ 주인장 말에 따르면 열린 갤러리 하나를 개설하는데 초기비용 2-3억(공간마련비용)에 일상적인 운영비는 한명정도의 운영자 인건비면 충분하고 때에 따라서는 인건비 역시 안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수원에 있는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하나면 수원에 200여개의 열린 갤러리를 만들 수 있다.
열린 갤러리 한 곳 당 이용하는 인원수는 문화예술회관과 거의 맞먹는다.
문화에 들어가는 예산이 이렇게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공간이나 문화사업에 투입되지 않고, 거대한 공간에 집중적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단한가지, 정치인들의 공치사에 안성마춤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누려야할 문화경비가 정치인의 공치사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말이다.
문화는 뭔가 폼나는 곳에서, 또는 무대 위에서, 아니면 우리와 먼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어느날 사석에서 ‘대안공간 눈’ 쥔장이 주위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원에 미술인, 미술과 관계된 인원이 최대 몇 명이라고 생각하세요?”
다들 최대로 잡아 몇 백 명에서 몇 천 명이 아닐까하고 대답했지만 쥔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100만 명!”
수원시의 인구가 100만명이니 100만명이란다.
우리가 주변으로 눈을 돌려 당장 집에 있는 가구만 봐도, 벽지만 봐도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다들 집을 꾸미려고 멋진 화병하나씩은 갖고 있고, 벽에 그림하나씩은 걸어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모두 예술이고 문화인 것이다.
그러면 수원시는 고작 소수의 몇몇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회관이 아닌, 100만명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원래 우물길이었던 한데우물 거리에서 동네 초등학생들과 물길을 복원(?)하고 있다.>


요즘 수원 행궁주변에는 열린 갤러리가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대안공간 눈’을 시작으로 ‘가빈’, ‘행복한 그림집’, ‘한데우물’이 그것이다.
이런 대안 갤러리들은 규모가 크지 않아 잠시 짬을 내면 즐길 수 있는데, 멀리서 작가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웃에서 장사를 하다가 잠시 산책을 나와서 한번 둘러보고 간다거나 주민들이 퇴근길에 들러서 차 한 잔 마시면서 그림감상을 즐기기도 한다.

 

열린 갤러리 중 ‘한데우물’은 동네주민들이 모여 빈 가게를 내주었다. 그래서 한데우물 개소식때는 동네사람들이 자신이 고이 간직해오던 옛 사진들을 한둘 모아서 동네사진전을 열었다. 떡과 음료수를 놓고 동네주민들이 모여 옛 사진에서 친구들을 찾으며 얼마나 즐거워하시던지... 그 사진들을 보며 개발 때문에 바뀐 동네 곳곳을 기억하고, 추억이 담긴 이곳을 그대로 간직했으면 하는 맘들도 가지셨으리라...
‘한데우물’에서는 올해 ‘내 마음의 보물상자’전을 준비한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갖고 있는 물건 중 ‘내가 보기에 이건 예술이다’고 생각되거나 추억이 얽혀있는 물건들을 전시하는 것인데, 가령 30년 동안 사용하던 국자 같은걸 내어놓는 거란다. 참 재미있는 구상이다.
 
내가 열린 갤러리를 소개하고, 거리공연을 소개한 것은 점차 우리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들을 다시 삶의 주변으로 가져와야한다는 생각에서이다.
정치형태가 그렇고, 축구․농구 등 프로스포츠가 그렇고, 문화예술이 그렇다.
이런 것들을 조금씩 내 삶의 일부로 되돌리는 과정,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고 즐기는 것도 그 과정중의 하나이리라...
 
근래에 수원에서 ‘설렁설렁 노래모임’을 만들었다.
그냥 시간될 때 모여서 기타치고 노래하고 서로 즐기는 모임인데, 날씨가 풀리면 동네 공원으로 나가서 연습을 해야겠다. 주변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도 들려주고, 함께 웃음을 웃을 수 있도록...

 

*얼마전 평화인권연대 소식지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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