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교원", "무늬만 교원"
"온전한 교원 지위 쟁취하자"
이게 한국비정규교수노조의 구호였는데, 이제 껍데기라도 좋고 무늬만 교원이라도 좋은 모양이다. 

고등교육법에서 강사의 교원에 대한 규정은 이렇다.

[제14조의2(강사) ① 제14조제2항에 따른 강사는 학칙 또는 학교법인의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계약으로 임용하며, 임용기간은 1년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제2조제5호에 따른 원격대학(사이버대학은 제외한다)의 강사는 교육과정 또는 수업의 효율적 운영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임용기간을 학기별로 일 단위로 할 수 있다. <개정 2016. 3. 2.>
② 강사는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및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을 적용할 때에는 교원으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국립·공립 및 사립 학교 강사의 임용·신분보장 등에 관하여는 다음 각 호의 규정을 각각 준용한다. <개정 2016. 1. 27.>]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 법률에도 이 조항은 그대로다. 말 그대로 말만 교원이다.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및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의 적용을 받지 않는 교원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김지훈 기자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거나 강사의 '교원'지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나 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72415.html?fbclid=IwAR2u8c5jd-8qdCRv0jkQO8NzmAof-YEWrqaV7n_GYaBQ5fNydnSabyojFAQ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9/05/26 21:43 2019/05/26 21:43

이 책 서평을 읽고 불현듯 언젠가 본 <스타 트렉> 시리즈의 한 편이 생각났다. 스타트랙의 배경은 24세기다. 나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SF영화를 볼 때마다 수백년 또는 수천년의 미래에도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설정에 자주 놀란다. 그런데 <스타 트렉> 시리즈는 좀 다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는 스타트랙 시리즈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스타 트렉 8 : 퍼스트 콘택>은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너무 유치해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내가 과도하게 진지한 스토리를 요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리즈의 이 8편은 스타트랙의 승무원들이 어쩌구저쩌구 해서 스타트랙의 배경인 24세기에서 21세기의 지구로 오게 된다. 이들이 지구에 와서 우연히 한 과학자와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Doctor  Zefram Cochrane이다. 제프람 코크레인 처음으로 광속을 돌파할 수 있는 우주선을 개발해서 외계인과 첫 접촉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기념해서 미래에는 자신의 동상과 자신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그냥 웁스~ 이런 식으로. 

 

내일 우주선을 쏘아 올려야 하는데 이 사람은 술에 취해 흥미를 잃었다. 급기야 승무원들이 나서서 재촉하고 달래는데, 왜냐하면 내일 우주선을 쏘아 올려야 이를 본 외계인과 첫 접촉이 이루어지고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사는 자신이 우주선을 만든 이유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어) 은퇴하면 열대의 섬에서 벌거벗은 여자들과 화끈하게 즐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승무원과 박사가 나누는 대화가 나의 흥미를 끌었다. 

 

승무원 : 보세요. 24세기에는 돈이 존재하지 않아요.    

박사 : 돈이 없다고? 당신 말은 월급을 받지 않는다는 거요?

승무원 :  삶의 동기는 부의 축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나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일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사회가 더 이상 자본의 이윤을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웃기는 상상력과 빈약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겨우 "21세기 새로운 분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그중 하나로 기본소득을 제시한다”는 건 더 웃기고 유치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4051437001&code=960205&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9/05/26 21:41 2019/05/26 21:41

 

 

어제 <내가 잠들기 전에(Befor I go to sleep)> 이 영화를 봤는데, 영 실망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 영화. 영화를 보고 이 영화 주제가 뭘까? 감독의 의도는 뭘까? 어떤 서브 텍스트가 감춰져 있을까? 이런 물음은 전통적인 분석을 위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물음들이다. 

 

“여자가 외도하면 자신도 잃고 좋은 남편도 잃고 친구도 잃고 심지어 아들도 잃는다. 여자여 외도하지 마라!”

내가 얻는 답은 이 정도일까?

 

로빈우드는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라는 책에서 고전적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를 일관성(coherence)과 비일관성 (incoherence)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분석하는데, 어떤 영화들은 동일한 장르 영화라 하더라도 장르의 일관성을 침식하는 어떤 이질적인 기호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서 옛날 영화를 말하는 건 아니다. 고전적인 할리우드 편집 스타일에 따라 제작된 영화를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라고 하고, 사실 거의 모든 할리우드 영화들은 고전적 편집 스타일에 따른다. 물론 완전히 고전적 편집 스타일을 거부하는 영화들이 있을 수 있는데, 로빈우드는 고다르의 <동풍>이나 <주말>을 이런 의미에서 일관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정 장르 영화든 복합적인 영화든 고전적 편집 스타일을 유지하지만 완전하게 고전적 스타일을 규현하려고 하지 않는 영화들도 있다. 코폴라의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이 그렇고, 리들리 스콧의 1979년의 <에이리언>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로빈우드는 이 책에서 <태시 드라이버>와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를 들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고전적 편집 스타일을 따르면서도 비일관성이라는 어떤 이질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은 한편의 논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튼 최근 수년 동안 내가 본 할리우드 영화에서 로빈우드가 분석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비일관성을 드러내는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아마 할리우드 영화의 서사가 시각효과에 짓눌리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9/05/26 21:38 2019/05/26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