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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7
    벌레(2)
    하노이
  2. 2007/02/16
    부드러운 칼, 정호승(2)
    하노이
  3. 2007/02/16
    경험이 위계적인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하노이
  4. 2007/02/01
    권태기인가, 조증인가.
    하노이
  5. 2007/01/31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5)
    하노이
  6. 2007/01/29
    블로그 새단장,(8)
    하노이
  7. 2007/01/29
    더 먼저 더 오래
    하노이
  8. 2007/01/22
    여성으로 '살아가는' 방법,(4)
    하노이
  9. 2007/01/17
    다가간만큼의 멀어짐을 인정하기(4)
    하노이
  10. 2007/01/12
    엄마맞이 청소(7)
    하노이

벌레

 

나는

벌레를 잡지 못한다. '잡지'?

벌레에 손대지 못한다.

벌레를 맨손으로 만지지 못한다.

 

동생과 살기 위해 오래된 투룸으로 옮기면서,

이전에는 혼자 냉랭하게 깔끔한 신축 원룸에서는 단 한 번 마주친 커다란 바퀴벌레와 비슷한 크기의 벌레들을

이 곳에서는 종종 만나야만 했다.

 

동생이 있을 땐 괜찮지만,

동생이 없을 때 벌레와 마주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걔도 나 땜에 놀랐겠지만, 나도 걔땜에 놀란다.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 동작이 경직되었음을 느낀다.

 

마주쳤던 걔가, 내가 당황한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면,

그 이후가 더욱 공포스러워서, 나는 점차 강해지게 되었다.

 

 



조용히 고무장갑을 끼고 신발을 신고 나서 벌레를 향해

에프킬라 류의 스프레이를 열심히 뿜어대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생이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

집에 벌레의 시체들은 하나 둘 늘어났다.

벌레를 건드릴 수 없는 나는, 스프레이를 뿜어댄 이후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살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어..'

라고 생각했었다.

 

오늘은..

통로도 아니고 바로 내 방바닥의 주요한 부분에서 벌레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엄지손가락만한 벌레였다. 더듬이 부분에는 먼지를 이고 있어서 문득 미안뜨끔했다.

 

당황한 나는,

근처에 있던 신문지로 그 벌레를 덮고, 눌렀다. 맨손으로!

잠깐 누르다 신문지를 들춰봤는데 벌레가 생생한 모습으로 기어 나오려 해서

나도 모르게 신문지를 다시 덮고 꾸욱꾸욱 눌러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문지를 들췄다가

파편을 흘깃 보고, 놀라서 다시 덮어버렸다.

 

죽였다, 는 생각이 드니까 무서워졌다.

 

내 두 손을 가만히 쳐다봤다. 무서웠다.  내 손이, 내가.

 

사라지면 내가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물론 불편함 이상으로 마음이 긴장되긴 하지만..)

징그럽다고 해서.. 무섭다고 해서..

어쨌든 내가 그렇게 죽여도 되는 건지.

문득 무서워졌다.

 

찜찜한 마음으로 신문지 덮인 그 상태 그대로 두고,

집을 나서는데

 

"벌레 보듯 한다"는 일상적인 표현이 떠올라서 더 괴로웠다.

 

 

내가 좀 더 힘들더라도

살아서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 없을까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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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칼, 정호승

부드러운 칼, 정호승

 

칼을 버리러 강가에 간다

어제는 칼을 갈기 위해 강가로 갔으나

오늘은 칼을 버리기 위해 강가로 간다

강물은 아직 깊고 푸르다

여기저기 상처 난 알몸을 드러낸 채

홍수에 떠내려 온 나뭇가지들 옆에 앉아

평생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칼을 꺼낸다

햇살에 칼이 웃는다

눈부신 햇살에 칼이 자꾸 부드러워진다

물새 한 마리

잠시 칼날 위에 앉았다가 떠나가고

나는 푸른 이끼가 낀 나뭇가지를 던지듯

강물에 칼을 던진다

다시는 헤엄쳐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갈대숲 너머 멀리 칼을 던진다

강물이 깊숙이 칼을 껴안고 웃는다

칼은 이제 증오가 아니라 미소라고

분노가 아닌 웃음이라고

강가에 풀을 뜯던 소 한 마리가 따라 웃는다

배고픈 물고기들이 우르르 칼끝으로 몰려들어

톡톡 입을 대고 건드리다가

마침내 부드러운 칼을 배불리 먹고

뜨겁게 산란을 하기 시작한다

 

-

 

분노를 동력으로 살아가는 건, 내가 지친다.

분노 뒤에 웃음이, 슬픔 뒤에 행복이 올거란 믿음은,

바로 지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뿐,

바로 지금의, 뒤엉켜 연결된 여러 가닥들을 느끼지 못하게 할 뿐.  

 

오래도록 슬퍼하고, 슬퍼하고, 슬퍼하고, 슬퍼하고 싶다.  

언제고 다시, 누구에게든 슬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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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위계적인 권력이 되지 않도록

 

 

나이가 들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말이 많아진다.

내 세계의 부서지고 깨짐을 경험하고 싶어서 말을 할지언정,

내 말의 옳음-이런 게 있기나 한건지-을 확인하기 위해,

말을 하고 싶진 않아.  

 

피해의 폭로라는 전략과 피해자화라는 폭력 사이에서,

자신의 편협함을 망각하는 편협함과 인정투쟁의 절박함 사이에서,

 

경험이 위계적인 권력이 되지 않도록.

 

 

- 2007년의 서늘한 마침표와 시작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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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기인가, 조증인가.

권태 [倦怠]

[명사]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조병 [, mania]

기분이 들떠서 쉽게 흥분하는 상태가 1주일 이상 계속되는 증세.

...증세는 유쾌한 감정, 자신감, 자기도취, 자기확신, 자기만족, 허세, 낭비벽 등이 나타난다. 의욕적으로 여러 계획들을 세워서 바로 실패하거나 포기할 만한 일들을 벌여 놓기도 한다..

 

-

 

모임 평가글을 써야 하는데(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계속해서 글은 쓰지 않고,

결국은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에엑.

 

지난 2주정도 동안, 무척이나 '꽉찬' 생활을 해오면서도,

나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착착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2주정도 보다 덜 꽉찬 일정이었던 이번 주는 어째 이상하다..

 

몸보다 머리가 훨씬 바쁘고 피곤해한다. 많이 활동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에서는, 생각조각들이 뭉치고 뭉쳐서 질질 흘러내린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흘러내리고, 회의 중에도 흘러내리고. 자기 전에도 흘러 넘치는 게 보인다. 흑. 머리 땜에 몸이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남은 방학기간과, 다가오는 한 학기에 대한 생각들, 하고 싶은 계획들이 뭉클뭉클 솟구친다.

문제는, 생산적인 계획 세우기가 아니라, 붕 뜬 구름 같은 생각들로,

바로 지금, 내가 해오던 것들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도피하고 있는 느낌이 함께 든다는 것이다.

 

해보고 싶은 여러 가지 것들을 떠올리며 생각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어째 좀 찜찜하다는 것. 꺄악.

 

마음을 가라앉게 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자세히 마주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떠오른 생각들 중에 몇 개는 대략이라도 메모해둬야지..  

 

-학내 성소모임, 혹은 여성주의 학회 관련한 네트워크 형성 방안이 없을까

 

-학생모임과 성희롱, 성폭력 상담소와의 연계 방법은 어떤 식으로 (활발하게) 가능할지 

 

-1학기에 학교 외부 활동의 수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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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개새끼들

미친놈들"

 

지금 나는

엄청 큰 소리로 욕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어딘가 마구마구 지금 내 속에서 들끓는 무언가를 뱉어내야지만이 내가 살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욕을 입밖으로 잘 뱉어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어린 시절,

욕하며 싸우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지켜보면서-,

욕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시끄러웠다.

웬 고상한 결심이람, 이라고 사춘기 시절에 이를 뒤엎으려는 시도를 해봤었지만,

되지 않았다. 진심으로,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딱히 욕을 해야 할 일들이 생기지도 않았다.

욕 할 마음이 들지 않는데, 옆에서 다 한다고 일부러 욕을 하는 건 유치하게 느껴졌다. 

난 내가 욕을 하지 않는거라고 믿기로 했다. 사실은 못하는 거 였으면서.  

 

대학에 와서, 내가 얻은 것들, 배우고 나서야 내게 절실했음을 알았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분노하기, 이다. 정확히는, 분노한 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 랄까.   

바로 이런 마음이 '분노'라는 거구나, 하는 걸 느끼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내 대학생활의 어떤 시기는, 오롯이, 분노하는 마음만이 내 온 몸을 채우고 나를 움직이게 하기도 했다.

그게 내 분노를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 믿기도 했었다.

 

분노보다는 사랑이, 내게 더 행복한 동력일 수 있다는 것,

더 힘든만큼 더 가치있을 수 있다고,  그렇게 받아 안은 이후에 나는 분노하더라도 오래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분노할 일도 새삼 줄었으며, 편안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들.

분노의 감정을 넘어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만큼 활활 타올라 내가 죽어버려야만 가라앉을 듯한

그런 일들이 있다.. 오늘이, 또 그러하다.

 

"개새끼들

미친놈들"

 

기타 등등의 욕을 하고 싶지만, 또 나오지 않는다.

"개새끼" 라고 하면, 어쩐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공격인 듯한 느낌과, 어째서 '개'취급 받는 게 욕인가 싶기도 하고,

'미친' 사람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지는 "미친놈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걸 따지고 있는 나 자신도 미친년일지 모르거든. 내 분노를 알맞게 표현해 줄 수 있는 통쾌한 말들은 과연 있기나 한걸까.

 

모르겠다.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지만, 그 사정을 공개적으로 밝힐 사정도 되지 못한다. 젠장할. 젠장할.

 

모쪼록 내가 살아나갈 수 있길. 내가 할 수 있는 내 몫을 해나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란 이 포스트 제목은 김연수의 소설들 중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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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새단장,

 

해남 여행 기록을 남기러 들어왔다가,

블로그를 새단장 해버렸다!

 

기본 스킨도 아예 바꾸고,

그 스킨에서 이것저것 편집도 해봤다 헤헤.

 

얼마 전,

덕수궁미술관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열심히 열심히 에너지를 쑥쑥 받아왔던,

장 뒤뷔페의 그림과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하나 하나 온 신경을 집중하며 보느라

그날 하루 엄청 피곤했지만, 그래도,

나나연작에서 느껴지던 생생함, 열정이 아직까지 뿌듯뿌듯한

니키 드 생팔의 그림을 넣어놔서 기분이 좋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던 순간들, 느낌들을

내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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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먼저 더 오래

 

고정희 시인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언젠가는 가보리라,  결심한지 일년이 좀 지났을까.

 

최근의 여러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번이 아니면

또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는 초조함에,

가야 하는 모임을 하나 포기하고, 주말을 비워서 다녀왔다.

 

해남여행을 다룬 수많은 인터넷 글들 중에서

고정희 시인 생가를 여행 루트에 포함하고 있는 여행 안내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시인 생가를 방문한 기록들을 자세히 훑으며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를 살피다가, 결국 주소 한 줄만 기억해 놓은 채

일단 해남으로 떠났다.

 

여행은 .. 짧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에 올라와서 갑자기 여러 소음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틈 속에 함께 하는 것이 익숙치 않게 느껴질만큼

내게 편안함, 평온함을 안겨주었다.

 

벌써 그 곳에 다시 가볼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번처럼 차가운 바람과 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떨어야 했던 그런 날 말고,

(이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약간은 따뜻할 때에. 약간만 서늘한 때에. 가보고 싶다.

 

여행에 관한 기록은 곧 남겨놔야지!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 있는 아픔 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더 먼저 문을 두드리고 더 나중까지 문닫지 못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문닫지 못하는 슬픔 중에 사랑의 문을 열게 될 것이요

 

더 먼저 그리워하고 더 나중까지 그리워 애통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그리워 애통하는 눈물 중에 사랑의 삶을 차지할 것이요

 

더 먼저 외롭고 더 나중까지 외로움을 떠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외로움의 막막궁산 중에 사랑의 땅을 얻게 될 것이요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는 절망 중에 사랑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요

 

더 먼저 목마르고 더 나중까지 목말라 주린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주리고 목마른 무덤 중에서라도 사랑의 궁전을 짓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 맺는 사람들아

사랑의 삼보-상처와 눈물과 외로움 가운데 솟은

사랑의 일곱가지 무지개

이 세상 끝날까지 그대 이마에 찬란하리라

 

 

-

 

 

이번 여행 덕분에 더 알게 된 고정희님의 시 중에서,

요즘의 내게 가장 마음에 와닿는. 언제까지나 기억하고픈 시가 있다.   

다 좋지만.. 3연과 5, 6연 참 마음에 든다.

 

'상처와 눈물, 외로움'이 '사랑의 삼보'라 하셨지만,

그것들이 사랑의 모든 구성요소는 아니라고. 그들의 합이 사랑은 아니라고.

단지, 사랑을 더 값지게 하는 것, 사랑이 필요로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사랑은 내게 언제나 어떤 것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상처와 눈물, 외로움과 분리되어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주어진 게 아니라,

그 모든 과정들 자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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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살아가는' 방법,

 

 

요즘들어 계속 드는 생각인데,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여기서 '살아나가는 방법'이란, 죽지 않고 호흡을 하면서 생활을 이어간다는 뜻)

 

현명한, 똑똑한 노예가 되거나,

 

우울하게 미치거나,

 

명랑하게 미치거나.

 

물론 이런 세 가지 방법들은, 어느 한 사람에게 한 가지만 해당하는 게 아니고,

세 가지가 연결되어 있으면서 분리되어 있기도 하고, 연속적이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선택되기도 하고, 강제되기도 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해봤다. 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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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간만큼의 멀어짐을 인정하기

 

언젠가부터, 몸이 느끼고 알게 되었던 내게 있어 사실인게 있다.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중에 꼭 그만큼 멀어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다가가는 법 뿐만 아니라

멀어지는 법 역시 알아야 한다는 것.

 

시작과 끝, 끝과 시작, 시작과 끝, 끝과 시작.

돌고 돌고 돌고 끊없이 이어지지만,

하나 하나 하나 가 모두 하나 하나 하나 인 관계들. 사람들.

 

 

한 때는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적당한 거리두기"로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에나 적당한 게 있기나 한건지.

 

넘쳐 흐르거나 모자라 허우적대는,

관계의 찌질함과 끈적함을 인정하지 않는 가식적인 쿨함은 내가 못견디겠더라.

 

지금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들을 두려움 없이 연이 닿는대로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고 다가가려고 하면서, 동시에 그만큼 많아질 많은 멀어짐을 준비하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함과, 동시에 깊어지는 만큼 멀어질 큰 괴로움을 준비하고 있는 나를 느낀다.

 

어이없고 또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런 어이없음으로 점철된 게, 삶이 아닐까 하는 그런 또 어이없는 생각.

삶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이 작은 미소와 코웃음 한 번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때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보다 일찍 죽고 싶은 소박한 소원이 있었다.

그럼 당장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당장 죽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내가 바랬던 그 소원이 무척이나 일방향적인 이기적이었음을, 시인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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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맞이 청소

 

*

 

열장짜리건 한장짜리건 낼까지 내야 할 레뽀를 쓰기 싫어서,

'아직은 글이 안써지네, 삘 받으면 써야지' 이런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계속 빈등빈등 컴질하던 때처럼 ..

 

회의 정리를 미리 해두겠답시고 컴을 켠 후에는

계속해서 다른 것들을 하게 된다 흑

 



내일은 고향에서 엄마가 오신다.

멀기도 하고 오는데 돈도 많이 들고 해서

아주 뜨음하게 오시는지라, 오겠다고 하면 반갑고 설레지만!

 

"이나 김치 좀 가져가야지.."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나의 난감함이 시작된다.

무겁게시리 가방 가득 가져오면서 힘들어할 게 뻔하기 때문. -_-

 

나: 그런 거 택배로 보내면 되지. 뭐하러 힘들 게 직접 가져오게..

엄마: 별로 안무겁다. 안무겁게 쬐끔만 싸놨어. 안무거운만큼만 가져가면 되지뭐.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곧이곧대로 믿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

근데 언제나 마중나가보면 무거워서, 둘이 나눠 들어도 둘다 낑낑거렸잖아!! T_T

심지어 내가 마중 못나갔을 땐,

"이렇게 무거운 거 들고 오느라 힘든데 넌 나오지도 않고.." 라고 투덜댔잖아!! T_T

(남동생이 마중안가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흣)

 

이젠, 전화로 적당히 말리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대강 지는척, 고마운척-_-(실제로 고마운 일이고 고맙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 마무리 짓고,

마중 나가서 예상했던 장면-무거운 짐들을 낑낑대며 가져오는 모습-을 목격해도

울컥 해서 짜증내지 않으려고-"안그런다며!!! 내가 뭐랬어!!"-마음의 준비를 해간다.

 

여기서 난감함이 끝이 아니라는 거!

 

집에 엄마가 있으면,

집에 엄마가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사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너무나 안정돼.

퀘퀘한 내 자취집이

그야말로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엄마가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

공기가 다르게 느껴져.

내게 있어 그런 존재의 사람이니까. '엄마'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이십여년 간 나를 케어해준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런거야.

 

그런데!!!!!

난 엄마가 내 방에까지 와서, 서울까지 와서-엄마도 설레하면서 온게 보이는데-,  

무상으로 힘든 가사노동하는 걸 보는 게 너무 불편해!

그리고 그게 다 '날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게 불편해!

 

엄마가 방에 올 때 항상 몇시간씩 삐까뻔쩍하게 방을 변신시켜 줄 때면 ...

닦여나간 먼지들이 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온 듯, 그렇게 갑갑하다.

감사하는 만큼, 마음에 그늘이 져. -_-

 

그렇지만,, 절대 말려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엄마맞이 청소'를 한다.

 

청결함이나 청소에 남동생보다는 민감하지만 엄마보다는 무디기에-_-.

그리고 주위에 친구들과 비교해봐서도 무딘 편이기에;;

나 좋은대로 해놓고 사는 모습 그대로 두면

엄마가 할 일이 참 많아지기 때문에

엄마맞이 청소를 한다.

 

물론 내가 정말 나로써는 열심히, 불필요한 부분까지 마구 청소를 해도,

나보다 훨씬 가사노동에 있어 전문성을 가진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해놔도,

내가 미처 못본 부분들을 잡아내서,

"사는 꼬라지하고는~" 하면서 일을 시작하실테지만-_-

그래도 최대한 줄여 봐야지하는 생각.

 

청소를 하다가 문득 든 느낌인데.

그냥,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엄마맞이 청소를 하는 게 즐거웠다.

나를 위해서, 내가 필요한만큼 청소를 하는 것도 그럭저럭 유쾌할 땐 유쾌하지만,

(하지만 남동생에 비해 내가 더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했을 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못난 감정에 휩싸이기도... -_-)

누군가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기쁨이 있구나, 하는 생각.

엄마를 위해서, 라고 하지만 그건 동시에 엄마가 일을 덜하면 내 마음이 좀 편해지니까, 

내 마음을 위해서 이기도 한것이구. 후훗.

 

엄마가 있을 땐 옆에 둘 수 없는 담배를 제거하는 걸로 마무리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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