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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제 9장 5절 극서 기독교 지역

5 극서 기독교 지역 : 상업, 대출, 그리고 전쟁

 

중세 유럽 : 금과 은이 주변에 있긴 하지만 성소로 더 많이 흘러들어가 저장,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사라짐, 시장에 대한 규제가 점점 교회의 수중에 들어감. 고리대금을 대하는 가톨릭의 태도는 이슬람의 태도만큼이나 엄격했고, 상인을 대하던 태도는 상당히 가혹했음. 고리대금은 우선 기독교의 사랑에 대한 공격으로, 가난한 자를 예수그리스도를 대하듯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짐.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베풀고, 상환에 대한 결정을 빌리는 자에게 맡기라는 가르침을 따르려고 함.

 

성 암브로시우스의 예외 : 외국인에게만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같은 동족에게 이자를 놓지 못한다.

 

성 바실리우스의 급진적인 태도 : 모든 것이 하느님이 주신 공동의 소유물, 부자는 소유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고 하느님이 지시함, 기독교적 공산주의.

 

교회는 기존의 재산권 질서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부자들이 기독교의 사랑에 입각하여 행동하도록 고무하는 영적 주장을 내놓을 필요성이 대두.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들의 편이기 때문에, 사랑의 선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빌려주는 융자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이자(천국, 혹은 영생)와 함께 되돌려 받을 것이다. 라고 설교.

 

교부들은 고리대금에 반대했지만 부자(영주)가 사랑을 베풀고 가난한 자가 다른 방법으로 감사를 전하는 봉건적 의존의 관계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음. 봉건시대 농노도 이론적으로는 자발적인 것으로 해석됨. 기독교 교인이 하느님에게 복종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듯이 농노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복종시키겠다고 선택하는 것으로 이해.

 

이슬람 사회가 상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암브로시우스 같은 교부들은 “정직한 상인”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 상인이면서 기독교 교인일 수 있는 지 의문을 가짐.

 

유태인을 둘러싼 오해

 

유태인들은 토라(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짐)와 탈무드에서 이자를 받는 융자는 금지되는 것으로 배움. 단 이교도들과의 거래에선 이자를 받음. 11세기와 12세기 유럽에서 유태인들은 고리대금이외의 모든 직업에서 배제되는 상황.

 

기독교 군주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유태인들을 이용. 영국의 왕들이 악명 높았음. 유태인들에게 높은 이자율을 물릴 권리를 부여. 유태인들에게 돈을 갈취. 고문과 투옥까지 행함. 당시 왕들은 다른 사람들이 유태인들에게 진 부채를 사실상 자신에게 진 부채라고 여기며 재무부에 그 부채를 관리할 부서(유태인 재무부)까지 둠. 또 유태인들을 이자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몰아붙여 살해하기도 함. 서유럽 전역에 고리대금으로 악명을 떨친 이들은 실제로는 롬바르드 족(북부 이탈리아 출신), 카오르 사람(프랑스 카오르 출신)들 이었음.

 

11세기경 수도원에서 담보대출을 함. 1148년경 담보대출 불법화됨. 1179년 고리대금이 사형으로 다스릴 수 있는 범죄가 됨, 프라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소도회 같은 탁발수도사들이 고리대금업자들이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설교하고 다님. 당시 설립된 대학에선 고리대금업이 불법인 이유가 논의됨.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 다른 사람의 시간을 절도 하는 행위, 돈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다루는 것은 돈의 진정한 목적을 무시한 처사이며 이자를 물리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 이후 점차 로마법(절대적 사유재산 개념을 갖고 있었다)이 부활 하면서 이자를 상환지연에 발생한 손실에 대한 보상, 돈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이익에 대한 보상으로 해석하기 시작.

 

상인 자본가의 등장

 

당시 서유럽,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 대부분들의 왕들은 약했고, 남작의 영지들과 공국들, 도시 공동체들과 장원들, 교회 영지 등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분할되어 있었음. 지배권도 전쟁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상황. 이탈리아 북부의 독립 도시국가들,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밀라노 독일의 한자동맹 도시들, 상인들이 정부를 넘겨받음으로써 자신들만의 사법제도와 군대까지 갖춤. 특징은 금융과 무역, 폭력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

 

근대적 금융의 개척자들, 템플 기사단, 솔로몬 성전의 군사기사단. 프랑스 영주, 템플 기사단을 통해 부동산을 담보로 맡기고 환어음을 받아 그것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현금으로 바꾸어 사용. 바루디와 페루치, 메디치 같은 이탈리아 은행 가문들, 탬플 기사단 출신(?)

 

인도양의 향료와 동양의 사치품을 주로 거래한 지중해 교역에서 금융과 상업이 발달. 당시 지중해는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지던 해역, 교역과 성전과 약탈의 구분이 모호했음. 상인들는 전사를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정부 역할도 함. 전장에 갑옷을 입고 나가기도 함. 당시 베네치아 상인들, 크레타와 키프로스 같은 섬들을 점령, 설탕 플랜테이션을 조성, 아프리카 노예로 경작. 제노바는 예약전쟁 같은 군사금융을 발달시킴, 투자자를 모아서 그 돈으로 전쟁을 하고 전리품을 배당금으로 나눠주는 형태.

 

우리가 아는 무사는 없다

 

아서왕 소재의 소설(프랑스 시인 크레티엥 드 트루아), 떠돌이 기사들의 모험을 그린 소설. 아서, 귀네비어, 란슬롯, 가웨인, 퍼시발. 용감한 기사와 마상 창시합, 로맨스와 모험을 그림.

실제로 땅시 떠돌이 기사들은 자객의 무리. 떠돌이 자객들이 12세기에 극성. 기사도 규범이나 마상 창시합도 떠돌이 자객들을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 이슬람은 성공적인 상인 모험가 예를들면 신밧드 같은 인물이 삶의 모델이 되었음.

 

유럽의 마상 창시합 : 한달에 두 번정도 열림. 가끔은 3천명이 운집. 말 중개상, 무기제조자들, 잡화상, 고리대금업자들, 광대, 곡예사, 마술사등이 모여듬. 베팅이 이뤄짐. 승자는 상과 말과 사람을 쟁취하고 몸값을 패자에게 요구. 패자는 몸값을 마련하기 위해 봉토를 저당잡히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리고 자기자신을 팔기도 함. 패배자들은 노상강도로 돌변하기도 함.

마상 창시합 중에 이상한 열정에 사로잡혀 갑자기 성지를 탈환하겠다고 맹세하며 전쟁을 하러 떠나기도 함. 부유한 기독교 도시를 포위해서 약탈하기도 함.

 

신비스런 숲속을 외로이 혼자 돌아다니며 도깨비와 요정, 마법사, 괴상한 동물들과 맞닥뜨리고 경쟁자들에게 도전하는 기사의 이미지 : 낭만적으로 미화한 상인과 기사의 이미지.

 

성배 : 바그너, 성배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이 추구하던 하나의 상징. 전사와 상인의 성격이 섞여있던 당시 유럽 상인들이 전투를 벌여 가면서 추구했던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이지만 동시에 무한하고 마를 수 없는 가치를 의미. 마크 셀 교수는 백지 수표와 같은 것이라고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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