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 대선, 사회변혁운동의 목표는 반신자유주의 전선 구축
[기고] 반신자유주의 투쟁 강화, 대안세계화 실현을 위해
2007년 정세와 대통령선거 :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분리되는
‘정치세력화!’ ‘국가권력 장악’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2007년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은 자신을 둘러싼 참혹한 현실에 비해서는 초라할 정도다. 그동안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는 일상적인 투쟁뿐만 아니라 선거 시기에 더 소리 높여 외친 구호였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외쳐진 세월이 20여년 혹은 그 이상일진데, 우리는 아직도 구호를 외치는 것 이상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세력화를 위한 시도는 민중후보 추대와 출마를 비롯해서, 진보정당의 건설과 진보정당을 통한 선거 참여로 이어졌다. 정치세력화의 방향에서 선거 자체보다는 일상적인 투쟁이 언제나 더 높은 위치와 가치를 부여받지만 90년대 중후반부터는 사실상 ‘선거’행위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선거 시기에는 더욱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선거를 둘러싼 행위와 전술 이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지 못했다.
정치세력화에 대한 방향 논쟁에서 ‘정치세력화를 위한(과정으로) 국가권력 장악’인가!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정치세력화!’인가의 세력관계에서 후자가 완전한 승리를 거둔 상태다. 물론 선거에 참여하고 후보 출마나 후보 전술에 관여한다고 해서 모두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고민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의도와 고민, 그리고 여러 정치적 목적을 두고 직 간접적으로 선거참여 전술을 표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상적인 현장투쟁과 같은 현실에서 정치세력화의 방향을 만들어 가기 위한 투쟁이, 정당을 통한 국가권력 장악을 고민하는 세력에 비해 수세적인 상황에서 나온 선택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올해 대통령 선거는 가장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VS 반신자유주의 전선’ 구축을 통해서 앞으로 신자유주의와 계속되는 싸움을 만들어가는 의미가 있다. 또한 실천 과정에서 개혁적 신자유주의 세력 사이에서 동요하는 운동 내부 세력에 대한 비판 및 논쟁이 필요하다. 이 논쟁은 당과 의회 정치 중심성 - 내용이나 형식의 방향이 당과 의회를 경유한다는 뜻 - 을 가지고 진행될 것이기에 더 본질적으로는 선거와 국가권력 장악에 대한 입장과 전망 논쟁의 장으로서 의미가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대선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을 대하는 입장 :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넘어 '신자유주의 반대, 대안세계화'를 우리의 운동 목표로
신자유주의 시대 진정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운동의 주장.방향.전망이 투쟁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즉, 투쟁이 선차적이다. 87년 투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시 투쟁 주체들에게 더 높은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제시된 것이고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전술 중 하나가 선거전술이며, 후보전술이며, 국가권력 장악이다. 따라서 정치세력화라는 화두뿐만 아니라 진보정당과 의회 - 선거, 그리고 국가권력의 문제도 새로운 노동자 민중의 투쟁 속에서 그것을 해명하고 그 투쟁을 상승시킬 방향으로 재조직되거나 다른 이름으로 불려질 것이지, 고정불변의 원칙은 아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금융세계화를 통한 세계 인민에 대한 착취와 무장한 세계화를 통한 전 세계적인 살육과 공포를 발생시키는 시대다. 87년체제 전후로는 과도한 정치적 탄압, 초과착취에 대한 대응방향으로 정치권력을 향한 투쟁이 분출되는 양상을 보였다. 현재 신자유주의체제 아래서는 탈정치화 경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운동기반 자체가 후퇴하고 있다. 또 국가와 자본이 결집한 총자본과 전체 민중운동이 정점에서 대립하는 방식의 투쟁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대중운동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공동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투쟁 또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착취와 탄압의 또 다른 양상이기도 하다. 한편 신자유주의 본질에 대한 투쟁으로 국제주의가 강화되는가 하면 신자유주의 영향력으로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는 대중이 늘어나는 모순된 시대다.
반면 신자유주의시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기존의 운동방식과 노선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실천 고민 속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투쟁은 때로는 소규모적이고 때로는 무기력하며, 비록 연속성을 갖지 못하지만 부안투쟁이나, 평택투쟁, 새만금 투쟁 등 정세를 주도하는 운동,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 파괴적인 타격을 주는 운동으로 폭발했다. 옛날처럼 노동대중 일반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투쟁이 조직되지 않고 그들이 동일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해서 체제 전환의 욕구를 갖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획일적이고 과도한 위상의 이데올로기적 제기는 적절하지 못하다. 더더군다나 정당과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구체적인 정세에 조응하기에는 민첩하지 못하고 과도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노동해방.계급해방.코뮨의 아주 낮은 수준이거나 말한 모든 것들의 장기적 이행과정, 부르주아 정치체제를 지양하는 수준으로 말하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면 여전히 상징적인 유의미성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닌 우리 운동의 방향 및 현실 정치의 개입 근거와 규정을 가지는 개념과 잣대로서 제기되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는 공허한 문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실 투쟁에서 끌어내야 할 사회 운동의 규정과 방향은 무엇인가? 투쟁하는 주체들이 ‘얻고 싶은 것’, ‘듣고 싶은 대답’은 ‘왜 비정규직이 존재하는가?’ ‘왜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전쟁이 멈추지 않는 가’이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이다.
그 누구도 정치세력화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며 정치세력화라는 언명 자체만으로는 신자유주의와 투쟁하는 현실을 설명하기도 부족하며 전망 제시도 불분명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현실투쟁에서 비롯되어서 필요한 설명.분석.전망.투쟁 방향이다. 그러므로 대선 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규정 속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대안세계화 투쟁 속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인 투쟁이다. 전 세계 민중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투쟁한다. 제노바에서 시애틀에서 벌어졌던 투쟁, 한미FTA 반대를 위한 투쟁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대안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이다. 또한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 레바논 전쟁에 맞서 침략반대, 전쟁반대, 파병반대 투쟁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졌다. 전쟁의 당사자와 전투지역에서만 펼쳐지지 않았던 것은 이것이 전 세계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 세계 민중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행동이 바로 오늘 우리 민중들이 펼치고 있는 투쟁이다. 이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벌이고 있는 전 세계적인 착취와 전쟁을 통한 지배에 맞서는 투쟁이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을 새로운 전망으로 무장하고 반 신자유주의 전선으로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거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 대안세계화 투쟁이다.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으로 올바른 대안을 새롭게 제시한다면, 정치세력화는 신자유주의와 군사세계화를 반대하는 구체적인 투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현실에서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민중이 어떤 권력기관을 손에 넣었느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땅을 지키고 자신들의 의지대로 평화를 지키기 위한 평택 주민들의 투쟁을 보았다. 평택 미군기지싸움은 미국의 군사세계화와 연관된 투쟁이었다.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자기 스스로 조직하고 권리를 찾아가는 것, 자기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어떤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권력을 얻는 것이 정치세력화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유사한 경우를 부안과 새만금에서도 경험했다.
상기해야 할 것은 이런 투쟁들이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조직된 투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정치세력화의 내용도 구체적인 권력기관 장악이나 권력화가 아니라 자발적인 정치 주체로서의 재조직화이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주체로서의 세력화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후보전술과 당면 선거 투표 행위에 대한 입장 : 진보정당과 그 후보 지지 여부를 포함한 모든 선거.투표 행위가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를 확인하는 것이 대선에서 더 본질적인 문제다.
특정한 정당이나 후보를 통해서 선거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가는 아주 부차적인 문제다. 반면 선거 자체가 특정한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기재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이제 맞서 싸워야할 문제이지, 활용할 문제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선거가 신자유주의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또한 진보진영에서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이동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 투쟁의 내용을 담을 수 없다.
2007년 선거행위(혹은 전술)와 투표행위는 철저하게 득표 전략으로 귀결되고 있다. 현재 투쟁을 표현하는 방식을 찾을 수 없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 착취와 그에 대한 투쟁의 조직화와 전망의 과정으로 선거와 후보, 그리고 투표전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선거는 그것이 없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이데올로기가 면죄부가 되어 의회주의 운동세력이 신자유주의 전선의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 신자유주의 투쟁을 근거로 진보정당이 어떤 투쟁을 할 것인지가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통해서 신자유주의 지배체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 유일한 대안이 선거와 후보이자 진보정당이라는’ 논리 아닌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결국 현재 진보정당은 운동은 사회운동이 가져야할 근본적인 변혁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을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2007년 대선에 참여하는 것은 의회주의에 대한 판단 여부에만 있지 않고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전선이 더 중요하다. 진보정당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 등 대중정당들이 비정규악법에 야합한 한국노총의 표를 얻기 위해 사과를 하고, 공조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 전도사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모습, FTA를 조건부로 찬성하는 모습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위상이 성장한 것이 아니라’ 의회주의의 당연한 종착지점이다.
이 때문에 특정 진보정당과 그 후보를 지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 진보정당에 어떻게 개입할 것이냐 그 당이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옳게 서느냐를 중심에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 이는 반대로 ‘투쟁으로 선거를 돌파해야 한다’ ‘선거 자체가 개량적’이라는 비판을 지지하는 것 또한 아니다.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는 운동전략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선거를 비판하고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지배분파와의 싸움이자, 운동내부의 올바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이중전선이다.
나가며 : 사회변혁운동으로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가자!
그러므로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대안세계화 투쟁이 노동자 민중운동, 사회변혁운동의 새로운 전망이어야 하며 구체적인 투쟁이 제기되어야 한다. 선거를 진행하는 우리의 계획은 선거에서 제기되는 내용, 그리고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그동안 펼친 정책이 신자유주의와 어떤 관계, 어떤 연속성에 있는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민중투쟁을 만드는 것이다. 비정규악법 철폐투쟁, 현실에서 펼쳐지는 비정규직들의 투쟁, 파병반대 투쟁과 반전평화 투쟁과 FTA반대 투쟁을 매개로 한 대안세계화 투쟁으로 구체화 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우리의 고민은 선거에 대해서 불참할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 정치전선 안에서 보이콧 전술은 어느 정도의 규모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보이콧을 조직해야 한다. 사회변혁운동에게는 아직 그 힘이 미약하다. 이제 부르주아 정치질서에 대한 투쟁의 일환으로 보이콧 전술이 아닌 진보운동 내부의 요동치는 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1차적인 과제를 받아 안는 전술로의 선거 불참이 조직되어야 한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지배정권에 의한 노동자 민중 착취의 현주소를 폭로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의 내용이 제출되어야 한다.
**참세상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윤보다인간을 홈페이지(RED.jinbo.net)에서 좀 더 보충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콩나물을 사다
-하이하바-
어제 홍제역 지하도에서 콩나물을 샀다.
매번 지나치면서도 항상 다른 생각에 휩싸인다.
‘콩나물 질은 좋을까! 중국산은 아닐까! 농약은 없을까! 아니면 저걸 내가 다 먹을까.’
생각을 하다보면 귀찮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쯤이면 이미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어느 날 역무원에게, 공익에게 물품을 정리 당하는
그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들의 삶에 지친 얼굴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항상 지나치기를 반복하던 그 모퉁이에서 어제는
콩나물을 사고야 말았다
유난히 추워보이는 아주머니!
며칠 전 코스콤 동조단식에 참여하면서
겪은 추위의 매서움이 볼을 후벼 파고 들어왔다.
매번 보던 얼굴인데, 언제나 즐거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얼굴인데
어제는 왜 그다지도 더 눈길이 갔을까!
어줍지 않은 연민으로 빨리 팔고 들어가시라는
마음이 동했는지, 그 아주머니 돌아가서 손 녹일 아랫목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라도 마음 쓰지 않으면
왠지 발길이 무거웠으리라!
그렇게 달랑 콩나물 천원어치 사들고
돌아가는 나에게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머니 속에 지갑 왈 “니 앞가림이나 잘해!”
내 앞가림이 뭔지 떠오르지는 않지만
지갑을 톡!톡!치고 달래면서 다시 계단을 오른다
참세상에 기고한 글인데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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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관계와 소통, 아쉬운 논쟁, 열려 있는 미래
[기고] 사회운동포럼 참가를 마치고
사회운동포럼이 뜨거웠던 여름과 함께 마감되었다. 올 봄 의욕적으로 제기된 사회운동포럼이 가을을 맞으며 마감되었으니 참 오랜 기간 달려 온 셈이다. 매년 여름이면 사회운동단체가 주체하는 행사에서 학생 주최행사뿐만 아니라 여러 포럼이나 강좌와 같은 다양한 여름 행사가 열린다. 여기에 격 주년 행사까지 겹치게 되면 7-8월 두 달이 정말 눈코 뜰 새가 없다. 행사가 많으면 주최하는 사람들로서는 행사가 흥행할 지 실패할 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사회운동포럼 조직위원회의 경우는 잘못했다간 운동사회에 일정만 하나 더 만들고, 돈만 쓰는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 지 심사숙고해야할 처지였다. 사회운동포럼을 일선에서 준비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참여한 사람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운동포럼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사실 올 초 사회운동포럼이 제안되었을 때만 해도 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우려는 진작부터 진행해온 한국사회포럼, 맑스코뮤날레, 맑시즘2007 같은 무수한 행사들과 사회운동포럼의 차별성은 무엇인지에 답하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내린 결론은 포럼을 위한 포럼이 아닌 운동과 운동 간에 소통과 연대의 과정으로써 사회운동포럼이다.
고만고만한 단체들이 모이다보니 재정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풀씨(조직위원) 모집도 예상했던 대로 쉽지 않았으니 뚜렷한 대책은 없었고 오로지 풀씨 모집과 현장 자료집, 기념품 강매로 난국을 돌파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포럼 기간 내내 집행위원장은 사무국장이 전대를 틀어쥐고 사무국 회식비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푸념해댔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사회운동포럼이 끝나면 집행위원장이 경제사범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웃기 어려운 재정상황에서도 특별한 후원이나 정부기관 지원금, 거대조직의 분담금 없이 대회를 치러냈다는 것은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우리가 얻은 또 다른 성과일 터다. 이런 성과만이라도 지켜져서, 더 넓게 퍼진다면 정부재정에 기대는 거대조직, 그런 거대조직에 기대서 행사 치루기에 급급한 연대운동의 기풍도 먼 미래에는 쇄신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사회운동포럼이 처음 제안되었을 때 제안단위 중 대중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는 단위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이었다. 나머지 단위들은 의기는 충천하나 단체 활동가 중심으로 활동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조건에서는 포럼 본 행사의 흥행도, 포럼까지 가는 소통과 논쟁의 과정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나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겹치면서 대중조직들의 참여율도 불투명해졌다.
이 속에서 사회운동포럼에서 전략과제를 공동으로 수립하고자 개최했던 원탁회의도 제대로 개최되지 못하고 이랜드 집중투쟁, 노동자대회 등이 사회운동포럼의 주요 일정과 겹치면서 일각에서는 사회운동포럼을 탄압하기 위한 자본의 음모라는 말이 돌았다. 그리고 행사가 실패해도 핑계거리가 생겼다고 내심 좋아했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연기되고 이랜드의 주요 투쟁이 사회운동포럼 기간과 빗겨가면서 핑계거리가 사라진 여러 동지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경향은 포럼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사회운동포럼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인 사회운동 총회에서 사회운동 선언문을 채택해야 하는데 이것이 만만치 않았다. 선언문에는 향후 한국 사회운동의 전략과 과제를 담아야 하고 공동행동 과제를 합의 선언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컸다. 또 다른 문제는 일부가 만들고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선언문’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사전 논의와 의견을 취합해서 내용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원탁토론이나 공개토론회와 같은 자리도 있었지만 그래도 웬지 부족해 보이는 것이 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전략과제 기획단의 일관된 의견이었다.
일부에서는 알리바이용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포럼 기간 내내 설문지를 돌리고 사회운동 총회 2시간 전에 1시간의 사전 토론, 의견접수를 받겠다고 광고를 했다. 그러나 사전 토론 2시간 전에 또 한 번의 사전토론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고는 정작 사전 토론이 있는 9월 2일 13시에는 내심 아무도 찾아오지 않기를 기다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직화의 어려운 조건에서 남은 것은 포럼을 보란 듯이 성사시키는 것인데, 천우신조인지 맑스와 알튀세르가 도왔는지 포럼은 각 웍크샵마다 적게는 30, 많게는 100명이 넘게 참석했다. 일일 평균 300~400여 명 이 포럼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과에는 사회운동포럼을 근 반년 동안 준비한 문화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사회진보연대 여러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 박래군 집행위원장의 제안서, 호소문과 함께 행사 직전 ‘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사회운동포럼을 나누고자 했던 우리의 마음 전달된 결과이며 그동안 사회운동 간의 소통에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운동포럼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사회운동 단위가 별로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NGO시민운동으로 오해되기도 하고 그 경계에 있는 운동단체도 이번 포럼에 참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체들이 사회운동이 가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운동질서와 합의하지 못했지만 자본주의 질서가 아닌 대안사회가 어째든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공동의 모색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단체들이었다. 그래서 이번 포럼이 단체 중심이었다기보다는 웍크샵을 중심으로 한 운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것은 좀 더 다양한 운동, 운동단체들을 찾거나 함께 하도록 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이번 포럼에 참가한 단위 중 사실 전혀 새로웠던 단위는 없었다. 그만큼 알만한 단체, 알 만한 사람이 다시 모인 것에 불과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운동이 더 넓고 깊게 대중 속에서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이렇게 알 만한 사람이 모여서, 서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서로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래된 친구들이었지만 양파껍질처럼 벗겨내면 벗겨낼수록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로 비슷한 용어, 유사한 단어를 써왔지만 생각하는 바가 많이 달랐다는 사실을 안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느 누구에 대한 편견이 무너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는 각 웍크샵 기획단의 사전 논의가 없었다면 이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당일 행사에서 앵무새처럼 자기 조직의 이야기만 읊조리는 구태의연한 사태가 재연되었을 것이다. 이번 사회운동포럼이 내세웠던 기치는 소통/연대/변혁이었다. 그 중 올해는 처음이니 만치 소통에 주안점을 두자고 했다. 이런 현실로 볼 때 소통의 목표에는 어느 정도 노력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각 포럼에서 사전에 진행한 논의나 토론에서는 서로가 똑같은 단어와 개념을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드러났다. 본 웍크샵에서는 서로가 가진 지향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접근 가능한 지점과 도저히 접근 불가능해 보이는 지점이 들어나기도 했다. 물론 그러면서 어떤 확실한 결론을 맺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한계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성운동, 페미니즘, 여성권과 노동권의 접합이라는 개념의 의미, 서로 다른 지역운동에 대한 상, 조직 내 민주주의를 비롯한 새로운 운동양식,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지금도 가랑이 찢어진다는 하소연까지 수많은 의제와 제안이 오고 갔다. 이런 수많은 논의 중 열쇠말로 이야기되었던 지역운동/사회공공성/노동운동과 사회운동/새로운 사회운동의 생활양식은 더 논의를 발전시키고 실천 속에서 연대를 이끌어내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이는 꼭 사회운동포럼이라는 형식을 갖지 않더라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건 사회운동 포럼 기간 동안 어떤 경우는 진지한 토론과 일정한 방향을 합의하고 이후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마음열기와 게임형식을 통해서 난상토론으로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는 수준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옳고 우열하다거나 이것을 성과의 판단지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사회운동포럼의 취지에 벗어나는 일이다. 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상했던 일이지만 여러 현장의 대중들이 참석이 저조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앞으로 사회운동이 그 본연의 소통의 의미를 살려간다면 이번에 부족했던 부분을 해소해 갈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기에 포럼에 참가한 우리는 ‘오래된 친구들이 서로에 대해 다시 알아가면서 논쟁과 연대의 미래를 열었다’는 데 이번 포럼의 커다란 성과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연대의 미래가 변혁의 미래로 연결되는 그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