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나...

2008/09/16 22:44

내 젊음 흘러가는 것만 안타까워서,

못한 것, 안한 것만 되새김질하며 지난 세월 끝자락만 붙들고서 푸념하며 살았다.

이제 몇년을 살았네, 봄이 갔나 싶더니 여름도 지났네 하며 한탄하며 살았다.

 

그저 내 삶만 돌아보며 살았는데,,

그런데,

내 젊음이 흘러가는 사이,

엄마 아빠의 젊음도 흘러가고 있다는 건 왜 몰랐을까.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 아빠.

왜 할아버지처럼 자꾸 자식들한테 집착하실까 불평만 했는데,

문득 보니, 울 아빠가 할아버지 맞네... 할아버지가 되셨네...

엄마는 할머니가 되셨네...

 

아, 늙어버린 울 엄마 아빠. 어쩌면 좋을까...

철없는 자식들 탓에, 늙어가는 푸념한번 못하시고,

옆집가서 자식자랑 듣고 와도 자식들한테 풀어놓지 못하시고,

그저 아직 자식들 책임져야 하는 젊은 부모처럼 그리 사신 것을...

그저 부모 귀찮아하는 자식들 탓에

이제는 받아야 할 때를 지났는데도, 여전히 베풀고만 사시는 것을...

행여 자식들 불편할까봐 속으로 삭이기만 하시는 것을...

 

바보 멍충이같이 그것도 모르고,

남들 다 아는 그것도 모르고,

늘 받기만 하니, 엄마 아빠가 여전히 젊으신 줄로만 알았다.

 

속상하고,,, 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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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22:44 2008/09/16 22:44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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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한 날씨, 팍팍한 마음. 지끈지끈한 머리...

사진을 보면 좀 시원해질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틀을 머물기로 하고 올라갔지만,

하룻밤 자고 다시 도반으로 내려왔었다.

이틀을 머물자고 주장했던 나는, 하루 만에 내려오는 게 싫어서 시종 퉁퉁 불어있었다.

 

도반에 도착한 뒤엔 롯지에서 맥주를 마셨다. 비가 계속 내렸다...

 

이 날은 2006년 12월8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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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14:29 2008/09/09 14:29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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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절차

2008/09/02 20:50

장례절차.

 

한 인간을 보내는 일을 가장 객관적으로(드라이하게?) 관찰하기에는 일가친척의 장례식이 가장 적절하다.

물론 뭐~ 꼭 관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지나 지인을 보낼 때는 슬픔에 젖거나 또는 뭔가 팔 걷어부치고 나서서 일을 해야 하고, 본인이 당한 일인지라 어찌 살펴볼 겨를 없이 지나기 마련.

그러나 일가친척 장례식은 사실, 마치 장례식장의 비품처럼 가서 얼굴 내놓고 앉아있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더 어렸(젊었)을 때는 음식물 나르는 일 따위를 해야 했지만,

나도 어느덧 그런 시기를 넘어섰는지, 이번 장례식에서는 나의 사촌동생들이 허드렛일을 도맡았고,

나는 어르신들의 '평가 담화'에 꼼짝없이 낑겨 있어야 했다.

 

다름아닌 이모부의 장례식이었는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장례에는 슬픔과 한도 있지만 이와 함께 참으로 많은 철학과 겉치레와 공치사가 공존한다.

 

# 화환 평가

즐비하게 늘여놓고 위세를 과시하는 집이 있고 실제 겉치레라며 늘어놓지 않겠다는 뜻을 관철시키는 경우도 있고

겉치레라서 늘어놓지 않았다며 화환 없는 것을 애써 변명하는 축도 있다.

화환을 들여다보며 어디는 보냈네 어디는 화환조차 안보냈네 따위의 평가는 무료한 장례식의 감초라 할 수도 있겠다.

저 집 자식이 돈을 잘 번다더니, 화환도 많다~부터 시작해 에그, 저 집은 자식들이 다 집에서 논다더니 화환 보내줄 곳도 없나보네~... 까지...

급기야 "어머나, 저 집은 국회의원 화환도 있네~"라는 그룹까지 생겨나기도...

 

# 상주 평가 및 각 가정 평가로의 발전

저 집은 며느리가 안 우네, 이 집은 며느리가 슬피 곡을 하네, 제 슬픔에 우는 거지 시아버지 가신 게 슬퍼서 우는 건 아니네, 뉘집 자식은 일을 잘하네, 저 집 큰 아들은 들여다보지도 않네 어쩌네 저쩌네 장례식장을 압도하는 '어르신'들의 평가는 어쩌면 여러 장례식장의  유일한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요즘같은 시대는 더욱이 장례식장이나 혼례식장이 일가친척이 모이는 계기인지라

각 가정의 자식새끼들 직업에서부터 결혼 유무 및 돈을 얼마나 벌고, 부모한테 얼마나 잘하는지는 물론이거니와

사돈네 팔촌의 소식까지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집회'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는 땅을 샀고, 누구는 이혼을 했고, 뉘집 자식이 서울대에 들어갔고, 뉘집 어르신이 노망이 났다더라는 등등...

 

# 이모네 경우 

이모부는 금요일 저녁에 돌아가셨는데 월요일인 오늘 발인을 했다.

이른바 4일장을 치렀는데 이유인즉슨 주말이어서 못 찾아뵌 분들을 위한다고 했지만, 기실 전문용어로 이야기한다면 '수금'을 위한 것 아니었을까.

뭐 이틀장이면 어떻고 5일장이면 어떻겠는가. 상 당한 집에서 알아서 할 일인 바에야...

화장을 하기로 한 이모네.

화장한 뒤 납골당에 모시지 않고 뿌리기로 했다 하여, 것 참 잘한 일이네 싶었고.

절에 모셔 49재라도 지낸다고 하는데,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시세가 49재를 지내고 틈틈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4백만원을 절에 줘야 하고,

죽~ 쉬었다가 49재에 한 번만 제사를 지내는 건 150만원이라는...

아무든 이모네집 사촌동생들은 4백만원이라고 하자 그 돈으로 엄마나 쓰시라며 제사는 한 번만 지내기로 했는데,

그 집 동생들이 풍족하진 않아도 밥벌이는 하고 사는지라,

또다시 집안 어르신들 입도마에 은밀히 올려지고 말았다.

"것 참,,, 어차피 아버지 위한 일인데~ (인색하기는)..." 등등

절에 갖다 주는 것 보다는 엄마 주자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한데, 남 일에 평가는 절대 빼먹지 않는 어르신들.

 

# 시신 가공 과정

벽제 화장장. 화개장터도 이보다 북적댈 수는 없으리라.

물론 사람은 계속 태어나고, 태어난 사람들은 반드시 죽기 마련이니 화장장도 계속 성황인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요즘은 화장이 추세라지 않는가.

화장터를 향해 계속 운구차와 버스가 들어오고,

역시나 '슬픔을 이용해 장사하지 않겠다'는 현대종합상조나 '내 부모 내 형제처럼 정성을 다하는' 보람상조가 곳곳에 입장하고

이십여구의 시신이 동시에 서랍 속에서 태워지고 있는 엽기적 상황.

인간의 몰골로 관 속에 누워 들어왔다가 두시간만에 가루로 변해서 요강단지만한 유골함에 쏙 들어가는 허망함의 극치.

그 와중에 평정심을 갖고 있던 유족들은 얼추 두어번 통곡하고.

사연도 많겠지만, 누구나 똑같은 절차를 거쳐 같은 형태로 마무리짓는다.

물론 여기서도 담기는 유골함 값이나, 태워진 뒤 가는 거처는 천양지차다.

 

# 예식의 강자는 '남자'

이모네는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었다. 딸이 누나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아들은 결혼해서 아들까지 낳았다.

당근 상주 이름 순서는 아들, 손주, 며느리, 딸, 아내.

것 참. 요런 방식 빈정상하는 것이야 새삼스럽다.

그래, 이름 올라간만큼 남자들이여~ 열심히 '상주노릇'에 임하라. 근데, 며느리는 모야?

다종다기한 각종 잡무를 떠넘긴 다음 그 일을 해내는 모냥새를 본 뒤에 기어이 평가를 토해낸다.

대개는 이런 때에 '며느리'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완결된다.

난생 처음 보는 집안 어르신들까지 나서서 '이집 며느리는!~" 이라며 코멘트를 아끼지 않으시는 게다.

결혼 안한 딸은 아비 생전에 외손주는커녕 혼인조차 못했다며 천하의 몹쓸년이 돼서 더이상의 평가는 필요도 없이 '혼인' 주문만 이어질 뿐이다.

남편 병간호에 그간 고생한 이모는 '미망인'으로 불리고야 만다.

 

# 맑은 마음으로 보내드리면 그 뿐인 것을...

자그마한 절에서 제를 올리고 이모부의 장례 절차는 마무리됐다.

스님이 장례를 마무리한 뒤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기 모이신 일가친척들, 특히 유족들은 49재 지낼때까지 삼년상 치른다 생각하시고,

시비에 휘발리거나 나쁜 일을 당해도 피하도록 하고, 맑은 마음으로 지내셔서 고인이 좋은 곳으로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하라"

참 당연한 말인데도, 장례 절차에서 유일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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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2 20:50 2008/09/02 20:50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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