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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집에서 근근히 진행중인 가늘고 길게 가는 워너비 여러해 살이풀 -예술사 세미나 진행기

 

음 중간정리 하러 들어 왔더니 다른 세미나들도 활발히 시작? 진행 하고 있군요. 번창하시구요.   

홍보가 게을러서;;;까페 해방촌에 찌라시 하나 붙인게 전부 그래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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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 12시 

인민재정으로^^ 월 10000원의 세미나비를 걷고 있습니다. 

이걸로 공부집 공간분담비 회당 5000원 + 간식,점심재료비 +남는 돈으로는 전시장 구경도 가고 그럽니다.

빠듯해서 주로 무료전시애용해야 하긴 하지만.

집에서 하는 이유는 세미나 마치고 싸게 점심 같이 만들어 먹고 음악도 듣고 뒹굴거리기 편하고 등등의 현실적인 이유하나.

또 한편 집이라는 공간의 변용 - 확장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여간 목표대로 가늘고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 백낙청,염무옹 옮김 / 창작과 비평사 > 3권 로코코 까지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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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많이 읽진 않아서 잘모르겠지만 좋은 책인거 같아요 !! 풋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에 이르는 문학과 예술(여기선 조형예술이 주로사용)의 사회사들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우리가 학교에서 뭉뚱그려 배웠던 음, 르네상스 = 15,17세기 고전 문예부흥 운동, 인본주의 뭐 요런구분이 아닌 사회적맥락, 특정 지역에서 그당시 어떤 정치,경제적 요인이 작용하여 하나의 주된 경향이 생겨났다는 서술에 의한 구분이 주입니다.

 

*또 저마다 학문-예를 들면 사회과학 분야와 예술분야에서 생김새는 같지만 다른 개념인 용어의 적확한 사용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라던가 등등  공부의 기본 태도를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사회적 위치변화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고,때론 많은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여튼 입문서로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요. 문장마다 밀도가 있어 빨리 넘어가지 않지만 이해가 어렵진 않습니다. 

 

2권 끝낼 무렵엔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빈집의 외부에서 온 친구들만 남게 되어 헛헛한 마음에 

시립미술관에 민중미술 전시랑 일민 미술관 광고의 고백전을 보러 갔어요. 

읽고 있는 책에서도 민중의 예술에 대한 언급과, 예술의 자립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관련지어 재밌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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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중간에 끼어도 될까 하시는 분들은 주저 말고 오셔도 되어요.

중간부터 읽어도 대략적인 중요한 시대 사조 구분을 해놓아서 괜찮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나기 때문에 잠만자고 보내지 않았다는, 내오늘 세미나를 망쳤어도 아직 반나절이 남아있다는 뿌듯함을 덤으로 가져가실 수 있어요. 

 

3권을 끝내고 책걸이로 전시를 보러갈 예정인데 같이 가셔도 좋구요.

 

뽑아논 세미나 책들은 좀 변경 될 예정이예요. 예술사라기 보다는 예술사회사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고 

너무 두껍지 않은 책들로 길고 단단하게 채워가보려합니다. 

 

그럼 안뇽~ 1340421682937.jpg

 

 

늘 이렇게 잘 먹어요... 사람들이 1340423722373.jpg

오후반 아지트 프로젝트회의에  맛있는 밥한끼에 다수의 세미나원들이 덤핑된 현장. 그래도 처음 시작할때라 파릇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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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화니짱 발제문

<공부집 셈나 : 부채 – 데이비드 그레이버 >

10장 – 4. 비인간적인(객관적인) 신용화폐

화니짱

 

새로운 형태의 화폐들과 금(은)본위제

신용이 개인들 간의 진정한 신뢰의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오자마자, 이제 무엇이든 이게 화폐라고 말만 하면 화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경쟁적인 시장이라는, 도덕과 무관한 세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거기에 불가피하게 온갖 종류의 사기와 거짓이 난무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이 시장체제의 수호자들을 주기적으로 경악하게 만들었고, 다양한 형태의 종이의 가치를 다시 금과 은과 연결시킬 새로운 방법들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다른 방식의 해결책, 즉 “지방의 신용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하면 지켜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종이화폐의 기원 – 시정부 채권의 발행으로 시작

상인들은 국왕에게 전비를 빌려주면서 국왕으로부터 그 대가로 은행권 발행에 대한 독점권을 갖는 법인을 설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사실상 그것은 국왕이 상인들에게 갚아야 할 돈에 대한 약속어음이었던 셈이다. 이 법인이 최초의 독립적인 국립 중앙은행이었으며, 소규모 은행들 사이의 부채를 정리하는 청산소가 되었다. 그 은행권은 곧 유럽 최초의 국정지폐로 발전했다.

 

신용의 몰락과 시장 시스템의 붕괴

그나마 남아 있던 가난한 자들의 공산주의식 행태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심지어 신용을 범죄로까지 몰아붙인 결과, 새로운 시장체제의 주인들은 이젠 부자들의 공산주의를 유지할 명분마저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경제시스템 자체가 돌아가도록 할 정도의 협력과 유대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최근의 사건들이 극적으로 보여주었듯이, 경제시스템의 문제들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공부집 셈나 부채 10-4장.hwp (16.00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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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제 10장 5절 6절 발제.

10장 5절 자본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를 아주 훗날 등장한 것으로 보는데 익숙. 자본주의와 결부된 금융조직의 거의 모든 요소들 중앙은행, 채권시장, 공매도, 증권거래소, 투기 버블, 증권화, 연금 같은 것이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있었던듯하다.

 

사회주의자들 : 자본주의란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노동을 지배하는 체제라고 생각. 자본주의 옹호자들 : 자본주의란 시장의 자유를 의미, 시장에서 팔릴 잠재력이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자원을 끌어모아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곳이 곧 시장.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성장을 요구하는 체제. 기업가들과 국가들은 생존하기 위해 연 5%의 성잘을 요구, 한때 모든 것들을 이익을 위한 잠재적 원천으로 보게 만들었던 비인간적이 메커니즘이 이젠 인간 공동체의 건강을 측정하는 유일한 객관적 척도로 여겨짐.

 

근대 자본주의 여명에 나타난 것(대략 1700년대)은 신용과 부채의 거대한 금융조직. 네덜란드와 영국의 최초 주식시장들은 동인도 회사와 서인도 회사의 주식을 거래. 두회사 모두 군사적인 일과 교역사업을 동시에 추구. 이익을 추구한 회사가 인도를 1세기동안 지배. 영국과 프랑스등의 국채는 운하를 파거나 다리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들을 포격하고 화약을 구입하고 포로를 수용하고 군 지원자를 훈련시킬 캠프를 짓기 위해서임.

 

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은 향료를 구하기 위해 세계시장을 돌아다님. 그 이후 무기무역, 노예무역, 마약무역으로 갈라짐. 마약무역은 커피, 차, 담배, 설탕 등 약한 마약을 의미, 증류주도 이때 처음 등장. 이후 중국에 아편을 공격적으로 판매, 나중에 의류무역이 등장.

 

자본주의 여명기 제국안에서는 루머와 환상 주기적인 버블이 있었음. 수많은 사업계획들이 제시되고 주가가 급상승하고 다른 투자자에게 재판매하고 버블이 붕괴함. 613쪽 인용문 참고.

1909년과 1911년 사이에 벌어진 푸투마요 사건. 페루의 우림에서 영국 고무회사 자회사 직원들이 인디언 수만명을 강간과 고문 사지절단 등의 악랄한 수법으로 살해한 사건.

영국의 현물 급여제와 비슷한 후원시스템, 인디언들을 부채의 덧에 빠트리려는 시스템. 그 지역에 파견된 고무회사 직원과 감독관들이 실제로는 런던의 금융가들에게 부채에 빠져있었음. 이들은 빚을 갚기위해 인디언들에게 옷과 칼 주화 등을 팔고 고무를 구입하려 했지만 인디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음. 인디언들에게 강제로 융자를 받게 한 뒤 갚아야 할 고무의 양을 정해줌. 고무를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간, 고문, 사지절단을 함.

 

자유노동이라는 환상

 

자본주의는 자유롭다는 환상 혹은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배포한다. 미국은 자유의 상징이지 않은가? 그렇게 노동자도 자유롭게 선택해서 노동하는가? 푸투마요사건등에서 알수있듯 노동자에게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임금이 현금으로 주어진다는 것, 그건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라는 게 신용에 기초하지 않음을 의미. 단지 명령에 복종하는 관계, 이익 창출에 봉사할 수 있는 관계, 그 약한 믿음관계이기 때문에 현금만이 임금으로 이용될 수 있는게 아닌가?

 

영국자본주의 역사 대부분 현금이 아주 귀했음. 산업혁명동안 공장주들은 직원에게 현지 가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증서(쿠폰)같은 것으로 임금을 대신 지급. 하여 당시 노동자들은 임금이 제때 주어지는게 드물어서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돈을 구함. 영국 해군 부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임금을 1년 뒤에 지급하는게 예사로 통했음. 정부가 재정을 안정시키고 임금을 제때 현금으로 지급하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작업장 좀도둑을 근절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해짐. 당시 조선소 엔지니어 새뮤얼 벤담이 순수한 임금노동이 이뤄지는 곳으로 조선소를 만들기 위해 마치 경찰서처럼 원형 감시탑을 세울 것을 구상. 이것이 그의 형인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으로 발전.

 

인간의 속성

 

스미스와 벤담같은 이들은 공상적 이상주의자, 고용주와 동등하게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오전 8시에 출근카드를 찍고 매주 금유일 주급을 받는 근로자는 공상적일만큼 이상적인 것이었음. 스미스는 부채가 없는 근로자,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 시장을 공상적으로 그림.

마르크스도 자본론에서 비평적으로 공상적인 상을 보여줌.

 

이상적인 비전 제공자들의 모델처럼 보통사람들도 많은 돈을 소유하는 시대로 변해왔고 이제는 나아가 할부같은 비 인간적인 신용도 등장했다. 부채는 죄이며 타락이라고 보던 청교도 적인 인식이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근로계층이라고 여기던 사람들도 이젠 드물어졌다. 유토피아가 실현불가능 하듯 그리고 보편적인 세계시장이 불가능 하듯, 자본가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치과치료까지 적절히 받는 가운데 임금을 규칙적으로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임금노동자가 될 수 있는 체체는 불가능하다.

 

10장 6절 자본주의와 도박, 그리고 자본주의의 영속성

 

코르테스와 아즈텍의 보물에 얽힌 이야기, 코르테스는 아즈텍을 포위공격하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보물을 손에 넣은 듯하다. 목테수마(아즈텍의 왕이자 최고 전사)는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스페인 군대와 현지인 적군에 맞서 상황을 예의 주시. 스페인 병력 전부(겨우 수백 명)을 초대. 코르테스 병사들이 왕궁에서 반란을 일으킴. 목테수마가 볼모로 잡히고 목테수마와 코르테스의 한 부관이 아즈텍 게임을 함. 목테수마는 금을 걸고 코르테스는 조약돌을 검. 그 경기에서 상당한 보물을 코르테스는 챙김. 왜 목테수마는 속임수 같은 게임을 계속 했을까?

 

목테수마는 재앙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듯 아마 하늘의 뜻이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재앙은 아닌데, 이번에는 어쩐지 피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듬. 그는 모든 것을 걸었다. 판의 모서리에 떨어진 주사위는 없었고 코르테스는 계속 속임수를 썼고 신들은 아무런 계시를 보이지 않았다.

 

도박과 계시, 자본주의는 도박을 작동의 근본적인 한 부분으로 중히 여기는 시스템. 도박을 중시하며 또한 신용의 급작스런 확대에 따른 버블의 발생을 막기위해 언제든 붕괴할 수 있다는 위협이 그려진다. 핵전쟁의 위기, 지구온난화의 위기 이러한 위기설정은 끊임없이 팽창하려는 자본주의 신용의 확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 않은 가?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권력에 오르자마자 마치 그 체제가 영원할 것처럼 꾸미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국가부채, 미래세대에게 빌린 돈, 적자재정, 군주와 장군과 정치인들의 수중에 더 많은 군사력을 쥐어주는 한 방법.

 

토머스 제퍼슨 같은 양심적 학자, 부채의 영구화라는 근대적 이론이 지구를 피로 흠뻑 적시고 그 주민들을 쌓여만 가는 부채의 무게에 짓눌리게 만들었다“고 자본주의 초기에 제시. 국가는 세금에 기초해 부채를 안고 그 돈으로 전쟁이나 4대강 사업을 시행, 자본가들은 국가의 채권을 구매해서 안정된 이자와 원금을 확보, 시민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더 많은 빚을 넘겨줌.

 

이매뉴얼 월러스틴 프랑스 혁명이 정치에 아주 새로운 사상을 몇가지 도입하는 계기였다고 주장. 1 사회적 변화가 불가피하고 바람직하며, 또 역사의 자연스런 방향은 문명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2 그런 변화를 관리할 주체는 정부이다 3 정부는 인민이라 불리는 집단으로부터 정통성을 얻는다.

 

위에서 2번과 3번에서 제시된 국가의 역할, 국가가 사회를 관리할 핵심세력으로 등장하는 것과 국가부채사이엔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즉 국가란 괴물은 인민들을 빚더미 위로 올려놓으면서 자신은 힘을 얻은 괴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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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9-3 발제

9-3장 발제

중국의 경우 인도(위대한 종교들의 호소력에 국가가 저항)와 정반대이다. 제국과 종교를 결합시키려던 노력이 완벽하게 성공한 유일한 곳이 중국이다.

중국의 화폐이론은 언제나 ‘차탈리스트’(아래주석 1) )였다. 이는 부분적으로 규모의 효과 때문이었다. 제국과 그 안의 시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외국무역이 특별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낼 때 어떠한 것으로 내라고 요구하면 그것이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중국은 역사 대부분 反자본주의 시장 국가였다. (독점을 경계했다는 의미해서)

중국 불교는 그 자체의 상업적 기원에 충실하게도 시장의 언어까지 썼다. 업보라는 개념은 전생에 지은 죄가 현재의 빚으로 이어지며 그 빚은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마르지 않는 금고’(불교)에 돈을 기부하는 것이다. 그 결과 부채와 구원의 형식들이 정교한 사이클을 이루게 되었다.

상인들의 종교, 불교 : 사람들은 똑같이 무한한 ‘구원의 바다’에 의존함으로써만 자신의 무한한 업보나 무한한 젖 부채를 갚을 수 있다. 이때 ‘구원의 바다’는 소도원의 물질적 기금의 바탕이 되어 준다. 영원한 수도원은 사실 실용적인 형태의 공산주의이다. 집단적으로 소요되고 관리되는 부의 거대한 공간이고 또 영원할 것 같은 인간 협동의 거대한 프로젝트의 중심이라는 측면에서. 그러나 또한 이 바탕은 자본주의를 아주 많이 닮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속적 확장의 필요성 때문이다.

신용화폐로의 회귀 : 중세의 한 특징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추상적인 관념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폐는 다시 신용화폐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어음 역할을 하는 부절이 널리 쓰였다.

금속화폐주의자들 사이에는 정부 권력의 뒷받침만 받는 “피아트 머니”(법정불환지폐)는 결국엔 붕괴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중국을 든다. 이는 아주 이상한 일인데 왜냐하면 종이화폐가 사용된 그 몇 세기가 중국 역사에서 경제가 가장 역동적으로 돌아간 시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등장한 종이지폐 거의 대부분은 정부가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 종이지폐들은 단순히 일상의 경제적 거래에서 비롯된 신용도구들의 사용을 인정하고 확장하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신용화폐)

 

1) chartalism(차탈리즘): 1920년대 크납(G.F.Knapp)이란 학자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 후 케인즈가 한층 더 발전시켰고, 현재는 포스트-케인지언들이 계승해 발전시키고 있다. 차탈리즘은 법정화폐이론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수량화폐이론이 근간으로 하는 상품화폐 개념과는 정반대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법정화폐이론은 화폐가 오로지 국가의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관리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화폐 자체가 정부의 재정적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화폐는 국가권력이특정 징표를 소비할 때 쓰고세금의 형태로 수거하면서 시장에서 화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가 소비하며 유통시킨 돈을 세금으로 다 거둘어들이면(즉 재정적자가 없다면) 민간이 보유하고 있을 수 있는 돈은 하나도 없게 된다. 더불어 다음의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정부의 지출은 소득(주로 세금)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둘째, 정부가 납세자들의 돈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소비를 통해 돈을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정부는 화폐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부채를 통해 자금을 모을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실천적 결론은, 경기활성화를 위해 생산적인 분야에 재정지출을 늘린 결과 발생한 재정적자는 해로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산을 담보로 하고 있는 민간부채를 줄이는 효과와 유효수요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다. (출처 : 새사연 홈페이지 박형준 연구원의 글)

[공부집 셈나 - 9장 중세 3. 중세중국.hwp (15.50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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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제 9장 5절 극서 기독교 지역

5 극서 기독교 지역 : 상업, 대출, 그리고 전쟁

 

중세 유럽 : 금과 은이 주변에 있긴 하지만 성소로 더 많이 흘러들어가 저장,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사라짐, 시장에 대한 규제가 점점 교회의 수중에 들어감. 고리대금을 대하는 가톨릭의 태도는 이슬람의 태도만큼이나 엄격했고, 상인을 대하던 태도는 상당히 가혹했음. 고리대금은 우선 기독교의 사랑에 대한 공격으로, 가난한 자를 예수그리스도를 대하듯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짐.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베풀고, 상환에 대한 결정을 빌리는 자에게 맡기라는 가르침을 따르려고 함.

 

성 암브로시우스의 예외 : 외국인에게만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같은 동족에게 이자를 놓지 못한다.

 

성 바실리우스의 급진적인 태도 : 모든 것이 하느님이 주신 공동의 소유물, 부자는 소유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고 하느님이 지시함, 기독교적 공산주의.

 

교회는 기존의 재산권 질서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부자들이 기독교의 사랑에 입각하여 행동하도록 고무하는 영적 주장을 내놓을 필요성이 대두.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들의 편이기 때문에, 사랑의 선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빌려주는 융자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이자(천국, 혹은 영생)와 함께 되돌려 받을 것이다. 라고 설교.

 

교부들은 고리대금에 반대했지만 부자(영주)가 사랑을 베풀고 가난한 자가 다른 방법으로 감사를 전하는 봉건적 의존의 관계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음. 봉건시대 농노도 이론적으로는 자발적인 것으로 해석됨. 기독교 교인이 하느님에게 복종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듯이 농노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복종시키겠다고 선택하는 것으로 이해.

 

이슬람 사회가 상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암브로시우스 같은 교부들은 “정직한 상인”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 상인이면서 기독교 교인일 수 있는 지 의문을 가짐.

 

유태인을 둘러싼 오해

 

유태인들은 토라(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짐)와 탈무드에서 이자를 받는 융자는 금지되는 것으로 배움. 단 이교도들과의 거래에선 이자를 받음. 11세기와 12세기 유럽에서 유태인들은 고리대금이외의 모든 직업에서 배제되는 상황.

 

기독교 군주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유태인들을 이용. 영국의 왕들이 악명 높았음. 유태인들에게 높은 이자율을 물릴 권리를 부여. 유태인들에게 돈을 갈취. 고문과 투옥까지 행함. 당시 왕들은 다른 사람들이 유태인들에게 진 부채를 사실상 자신에게 진 부채라고 여기며 재무부에 그 부채를 관리할 부서(유태인 재무부)까지 둠. 또 유태인들을 이자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몰아붙여 살해하기도 함. 서유럽 전역에 고리대금으로 악명을 떨친 이들은 실제로는 롬바르드 족(북부 이탈리아 출신), 카오르 사람(프랑스 카오르 출신)들 이었음.

 

11세기경 수도원에서 담보대출을 함. 1148년경 담보대출 불법화됨. 1179년 고리대금이 사형으로 다스릴 수 있는 범죄가 됨, 프라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소도회 같은 탁발수도사들이 고리대금업자들이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설교하고 다님. 당시 설립된 대학에선 고리대금업이 불법인 이유가 논의됨.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 다른 사람의 시간을 절도 하는 행위, 돈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다루는 것은 돈의 진정한 목적을 무시한 처사이며 이자를 물리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 이후 점차 로마법(절대적 사유재산 개념을 갖고 있었다)이 부활 하면서 이자를 상환지연에 발생한 손실에 대한 보상, 돈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이익에 대한 보상으로 해석하기 시작.

 

상인 자본가의 등장

 

당시 서유럽,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 대부분들의 왕들은 약했고, 남작의 영지들과 공국들, 도시 공동체들과 장원들, 교회 영지 등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분할되어 있었음. 지배권도 전쟁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상황. 이탈리아 북부의 독립 도시국가들,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밀라노 독일의 한자동맹 도시들, 상인들이 정부를 넘겨받음으로써 자신들만의 사법제도와 군대까지 갖춤. 특징은 금융과 무역, 폭력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

 

근대적 금융의 개척자들, 템플 기사단, 솔로몬 성전의 군사기사단. 프랑스 영주, 템플 기사단을 통해 부동산을 담보로 맡기고 환어음을 받아 그것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현금으로 바꾸어 사용. 바루디와 페루치, 메디치 같은 이탈리아 은행 가문들, 탬플 기사단 출신(?)

 

인도양의 향료와 동양의 사치품을 주로 거래한 지중해 교역에서 금융과 상업이 발달. 당시 지중해는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지던 해역, 교역과 성전과 약탈의 구분이 모호했음. 상인들는 전사를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정부 역할도 함. 전장에 갑옷을 입고 나가기도 함. 당시 베네치아 상인들, 크레타와 키프로스 같은 섬들을 점령, 설탕 플랜테이션을 조성, 아프리카 노예로 경작. 제노바는 예약전쟁 같은 군사금융을 발달시킴, 투자자를 모아서 그 돈으로 전쟁을 하고 전리품을 배당금으로 나눠주는 형태.

 

우리가 아는 무사는 없다

 

아서왕 소재의 소설(프랑스 시인 크레티엥 드 트루아), 떠돌이 기사들의 모험을 그린 소설. 아서, 귀네비어, 란슬롯, 가웨인, 퍼시발. 용감한 기사와 마상 창시합, 로맨스와 모험을 그림.

실제로 땅시 떠돌이 기사들은 자객의 무리. 떠돌이 자객들이 12세기에 극성. 기사도 규범이나 마상 창시합도 떠돌이 자객들을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 이슬람은 성공적인 상인 모험가 예를들면 신밧드 같은 인물이 삶의 모델이 되었음.

 

유럽의 마상 창시합 : 한달에 두 번정도 열림. 가끔은 3천명이 운집. 말 중개상, 무기제조자들, 잡화상, 고리대금업자들, 광대, 곡예사, 마술사등이 모여듬. 베팅이 이뤄짐. 승자는 상과 말과 사람을 쟁취하고 몸값을 패자에게 요구. 패자는 몸값을 마련하기 위해 봉토를 저당잡히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리고 자기자신을 팔기도 함. 패배자들은 노상강도로 돌변하기도 함.

마상 창시합 중에 이상한 열정에 사로잡혀 갑자기 성지를 탈환하겠다고 맹세하며 전쟁을 하러 떠나기도 함. 부유한 기독교 도시를 포위해서 약탈하기도 함.

 

신비스런 숲속을 외로이 혼자 돌아다니며 도깨비와 요정, 마법사, 괴상한 동물들과 맞닥뜨리고 경쟁자들에게 도전하는 기사의 이미지 : 낭만적으로 미화한 상인과 기사의 이미지.

 

성배 : 바그너, 성배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이 추구하던 하나의 상징. 전사와 상인의 성격이 섞여있던 당시 유럽 상인들이 전투를 벌여 가면서 추구했던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이지만 동시에 무한하고 마를 수 없는 가치를 의미. 마크 셀 교수는 백지 수표와 같은 것이라고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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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6-3 발제문

부채 6장 - 3. 부권사회의 기원

화니짱

 

1. time

 

 

 

시대의 흐름

고대 그리스

호머의 시대

시장 등장 후

오늘날

time의

의미변화

명예

(아낌없이 주는 관용과 금전적 비용과 계산에 대한 노골적 무시가 특징)

명예가격 (전사의 영광과 상해나 모욕이 걸린 문제에서 피해에 대한 배상을 의미)

가격 & 시장에 대한 경멸의 태도

좌동

 

 

※ 가격과 명예 사이의 모순적 의미, 그러한 의미변화의 분기점은 무엇일까?

즉,‘자신의 금전적 채무를 상환화려는 의지가 명예인가?’아니면‘금전적 부채를 그다지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예일까?

 

2. 혼전 처녀성에 대한 강박관념

어느 지중해 마을사람의 명예감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돈에 대한 태도보다는 혼전 처녀성에 대한 강박관념부터 떠올리기 쉽다. 남자들의 경우 여자 가족들을 보호하는 능력보다는 여자 가족들의 성적평판을 보호하려는 능력을 더 명예롭게 여긴다. 19세기 이오니아에서 50년 동안 작성한 보고서를 분석해보니 폭력행위들 거의 전부가 한 쪽 당사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른 쪽 사람의 아내나 여자형제를 매춘부라는 식으로 욕한 것이 빌미가 되어 벌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실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상당히 신빙성있는 주장. ‘니미엠창’은 국제적인 맥락의 욕이었던 것이다.)

 

3. Crisis (‘위기’, 즉 도덕적 딜레마가 역사의‘분기점’을 만들어내다.)

인간경제에서 상업경제로 옮겨간 것이 어떤 식으로 도덕적 딜레마를 불러일으켰는지를 확인하기는 쉽다. 예를 들어 한때 결혼을 성사시키고 명예가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였던 똑같은 돈이 매춘부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쓰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현대인이 갖고 있는 명예에 대한 인식의 기원 뿐만 아니라 부권사회의 기원이 그러한 도덕적 위기에서 발견된다고 믿어도 좋다.

 

4. 매춘부의 역할

1) 세계의 경전들을 읽어보면 저항의 메아리가 들린다. 그 메이라엔 부패한 도시생활에 대한 경멸과 상인에 대한 의심, 그리고 여자에 대한 혐오가 함께 섞여 있다.(가난한 아버지들의 성난 목소리)

 

2) 매춘의 기원 : (신전 안에 거주한 매춘부들, 섹스는 성스러운 것, 매춘과 문명을 동일시) -> 부채 노예 상태에 놓인 가장을 돕기 위한 매춘이 발생 -> 가난한 집안의 딸들 사이에 매춘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음 -> 상업적 매춘이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짐.

 

※ 마지막 단계에서‘품행이 방정한 여자들과 그렇지 않은 여자들을 어떻게 명확히 구분하는가’하는 것이 중요해짐.

 

3) 매춘부와 방정한 여자들이 베일을 쓰는 경우 처벌함. 베일을 쓴 여자는 한 남자의 가정이이라는 영역 안에 갇혀 있어 몸을 팔거나 살 수 없는 여자임을 뜻했다.

 

[SLUTWALK] “옷차림을 slut처럼 입고 다니니 성폭행에 노출된다.”는 캐나다 경찰의 발언에 대한 반발로서 발생. 고대에 slut과 정숙한 여자의 구분을‘옷차림’이 했다는 것에서 이러한 발언의 의식적-무의식적 기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원이 가부장적 권력 하에 여성을 (가정 내 가장 값비싼) 소유물로서 소유(보관, 봉인, 관리)했던 사실에 근거한다고 볼때 슬럿워크는 그러한‘가부장적 질서’를 역사의 사슬에서 끊어내기 위한 공격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4)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는 부채의존이 제도화되어 있었다. 그 결과 가난한 채무자들의 딸들이 매음굴이나 부자들의 부엌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딸들에 대한 상품화의 압박과 여자들이 상품화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보호할 아버지의 권리를 재확인하려는 노력 사이에서, 여자들의 형식적 및 실질적 자유는 점진적으로 제한되고 줄어져간 것 같다. 그 결과 명예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 이젠 시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명예가 된 것이다. 동시에 명예에 대한 인식도 세계의 종교들처럼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시장의 논리를 반영하게 되었다.(시장에 의한 타락)[공부집 셈나 ; 부채 6-3장.hwp (16.00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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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6장 4절 명예와 부채(고대 그리스)

제4절 명예와 부채(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 영웅적 전사들이 지배하는 세상, 명예를 추구, 명예는 추종자와 보물의 가져옴. time이 명예와 가치를 동시에 의미. 200년 후 상업적 시장 발달, 모든 것들이 극적으로 변화, 당시 아고라는 공동체 집회의 장소이자 시장의 기능. 상업경제의 도래로 일련의 부채위기 발생.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헌법>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부잣집의 노예가 되었다.”라고 기록. 그리스 도시정부들 채무노예를 제한하거나 폐지하는 방법을 채택, 가난한 사람들을 해외 군사 식민지 건설 인력으로 활용. 식민화에 성공, 노예들이 대거 유입. 보통정도의 재산자들이 노예를 거느리며 도시의 정치 및 문화생활에 가담, 시민정치에 참여, 귀족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천박성과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함. 귀족들은 시장을 피함, 자신의 사유지 안에서 모든 것을 조달하려 함. 선물과 베풂과 명예의 세계를 지저분한 상업적 거래보다 우위에 둠. 상업적 감수성에 저항하는 문화 형성. 남자 소년과의 사랑이 전형적인 귀족의 관행. 민주도시 국가 남색을 불법으로 차단하려 함. 엉뚱하게도 더 보편화됨. 남자의 명예에 관한 그리스인들의 강박관념은 시장의 가치들에 대한 저항과 관련이 깊음. 소크라테스의 시대 남자의 명예는 상업에 대한 경멸과 공적 생활에서의 소신과 관련, 여자들의 명예는 거의 전적으로 성적인 문제, 처녀성과 겸손 정숙이 여자들의 명예의 기준. 아테네의 여자들조차도 공적인 공간으로 나갈 때는 베일로 자신의 몸을 숨김.

 

추락의 상징

 

귀족들이 돈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가진 이면에는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욕망이 자리 잡음.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살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돈을 원함. 돈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아무런 차별을 하지 않기 때문. 귀족들은 전차 경주와 선박의 무장, 고급 매춘부, 소녀 플루트 연주자, 곡예사, 미소년들을 자신의 고상한 취미로 내세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주화를 필요로 함.

 

돈은 일종의 욕망의 민주화를 불러일으킴. 별안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추구. 기본적인 필수품을 구하는데 조차 돈이 점점 더 필요. 초기 그리스 사회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양식과 집, 옷)은 당연한 것으로 여김, 기록에 나오지 않음. 그러다 돈과 상업경제의 발달은 기본적인 물품마저도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이 됨. 그리스 사람들이 자족 가능한 집안을 꾸리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린 바탕, 다른 사람들의 변덕에 휘둘릴 수 있다는 두려움. 자기아내와 딸들을 시장의 위험과 자유로부터 고립시키려고 부단히 노력. 중동의 남자들과 달리 그리스 남자들은 자신을 부채의 담보로 제공하지 않음. 적어도 아테네에서는 자유 시민의 딸을 매춘부로 고용하는 것이 불법. 품행이 단정한 여자들은 경제 및 정치생활의 극적인 현장에서 자취를 감춤.

 

시장의 위험

 

기원전 600년경의 그리스는 상업경제가 어느정도 발달, 부채위기 발생,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의 노예로 전락, 부채의 구렁텅이로 떨어짐, 소작인 신세로 전락, 심지어 노예로 외국에 팔려나감. 소요와 선동이 끊이지 않음. 금방 그리스 도시들은 천년 동안 중동의 도시들을 괴롭혀 왔던 온갖 사회적 문제, 부채 위기, 부채 저항, 정치적 소요사태가 불거져 나옴.

예전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노예 비슷한 것이 되기도 함. 그때는 양측 모두가 책임을 짐. 귀족인 전사와 미천한 계층인 피후원자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여겨졌지만 그래도 서로의 필요사항을 고려함. 후원의 관계가 부채의 관계로 바뀜, 이자를 물리는 대출, 씨앗으로 쓸 옥수수가 대출의 대상이 됨, 채권자의 입장에서 채무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음. 또한 채권자와 채무자는 법률적 동등을 전제. 양 당사자가 기본적으로 같음. 매우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형태의 평등임. 시장에서 평등은 지속불가능한 평등이지 않을까?

 

농업 공동체, 체와 낫, 숯과 식용유, 씨앗용 옥수수와 밭을 갈 소등 모든 것을 빌리고 빌려줌. 인간의 사교성의 근본. 물론 이때도 지나치게 많은 것을 빌리기만 하는 이웃은 성가신 존재. 상업경제의 발달은 서로 빌려주던 물건을 사려면 얼마가 드는 지를 정확히 아는 상황이 됨.

 

343쪽의 농담 이야기, 지중해 농민들이 겪던 딜레마.

 

돈의 등장, 어느 것이 선물이고 어느 것이 융자인지 모호해짐. 선물의 경우도 값이 약간 더 나가는 것으로 보답하는 게 언제나 바람직해짐. 선물하는 것과 이자를 지급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344쪽의 에게 해를 둘러싼 지역의 농민들의 즐겼던 농담(이자=offspring=새끼)

 

영웅이 중요시되던 사회에선, 명예의 부채가 중요. 선물에 보답, 보복, 포로로 잡힌 친구나 친족을 구조할 필요성 강조. 명예 = 약속을 지키는 능력. 사회가 점진적으로 상업경제 발달과 함께 변함. 온갖 종류의 불성실한 술책과 수단이 출현. 기원전 365년 경의 한 예.

 

아폴로도르스는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성공한 부자 아테네 시민, 니코스트라토스(귀족 출신의 가난한 시민)라는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됨. 니코스트라토스는 도망간 노예를 찾아 나섰다가 해적에 붙잡혀 에게나 섬의 노예시장에 매물로 나옴. 아폴로도르스가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친구를 도와줌. 니코스트라토스는 몇 명과 짜고 아폴로도르스의 재산을 가로채려함.

니코스트라토스는 여생 동안 미천한 출신의 친구에게 은혜를 입고 산다는 마음에 짓눌려 지내느니 사기를 쳐서라도 신분이 낮은 친구로부터 돈을 빼앗아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함.

명예의 부채라는 명예를 중시한 사회의 타락을 확인 할 수 있는 하나의 예.

 

선물과 융자 그리고 상업적 신용거래 사이에 구분이 모호해진 그리스 사회, 니코스트라토스의 경우도 이젠 지나치게 배은망덕하다는 점만을 배고는 특별히 이상한 구석이 없는 것처럼 보임. 상업의 발달과 당시 그리스 사회가 신용으로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조건이 거래의 익명성이 증가하게 했고 주화의 대량생산을 불러옴. 대량의 주화 유통은 해적이나 납치범 그리고 이들을 이용하는 융자업자라는 지하의 범죄시장을 형성하게 함.

 

선물과 융자, 신용거래

 

돈과 부채, 금융의 언어가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막강한 방법들을 제시. 생명은 신에 대한 빚으로, 의무는 부채로, 부채는 죄로, 복수는 부채의 회수로 이해하게 됨. 근대 윤리와 도덕 철한이 시작한 것이 이런 혼동 속에서이다. 플라톤의 <공화국>, 소크라테스가 피레우스 항구에 살던 늙은 친구를 방문, 정의에 대해 논함. 늙은이는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 사람을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함, 정의는 2가지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 다른 하나는 언제나 부채를 갚는 것. 소크라테스의 물음, 누군가가 당신에게 칼을 빌려준 후 곧바로 미쳐서 날뛰면서 그 칼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칼을 돌려주는 것이 정의인가? 늙은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문제를 포기. 늙은이의 아들 폴레마르코스는 선에는 선으로 악에는 악으로 갚고, 친구는 돕고 적은 해치는 것이 정의라 함. 그렇다면 자기한테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모든 사람들을 해치려 드는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인가? 라고 소크라테스는 질문, 또 상해를 입었다고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라고 질문.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 정의에 관한 논의는 모두 권력자의 이익을 정당화 하는 것이라고 주장, 통치자는 양치기와 비슷, 양치기는 양을 돌보다 최종적으로는 이익을 남기는데 이용하거나 잡아 먹음.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가 양을 돌보는 기술과 양들로 이익을 챙기는 기술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 통치의 기술도 일종의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음. 우리로 하여금 “권력”이나 “이자”같은 단어들이 그 자체로 추구 가능한 보편적 현실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돈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주장, 이어 어떻게 정치적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이 이득이 아니라 명예를 추구하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

 

오늘날의 도덕 및 정치이론의 핵심이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명제와 관련되어 있다.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 플라톤은 가장 먼저 비즈니스맨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적절함을 얘기하고 그리고 나서는 영웅사회의 관점, 모든 부채는 결국엔 명예의 부채이다라는 명제를 제시, 하지만 상업과 계급과 이익이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한 까닭에 영웅의 명예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함. 그 후 플라톤은 냉소적인 현실정책을 제시함.

 

부채를 꼭 갚아야 하는가? 이문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어떤 근본적인 딜레마를 제시하는 듯하다.

 

노예가 될 뻔했던 플라톤

 

플라톤은 바다 여행중 포로가 됨, 에기나 섬의 경매장에 나옴. 안니케리스라는 리비아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자가 플라톤을 알아보고 은 20미나로 플라톤을 구해줌. 안니케리스는 플라톤이 돈을 돌려주려는 것에 대해 오히려 영광이었다고 받기를 거부, 플라톤은 그 돈으로 그 유명한 아카데미를 지을 땅을 구입. 플라톤은 자기보다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철학자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에 특별히 행복해 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줌. 이는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길 좋아하던 플라톤이 그 이후로 아니케리스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사실로 확인가능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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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좌 1강, 외과의사의 아들, 광기를 사유하다를 수강하고....

오랜만에 수유너머 강좌를 들었다. 푸코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그의 책을 읽은 것은 거의 없다. 푸코와 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강좌를 신청했다. 함께 강좌를 규칙적으로 수강하다보면 푸코의 어려운 책도 좀 감당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있었다.

 

푸코는 외과의사의 아들로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가 의사인 관계로 의학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친밀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는 푸코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푸코는 청소년기에 이미 동성애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의사가 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으로 만들었고, 고독과 자책에 빠지도록 했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광기를 유발하기도 했다.

 

자신의 광기어린 경험이 광기에 대한 분석인 광기의 역사를 쓰도록 추동한 하나의 이유라고 할수 있을 듯하다. 광기의 역사를 통해 푸코는 정신의학자와 정신분석학자의 선조들이 어떻게 자신의 학문적 대상을 설정하고 광기를 식민화했는지 그 지배의 역사를 쓰고자 했다.

 

메스를 들고 시체를 해부하는 해부학자처럼 메스대신 펜을 들고 죽은 지식들의 시체들(고문서들)을 해부하여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구인의 경험에서 광기에 관한 지식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규명했다.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세 시기를 구분한다.

 

1.르네상스 시기

 

이 시기에 광기는 어떤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이해했다. 세상의 비밀이 광기를 통해 전해져 올 수 있다고 믿었다. 광기는 이성과 공통된 진리의 장 안에 있었고 오히려 이성보다 더 진리에 가까운 말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2. 고전주의 시기

 

광기는 “비이성”으로 정의되던 시기이다. 광기는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도시 안팎을 떠돌던 광인들은 구빈원에 감금되었다. 대감금이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당시 구빈원에는 광인들 범죄자들 거지들 고집 센 실업자들, 성병환자들, 온갖 유형의 방탕아들, 비이성적이라고 생각되던 모든 자들이 감금당했다.

 

당시 구빈원은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노동윤리를 체화시키고 도덕적 의무와 법률에 따른 삶을 살도록 강제하려 했다. 구빈원은 일종의 처벌기관이자 훈육기관 이었다.

 

3. 근대

 

비이성적이라고 간주되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근대 시기에는 좀 더 세밀한 분류가 이루어진다. 빈곤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경제적 현상으로 이해되고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죄수와 광인사이에 구별도 이루어져서 죄 없는 광인과 범죄자를 뒤섞는 것에 대한 고발이 나타난다. 새로운 분류에 따라 구빈원의 상속자는 광인이 되고 광인만을 위한 수용소에 새로운 성격이 부여된다. 이제야 비로소 질병으로서 광기, 정신병원으로서의 수용시설이라는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실증적 의학의 눈으로 광인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광인을 구속하던 물리적 사슬은 약해졌지만 대신 온갖 정신적 사슬이 광인 주위에 둘러쳐진다.

 

고전주의 시기 강제 수용시설이 근대의 의료적 공간으로 변모되는 과정에는 3가지 다른양상의 실천적 과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1. 광인에게 제한된 공간안에서(의료 시설) 주어진 ‘자유’의 선용이라는 실천.

 

광인들이 광기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제한된 자유의 공간이 주어진다. 그래서 그 공간안에서는 광기가 쉽게 노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표출된 광기를 정신의학적 시선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광기는 객관적인 언어로 해석되고 또 그 언어에 의해 포위되는 객관적 대상이 된다.

 

2. 광기를 식별하고 감시하며 판단하는 일차적인 책임자로서 간수의 꼼꼼히 기록하는 실천.

 

비이성의 구체적 양상, 비이성의 언어, 비이성의 역사가 ‘보호수 일지’와 같은 형식으로 기록된다. 섬세한 기록은 광기에 함축된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관한 지식의 거대한 원천이 된다.

 

3. 텅빈 수용소에 갇히는 상속을 떠안은 광인들의 범죄성, 다시 말해 그들이 왜 계속 강제로 수용되어야 하는가라는 범죄성에 대한 질문에 해명하려는 실천.

 

정신질환자로 재규정된 광인들의 범죄성은 사적인 원인, 심리적 원인에 준거하게 된다. 광인은 정상적 개인이라면 망각되고 극복되었어야 할 유야기의 충동과 행위구조 혹은 공격성 같은 것에 사로잡힌 퇴행적 존재로 해석하려는 실천이 이루어진다.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정신이상자는 유아기에 어떤 문제가 생겼고, 이를 잘 극복하지 못해서 유아기적 퇴행을 나타내는 존재로 이해된다. 신경증자나 정신이상자가 유아기적 퇴행이라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문제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사회가 개인의 현재와 과거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고, 뛰어 넘어서도 안 되는 간격을 만들었기에 유아적 행동이 광기의 피신처가 되고 유아적 행동의 재출현이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현대 교육학의 발전은 어린이를 성인의 갈등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목표와 함께 한 인간에게서 그의 유아기와 성인의 삶을 분리하는 거리를 강조한다. 그런 문화적 조건 속에서 지배적인 문화와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유아적 행동을 피신처로 삼는다.

 

근대 심리학은 신경증자나 정신이상자를 유아기적 퇴행으로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게 종교적 망상도 개인적인 퇴행으로 설명한다. 그렇지만 정신이상처럼 종교적 망상도 문화의 세속화라는 조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한 집단의 문화 속에 종교적 신비적 믿음이 현실적 경험에 통합되지 못할 때 종교적 망상이 발생한다.

 

< A4 용지 빡빡하게 적힌 강의안을 나름대로 적당하게 정리해보려 했습니다. 첫 강의라 약간은 멍하더라고요. 내용도 쉽지 않고 광기의 역사책은 읽지 않아서 강의안을 정리해보는 식으로 강의 후기를 작성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용어들은 강의안에 있는 내용이고 굵은 글로 표시된 마지막 내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박정수 샘이 강의하다 시간나면 좀 더 보충설명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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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5장 - 3. 폭력에 대한 반성

부채 5장 - 3. 폭력에 대한 반성

화니짱

 

1) 폭력으로 인한 인간경제의 왜곡

사회적 통화의 특징은 그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결코 인간과 같은 가치를 지닐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인간경제에서는 인간 존재들은 어떠한 물건과도, 종국적으로는 어떠한 인간과도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자형제 교환(결혼)’ 이나 ‘부채볼모’와 같은 식의 계산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또 어떻게 두 사람을 똑같은 존재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한 인간 존재를 교환의 대상으로, 예를 들어 한 여자를 다른 여자와 등가의 존재로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여자를 그녀의 환경에서 완전히 빼내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필연적으로 폭력이 따르게 되어 있다. 그녀가 그 때까지 살아온 환경을 완전히 버리고 노예가 되기까지는 엄청난 규모의 체계적인 폭력이 필요하다.

 

2) 우리들의 이야기

렐레족과 티브족 모두‘여자는 다른 여자하고만 교환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들이 다른 물건과 교환이 가능’해지는 예외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전쟁과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폭력의 수위가 엄청 높아졌을 때 예외적인 일이 나타났다.

아로 동맹, 파시스트, 마피아, 우익갱단들은 동일한 전략을 사용한다. 그들은 먼저 ①무제한적인 시장이라는 범죄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그 시장 안에서는 모든 것이 판매의 대상이고, 생명의 가격도 극도로 싸진다. ②그런 다음에 폭력집단들이 그 시장에 끼어들어 어느 정도 질서를 회복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서 장사가 가장 잘 될 부분만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둔다. 이제 폭력은 법의 구조 안으로 숨어버린다.③그들은 최종적으로 엄격한 ‘명예의 원칙’(6장)을 정착시킨다. 그 원칙에선 무엇보다도 먼저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 최고의 ‘도덕’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부채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그것은 전쟁과 정복과 노예제도의 유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명예와 재산, 그리고 자유에 대한 깊은 인식에 노예제도의 잔재가 그대로 박혀 있다. 다만 노예제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6장에서 어쩌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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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5장 2절 : 부적절한 대체물로서의 화폐

부채 5장의 2절 : 부적절한 대체물로서의 화폐

 

필리프 로스파베 (경제학자 출신 프랑스 인류학자) : 원시화폐는 원래 부채상환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끝내 지급될 수 없는 부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1926년 국제연맹 신부값을 노예제도의 한 형태로 보고 금지하려함. 인류학자는 3가지 이유로 반대. 1 남편도 아내에게 많은 책임을 진다. 2 아내를 판매할 수 없다. 3 남자가 돈을 주고 산게 있다면 아이들을 자기아이들이라고 부를 권리정도이다.

 

인류학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짐. 신부값은 노예를 구입하는 돈이 아니라 해결될 수 없는 부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식. 돈으로 어떤 여인에 대한 권리를 결코 획득 할 수 없음을 원시부족인들은 잘 알고 있었음. 한 여인에 대한 대가로 합법적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또 다른 여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

 

누에르 족, 살인 사건의 발생시 소(40마리)를 지급. 추장이나 친척들이 나서서 소를 받을 것을 권유. 피해자 가족은 완강하게 저항하지만 마지못해 나중에 받음. 소로 그 빚이 청산되지 못함을 모두 잘 알고 있음. 최종적으로 목숨으로 갚기 전까지는 그 살인죄가 결코 용서되지 않음.

이로쿼이 족의 경우 살인 사건의 경우 흰색 조가비 구슬 벨트가 건네짐. 범죄에 대한 용서와 참회가 담겨있음. 북아프리카 베두인 족, 살인자의 가족이 딸을 내놓음.

 

렐레족 피의 부채

 

콩고의 카사이 강 유역의 평탄한 곳에 살던 인구 1만 명 정도의 집단.

천은 일종의 통화 역할. 음식이나 도구 그릇등을 구입하는데는 사용안함. 옷은 화해를 위한 선물로 긴장을 해소. 이별과 축하의 선물. 성인이 되는 남자는 아버지에게 옷을 20벌 줌.남자는 자식을 낳을때마다 아내에게 옷 20벌 줌. 벌금과 수수료 치료비등으로 사용. 젊은이들은 아버지 어머니 삼촌등에게 존경의 표시로 옷 선물. 결혼시에 옷이 많이 요구됨. 캠우드라는 고액권도 결혼협상에 필요함. 늙은이들은 옷을 여유분으로 가지고 있음.

 

만약 누군가가 죽는다면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죽였음에 틀림없음. 아기를 낳다 죽으면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인 것. 간부가 그 죽음에 책임을 짐. 범죄자로 지목된 사람은 피의 부채를 짐. 희생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목숨을 빚짐. 범죄자는 자기 가족의 젊은 여자를, 자신의 여자형제나 딸을 희생자의 피후견인 또는 볼모로 넘겨줘야 함. 볼모는 상속됨. 그녀의 자식도 손자도 볼모가 됨. 자연히 남자들이 여자 볼모들을 가능한 한 많이 두길 원함.

 

렐레 족의 성인 남자들 모두가 다른 사람의 볼모로 잡혀 있거나 볼모를 얻고 교환하고 도로 찾아오는 게임을 줄기차게 벌임.

 

중요한 점 : 교환되고 있는 대상이 인간의 목숨.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 인간의 생명이 여자의 생명을 더 구체적으로 젊은 여자의 생명을 의미함.

 

볼모가 된다는 것 :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형식일 수 있음. 그럼에도 볼모지만 여자입장에선 어머니와 형제뿐만 아니라 별도로 돌봐줄 영주를 한명 더 가진 것. 그녀의 약혼자는 그녀에 대한 통제권 그 이상 절대로 확보 못함. 남자들이 여자들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책략을 쓸 여지가 많음. “마을 아내”가 되는 경우도 있음.

 

마을이라는 법인 : 렐레족 개인들은 서로에게 무력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일상에서 무력이 동원되기는 불가능 함. 볼모제도가 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아내제도와 마을과 마을 사이엔 마을 아내를 서로 만들려는 경쟁과 폭력의 사용이 가능했다. 마을자체는 요새화되어있었음. 생명의 가치와 돈 사이에 구축되었던 높다란 벽이 갑자기 붕괴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의 가능성이 대두되었을 때임. 어떤 여자가 도망쳐 다른 마을의 마을 아내가 되었을 때 그 여자의 볼모채권자는 그 권리를 마을에 팔수 있음. 마을은 그 권리를 마을 공동 기금으로 구입한 후 다른 마을을 공격해서 그 권리를 강제로 집행함. 생명의 권리와 화폐가 폭력을 통해 연결되는 지점.

 

무력을 배치할 수 있는 능력. 인간 생명은 오직 다른 인간 생명으로만 교환가능하고 재화로는 절대로 교환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지워버림. 볼모의 권리를 마을에 팔때의 가격 = 노예의 가격.

 

A=A(생명하나는 다른 생명 하나와 같다)에서 A=B(생명하나는 라피아야자 옷 100벌=노예가격)로 바뀌었다면 그것은 그 방정식이 무력에 의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인육부채(티브 족)

 

렐레족의 통화 : 전형적인 사회적 통화. 방문과 약속, 삶에서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는데 사용. 라피아야자 천은 옷, 캠우드 나무는 화장품, 육체를 적당히 사회적인 존재로 만들어 준 것.

 

인간경제 : 사람들이 신체 장식으로 사용한 물건들이 돈으로 먼저 사용. 구슬, 조개껍질, 깃털, 개나 고래의 이빨, 금과 은. 아름답게 보이는 목적으로 사용된 것들. 보리나 치즈 담배 소금등은 정부와 그 다음에 시장이 생기면서 통화가 됨. 인간경제에서 인간 생명은 절대적 가치를 지님. 다른 것과 교환 불가능한 것. 그러나 티브 족, 렐레 족 모두 그 내부에서 여자들을 교환하는 시스템은 존재함. 여자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발생하자마자 사람들이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창조한 부채 시스템들이 갑자기 사람들을 파괴하는 수단이 됨.

 

일반적인 원칙하나 : 무엇인가를 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그때까지의 사회적 맥락에서 완전히 분리 할 때 가능. 어머니와 아버지, 혈육으로 분리되었을 때 노예로 팔리는 게 가능.

 

티브 족 : 폴 보하난과 로라 보하난에 따르면 3개의 독립된 교환영역 존재. 일상적인 소비재와 관련된 영역, 남자들의 위신재, 여성에 대한 권리. 이 3영역은 철저히 분리. 일상적 소비재의 영역에선 오크라, 남자들의 위신재와 관련해선 놋쇠막대가 통화로 사용됨. 아무리 많은 양의 오크라가 있어도 당신에게 놋쇠막대 하나를 안겨줄 수 없다. 원칙적으로 놋쇠막대가 아무리 많아도 당신에게 여성에 대한 권리를 주지 못한다.

 

차브와 인육부채 : 심장에 자라는 사람에게 에너지와 매력과 설득의 능력을 주는 어떤 생물적 물질.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부릴 수 있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인간의 살점을 먹으면 차브가 얻어진다는 믿음을 가짐. 차브를 키운 남자들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무당으로 간주됨. 차브가 큰 강심장을 가진 무당은 당신에게 당신과 가까운 친척들의 시신에서 살점을 떼어내어 당신의 음식에 슬쩍 넣을 수 있다. 당신이 어리석게도 그 음식을 먹게되면 당신은 그에게 “인육부채”를 지게 된다. 그 인육부채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은 당신이 죽거나 당신의 가족 한 사람을 대체물로 약속하는 것이다.

 

강심장을 가진 남자들은 권력과 카리스마를 갖고있는 남자, 부채를 조작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여자를 자신의 아내와 볼모 딸로 바꾸는 권력을 상징. 뱀파이어 이야기 좀비 이야기와 같은 공포이야기는 사회적 삶의 한 측면을 솔깃하게 보여주는 듯. 대부분의 티브족 사람들은 남자 늙은이들을 무당이라 생각, 젊은이가 죽으면 그들이 인육부채를 회수한다고 생각.

 

티브족 사람들은 왜 구리막대 통화를 제한된 영역에서만 사용토록 했을까?

 

18세기 말 티브 족의 땅에 통용되었던 구리막대들, 노예무역업자들에 의해 수입된 것, 그 당시 티브 족 땅의 남쪽에 붙은 지역에선 구리막대들이 일상의 통화로 이용되었음.

 

대서양 노예무역 : 신용거래의 거대한 네트워크. 리버풀이나 브리스톨에 근거지를 둔 선박소유주들은 앤틸레스열도(서인도제도)와 미국의 농장주들에게 노예를 팔아 큰 돈을 남김. 선박 소유주들 올드 칼라바 같은 아프리카 항구로 구슬, 무기, 강철과 구리제품을 대량으로 가지고 옴. 아프리카 현지 상인들에게 볼모(상인들의 가족을 선호)를 잡고는 물품을 신용으로 거래. 현지 상인들은 노예를 잡아와서 대금을 치름. 폭력이 만연하면서 아프리카 기존 인간경제의 모든 제도들이 체계적으로 타락. 비인간화와 파괴의 거대한 도구로 인간경제 시스템이 작동. 남자들은 들판에서 일을 할 때도 무장을 하고 무리를 지어야 했음. 아로 동맹이라는 상인단체(?)가 중무장한 용병으로 질서를 어느정도 회복. 그들은 강제납치범들을 추격해 납치범들을 노예로 팔아 넘김. 또한 너무 엄격한 정의체계를 확립함. 나중에는 법을 어기는 사람은 아로동맹에게 넘겨져 노예로 팔려감.

 

엑페라는 상인모임 : 화려한 가면극을 후원. 부채를 발생시키고 집행하여 노예로 팔아버림. 액페공연을 위한 장비와 의상을 구입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됨.

 

상인협회들이 구리막대를 유통시킴. 노예를 사고 팔때나 장례식과 지위를 드러내는 장소, 선물과 부조등에 구리막대가 사용됨. 상인들의 존재 때문에 구리막대가 티브 족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게 됨.

 

“크로스 강의 상류 지역에서는 옛날에 누군가가 곤경에 처하거나 빚에 신음하는 상태에서 돈을 필요로 했다면, 그 사람은 대체로 자기 아이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을, 아니면 다른 가족을 주기적으로 마을을 탖던 아쿠나쿠나의 무역업자에게 ”저당“을 잡혔다. 아니면 빚을 진 사람이 이웃마을을 급습해 아이를 잡아와 노예로 팔곤했다.”

 

중앙권력이 없어서 자기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겐 엄청난 책임감,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에겐 별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환경, 다른 마을의 아이 납치는 현실적 대안.

 

채무자에서 그 다음엔 아로동맹으로 넘겨지고 그리고는 영국인에게 마지막엔 쇠사슬에 묶여 바다건너 플랜테이션으로 팔려나갔다.

 

<인간 경제의 붕괴>

 

인육 부채 이야기는 그 당시 노예무역의 참상을 담은 이야기 일 수 있다. 티브 족 채무자들은 자신이 부채상환을 집행하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아이들로 부채를 상환하다 자신의 몸뚱이까지 내놓아야 했다. 마을 노인네들이 아로동맹의 엄격한 법집행을 도운 측면 = 강심장.노예 무역업자들이 노예를 고기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노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 가족과 친족, 친구, 공동체에서 뿌리째 뽑혀 이름과 정체성과 존엄을 빼앗기는 것. 인간경제라는 원시 부족들에서 부족민들사이의 서로 관계를 맺어주는 시스템이 노예 무역선과 아프리카 상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거대한 살인기계 즉 인육 부채라는 시스템의 하나로 작동하게 되었다.

 

인간경제가 상업경제라는 것과 만나는 지점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태국과 발리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발리의 그 유명한 투계도 발리의 왕실이 인간 교역품(노예)을 만들기 위해 장려한 것이다.

 

“ 심지어 왕들은 수도에서 대규모의 투계를 개최하여 사람들이 빚더미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이 스포츠의 자극적인 면에 끌려 많은 농민들이 흥분한 너머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돈을 걸었다. 여느 도박에서나 마찬가지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희망과 경쟁의 드라마가 사람들을 열정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남은 수탉에게 박수가 쏟아지고 날이 저물게 되면, 많은 농민들이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까지 자바로 팔려나가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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