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공원 묘역에서 입구쪽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은 항상 막막했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설 때는 슬픔이 온 몸을 휘감은 듯하지만 팔과 다리엔 자연스레 힘이 들어가

멀리 보이는 새까만 비석을 노려보며 걸었다.

그러나 그 비석을 등지고 내려올 때는 맥이 풀리고,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머리 속이 하얘졌다.

 

형이 거처를 모란공원으로 옮긴 지 꼬박 9년.

이제 오솔길 오르내리는 것은 무심해졌고,

도리어 일상사가 막막하다.

 

햇볕 짱짱한 모란공원. 아홉번째 추모식.

형은 편안해졌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맘 때면 늘 내 안에 박혀있는 가시를 밖으로 꺼내 옆에 있는 몇 사람에게는 기어이 생채기를 내고 만다.

10년이 되면, 나도 내 안에 박혀있는 가시를 그대로 품어서 내 살 속에 박아 녹여버리는,

그럴 정도의 철은 들겠지.

철이 들고 나면, 일상사도 무심해지고

오솔길 오르내리는 일도 일상이 되겠지. 그러겠지.

그러리라(고 믿고 싶다).

 

- 노동운동가 김종배동지 9주기 추모식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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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12:52 2008/08/25 12:52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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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여기까지...

2008/08/20 23:10

내 머리와 가슴에 씌워져있던 '오해'의 막이 서서히 벗겨져 가고 있다.

 

난 솔직히... 고백컨데,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진짜로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에도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듯,

이 세상에서는 내가 주연(즉,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키를 움켜 쥔?)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말씀...

 

이를테면,

주연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이야기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조연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주 엄청난 일이지만 이야기 줄기에 별 상관이 없듯이.

(주연이 잠깐 인상을 찡그리는 것은 이후 큰 병을 앓게 된다는 암시가 될 수 있지만,

주연은 기냥 순식간에 죽어버리고 이후 이야기에는 등장할 수 없듯이..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이 몹쓸병에 걸리거나 크게 다쳐도 우리는 그가 바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왜? 주인공이니까!)

 

아무든, 각설하고.

요는 내가 주인공인 줄 알고 살아왔다는 것. (착각 지대로였지 ㅠㅠ)

그러나, 고것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이제서야(뒤늦게) 깨달았노라...

 

아 뭐~ 물론, 그동안에는 주인공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이제야 깨달았다' 보다는 '이제는 주인공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근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

 

어쨌건 나는 (더이상) 주인공이 아니(었)다.

뒤늦은 깨달음을 축하하며! 건배!

 

이젠, 내가 가진 열쇠로는 이 세상도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 울 집 현관문은 열린다... 아, 다행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대개는 주연 조연 불문하고, 복사 가능한 2천원짜리 허접한 열쇠 한 꾸러미씩은 가지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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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23:10 2008/08/20 23:10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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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2008/08/14 11:07

일욜 저녁부터 어금니가 슬슬 아팠다.

그러려니 했다.

월욜 저녁, 술을 한잔(아니 여러잔) 했다.

화욜 아침부터 이빨이 엄청 아팠다.

주변에서 들은 대로 죽염을 물고 있어봤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집에 들어가다 약국에 들렀지만, 너무 늦어서 약국은 다 문을 닫았고 집에 뒹굴어댕기던 진통제를 먹었다.

좀 나아진 듯 했다.

담날 아침 또 이빨이 엄청 아팠다.

한참을 고민하다 오후에 땡볕아래 치과를 향해 길을 나섰다.

삼실에서 15분가량 걸어서 도착한 치과의 내려진 셔터에는, "수요일 오후진료 없음"이라는 푯발이 붙어있었다.

잘됐다 싶은 생각에 약국에 들러 진통제를 사서 냉큼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실, 치과는 10년 전에 딱 한 번 가봤을 뿐이다.

6시, 간만에 일찍 집으로 향했다. 야구중계를 집에서 볼 참이었다.

집에 득달같이 들어가 TV를 켜고 저녁밥을 짓고, 상을 차렸다.

1회, 벌써 1점을 내줬다.

밥은 뜸이 들고 있는 중, 배가 고파서 먼저 깍두기를 집어먹었다.

이런, 내장이 꼬이는 듯 했다. 어이쿠~(다찌마와 리 버전)

밥상 차려놓은 앞에 나자빠져 혼자 뒹굴었다.

아주 약한 위경련. 이 증상은 네 번째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런 경우는 가만히 자빠져서 안정을 취하는 게 최고의 대처법이다.

다행히 2회에 이대호와 3회에 이용규 덕에 내 뱃속은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도 살겠다고 배는 계속 고파서 다시 밥을 먹었다.

이번에는 이빨이다. 으이구, 외로운 독거노파마냥 오물오물 밥을 넘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게임이 재미있었던 것이고, 게다가 한국이 이기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새벽까지 치통에 뒤척이다 아침.

치과에를 기필코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어제 갔던 그 치과에 들어섰다.

간호사가 "슬리퍼로 갈아신으시고, 기다리세요"라고 한다.

난 시키는대로 슬리퍼로 갈아신고 기다렸다.

그/런/데 가슴이 콩당콩당... 머리 속이 왔다갔다.

간호사랑 눈이 다시 마주치기 직전,

난 치과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어이쿠~

이빨은 계속 아프고, 아직 아침인데도 햇볕은 뜨겁다.

이빨 치료는 중국전으로 갈음해야겠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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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11:07 2008/08/14 11:07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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