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제, 그리고 한달도 더 전.
그러니까 자전거 여행 다녀온 이후로 총 3번의 자전거 사고가 있었다.
한달도 더 전엔 역주행하는 자전거 3대를 동시에 피하다가 옆을 스쳤고(다치진 않음)
지난주엔 사거리에서 갑자기 멈춘 자전거와 추돌하면서 그 아저씨의 어깨에 턱을 부딪히고,
어제는 100m전부터 서있던 택시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아마도 보신각 앞에 도로통제로 멈출까 돌아갈까를 고민하다가 혹은 돈을 오래오래 계산하다가
문을 열어버린듯...)
급브레이크를 잡은 덕에 몸이 날라가서 인도와의 경계에 있던 철로 된 벽하고 부딪히는...
(자전거를 버리고 몸을 날린 덕에 오른팔만 통증이 남아있다.)
다림질하다 데인 것도 사고긴 하지...
어제는 참 고맙게도 급결정된 워크샵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사라졌다.
음... 세상은 위험하다는 뿌리깊게 박혀있던 생각하나가 통째 날라간 듯.
아직 확인을 해봐야안다.
아마도 전경이 방패를 들고있는 앞에 가보면 알게 될듯.
그래도 지금의 심정으론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내가 필요하다고 선택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기쁜 성장이 일어나고 오늘 편지를 받았다.
완전 고마운 존재가 여행중에 보낸 편지와 선물.
이브라함이라고 불리는 파란눈인데
터키에서는 액운을 물리쳐주는 부적같은 거란다.
여신을 찾는다는 엽서의 내용을 읽으니
내 안의 여신이 기뻐하며 뛰논다.
세상은 위험하다는 뿌리깊은 생각이 세상은 안전하다 혹은 나는 안전을 원한다로,
(아니 더 맞는 표현이 따로 있을 것이다. 암튼...)
바뀐 것도 참 기쁜 일인데,
위험과 액운을 물리치는 파란눈이 함께 하게 되니 참 든든하기 그지없다. ㅎㅎ
안전이란게 밖에서만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믿음과 관련되어있다는 것.
내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확인이 되었다.
온수
촛불집회에서 '온수'라는 외침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난 이번 싸움은 이겼다고 믿었다.
아무리 지랄들을 해봐라 우리가 겁먹나...
오히려 유쾌하게, 여유있게 대꾸해주는 힘.
이미 힘은 여기에 있으니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토성
명박산성에 대응하는 토성을 쌓는걸 보니
뭔가 아쉽고 걱정이 되고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그따위꺼,
차벽도, 컨테이너성도 무시해버리고 우리끼리 재미나게 즐기면 안될까?
즐기는 게 지치면 새롭게... 여의도도 가고, 보수언론한테도 가고, 한나라당도 가고,
뭐 그러다가 국회를 점거해보고 우리끼리 동네별로 대표를 뽑아서(가위바위보로!) 탄핵시켜버리면서
실컷 야유도 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뭔지를 논의해보고 말이야....
국세청가서 세금 못내겠다고 아우성도 치고,
동네 경찰 찾아가서 쥐새끼때메 못살겠다고 신고도 해보고,
못모이게 하면 동네별로 모여서 놀고,
그러면 큰 방송차도 필요없고,
더 재미나게 놀 수 있지 않을까?
폭력
그 뒤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고 아름답더라도
그 의도를 얻는데 별로 도움을 얻지 못하는 방법.
상대를 변화시키려다 내가 상대를 닮아가게 되는 비극적인 방법.
비폭력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그 순간에 이루어주는 방법.
상대를 사람으로 믿어야 가능한 방법.
모든 것은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여유를 가지게 해주는 방법.
모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
누군가를 없애고 혼낸다고 내가 원하는 세상이 찾아온다고 믿는건,
우리집에서 고스톱칠 때 아빠가 늘 하시던 말씀대로
'혼자 산에 올라가서 고스톱치던가'와 똑같을 듯.
오히려 내가 원하는 세상을 이미 살면 안될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어렵고, 힘들고, 지친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미리 살아보는 건 어떨까?
춤추고, 노래하고, 즐기고 웃는....
그까짓 수입산 쇠고기가 문제인가?
미친 대통령이 문제인가?
경찰폭력이 문제인가?
경찰청장이 바뀌어도, 미친대통령이 하야해도
올해 여름에 북극이 다 녹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변화가 오거나,
온난화가 멈추거나,
내가 안성에서 만난 아이들이 편견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거나,
내가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거나,
전쟁이 멈추거나,
성차별이 없어지거나,
비정규직이 없어지거나,
오염없는 밥상이 차려지거나,
언론이 정론직필만 하게 되거나,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심각하게 육식을 하는 세상,
권력을 주고 내 삶의 조건들에 대한 영향력을 넘겨버리는 세상,
그런 걸 진지하게 봐야할 때가 아닐까?
지금 사람들의 분노는 물론 정당하다.
그런데 그저 분노로만 남으면 스스로가 더 상처받게 되는 걸 더 많이 봤다.
눈뜬자들의 도시에서처럼
차라리 정부가 경찰들과 함께 철수해버리는 그런 상황을 만들 순 없을까?
암튼 보신각 앞까지 가긴 했는데.... 뭐랄까, 함께할만한게 재미없어서 일찍 와버렸다.
(생리중이고, 그 전에 잔차사고도 있어서 놀랬고, 뭐 그런건 작은 핑계....)
그래도 한명이라도 더 있어야할 것같다는 존님의 마음은 충분히 숭고하다고 믿는다.
경찰이 던진 걸 다른 사람들이 또 던질까봐 모으고,
우산들, 슬리퍼 이런거 주어다가 필요한 곳에 쓰이길 바라는 그런 숭고한 마음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나중에 밥사달래면 밥사주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난 춤출 수 없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고 믿으니까.
즐거움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오는, 분노에서 나오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오늘 총 43km정도 자전거를 타면서 이런저런 고민들이 들었다.
리우스님이 싸가지고 온 매실주와 감자를 맛나게 먹으면서
그런 따뜻함을 마음껏 나누는 세상을 그려보면서 말이다.
오해의 여지를 나름 줄이기 위해 추가합니다. 글재주없는 제가 참 원망스럽네요.....
수요일에 나와 많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다른 점 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점이 더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보다는 말이 더 빠르고,
내가 쓰는 단어와 조금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첨보는 사람에게 깍듯하게 (상체를 30도 정도 구부려서) 인사를 한다.
내가 보기엔 나보다 더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내 삶을 위해 내가 살던 곳을 떠날 용기가 나에게 과연 있을까?)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이 아프고 슬프고 화가나기도 했다.
나도 외국에 나가게 되면 말이 안통해서 힘들다.
그래도 난 내가 그들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내 표현을 그들이 알아듣게 정확히 하지 못한다고
내 존재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데....
왜 그들을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을까?
그게 화가 났다.
일본사람이, 미쿡 사람이 슈퍼에서 말을 못한다고 사람취급을 못받을 일이 아닌다.
존칭이 틀렸다고 거북해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신분증.
나는 거부하겠다고 나름 이상한 짓거리들을 많이 하지만서두....
그게 나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못해봤다.
누군가에게는 우선 획득해야하는 중요한 것일수도 있다는 것.
뭐 그걸 갖고 싶다거나, 거부하고 싶다거나 같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걸 서로 같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할까?
채식.
탈북해서 숨어살면서도 채식을 하려고 했던 친구.
믿었던 동무가 고기가 안들었다고 하고는 고기있는 음식을 먹게 했다더군.
고기를 못먹는다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먹는 걸로 치사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럼에도 자신의 차이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멘.
자신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떠올려보고 그것과 닮은 자연에서 별칭을 빌려서 지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별, 바다, 하늘, 봄 등이 많이 나왔는데 아멘도 나왔다.
그친구는 믿음이란 뜻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란 뜻.
탈북하는 과정에서 개신교의 선교단체가 많은 역할을 하는지 새터민의 90%가 개신교 신자가 된단다.
믿음이란 것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게 되면 생길 비극적인 일들이 떠올라 씁쓸했었다.
쓰레빠와 슬리퍼.
외래어를 쓰는 사람들이랑 대화할 때 힘들다던 친구에게 자신도 알아듣는 말로 해주길 원하냐고 물었다. 그렇게 배려받고 존중받고 싶었던거구나... 하니까 슬쩍 와서 묻는다. 저거 이름이 뭐에요? 쓰레빠가 맞아요, 슬리퍼가 맞아요?
수고하십니다/~합시다/일없습니다
그런 말이 왜 나빠요?라고 묻는다. 나쁘긴 뭐가 나빠, 이상하게 듣는 사람들에게 소릴질러 '왜 맘대로 오해하고 지랄이야, 내 말은 ~~~ 뜻이다!'라고 외치라고 할뻔했다. '뭘 그렇게 꼬나봐요? 말을 그렇게 할 수도 있지.'라고 하라고 할뻔했다. 하나하나 그 뒤에 있는 자신에 대한 존재감, 자기존중감 찾아주는 일은 역시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들어주는 나도 자기공감이 많이 필요하다.
나도 이땅에서 살기가 참 힘들어.... 이말이 튀어나올뻔도 했거든..
디아스포라들.
그들을 만나면... 그전에는 안보이던 내가 보인다.
그래서 더 '선물'일 수밖에 없겠지.
함께 나눈 아픔들, 재미와 웃음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분명 내가 준비한 시간들이 도움이 되긴 할텐데, 지속이 될 수 있을지, 조건이 달라지면 (30명에서 100명으로 인원이 늘어나는...) 과연 진행자체가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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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날라갔는데도 별로 화도 안난다.
뭐 일이 꼬이는 일들이 반복되는데에 좀 적응이 된듯...ㅎㅎ
재협상철회, 이명박 탄핵, 폭력경찰 물러가라 가 아니라
한미fta로 이익을 보는 자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의 이익에 협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육식위주의 삶이 소와 다른 식용을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나의 식탁부터 되돌아보고 선택해보는 것.
전경에게도 명령을 거부할 기회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