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vs심상정 그리고 지만원vs진중권

행인[좌파가 글을 안 쓴다고??] 에 관련된 글.

지난 번 위에 트랙백 보낸 글에서, 워낙 중언부언 하다보니 놓친 것이 있는데, 마침 EM님께서 내방하시어 행인이 뭘 제꼈는지 생각나게 해주셨더랬다. 암튼 그 글에서 원래 하려 했던 말은 쉽게 이야기해 "지 자리에 맞는 글쓰기"를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격문을 써야 할 사람이 논문을 쓰고 앉았고, 욕설을 올려야 할 사람이 달래는 글이나 올리고 있으면 보는 이들조차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그거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바에야 걍 행인처럼 블로그 하나 끼고 앉아 지조때로 중구난방 대면 그만이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우익과 좌익은 글쓰기의 패턴이 거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지가 취하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는 전혀 별개로, 우익은 내용은 있던 없던 걍 지르고 보는 스퇄이고, 좌익은 보는 넘이 지겨워 죽어 자빠지던 어쨌던 지가 많이 안다는 거 자랑질부터 하고 보는 스퇄인갑다. 윗 글을 트랙백 보냈던 참세상의 기사와 관련해서도 얼핏 이야길 했지만, 기자가 상찬하고 있는 심상정의 글은 정치세력의 지도부에 앉아 있는 사람의 글쓰기로는 영 탐탁칠 않다. 게다가 싸움 한 번 걸판지게 하자고 도전하는 글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심상정의 원글에 대해 발끈한 노무현, 결국 지 성질 감추지 못하고 또 글을 올렸더랬다. 심상정의 글에 대한 생각이라는 아주 건조한 제목의 글이었는데, 제목은 건성이지만 내용은 역시나 싸움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좀 긴 글이었는데, 글은 길었지만 주제는 간단하다. 개방하지 말자는 거냐? 잘하자고 그러는 거 아니냐. 생각이 그렇게 없냐? 그러니까 심상정이 주류정치세력이 못되는 거다... 명료하다...

 

가만 있을리가 없다, 우리의 심상정. 그래서 또 글을 올렸다. 제목은 깔끔하다. "노무현이 비판한 신자유주의, 그게 바로 한미 FTA"

 

역시나 분석적인 글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글을 읽는 내내 구구이 명문이요 절절이 절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심상정 스스로 고백하듯이 절라 길다. 그리고 어려운 말이 많이 나온 만큼 기억하기가 어렵다.

 

두 사람의 논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건만, 이슈파이팅에 있어서는 심상정이 노무현에 완패했다. 두 사람의 글을 보면 알겠지만 노무현은 세세한 분석은 거의 하지 않은 채 큰 테두리를 치고 떠든다. 반면 심상정은 일단 노무현이 쳐 놓은 논의의 틀을 그대로 껴안고 세부적인 각론을 자꾸 언급한다. 이렇게 되면 싸움이 되질 않는다. 각론에 파묻힌 논의가 총론 자체를 뒤집는 경우를 거의 보질 못했다.

 

조금은 식상해지려는 이 두 정치인의 말싸움 와중에 오히려 눈길이 가는 말장난을 발견했다. 지만원의 철딱서니 없는 좌빨사냥 놀이에 대해 진중권이 CBS의 대담을 통해 한 마디 했다. 그런데 한 마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만원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진중권의 통렬한 한 마디 감상해보자.

 

그래서 제가 볼 때는, 모르겠습니다, 문근영 씨 집안이 훌륭한 집안이냐 안 훌륭한 집안이냐는 가치 평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딸을 저렇게 키웠다면 저는 훌륭한 집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아들을 저 지경으로 만든 지만원 씨 집안보다는 훨씬 더요.

 

건전명랑 욕설문화의 창달을 위해 고뇌를 거듭하고 있는 맹랑좌파당 자천 준비위원장 행인의 입장에서 진중권의 이 촌철살인은 아마 길이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욕도 이 정도면 예술의 반열에 올랐다고 봐야한다. 물론 지만원이 행한 바, 문근영의 집안 전체에 대한 매도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진중권의 욕설은 아예 지만원의 가문에 대고 욕설을 행한 것으로써 진중권 역시 연좌제를 이용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긴 힘들겠지만, 싸움을 할 땐 맞다이로 떠야 싸움이 된다는 고금 뒷골목의 진리를 그대로 보여준 사례가 되겠다. 저쪽이 연장질 하면 이쪽도 연장질 하고, 저쪽이 쪽수로 밀면 이쪽도 쪽수로 밀고.

 

뜬금없이 진중권의 발언을 가져온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노무현과 한 판 뜨고 있는 심상정이 뭔가 좀 배울 것이 있다는 차원에서 가져온 거다. 노무현이 쥐뿔이나 세세한 이야기는 다 쌩까고, 한미 FTA를 서두르지 말자고 뻘쭘한 멘트를 날리고 있을 때, 심상정은 미주알 고주알 하면서 니가 요건 잘못했고, 요건 개판을 쳤고, 요건 어쩌고 저쩌고 할 일이 아니었다는 거다. 걍 그나마 니가 정권잡았을 때 한미 FTA 발효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줄 알고 국으로 닥치고 있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한 마디 찔러주면 되는 거였더랬다. 정 아쉬우면 그 분석적인 글은 정태인이나 기타 연구원들 이름으로 내면 될 정도였고.

 

민주주의 2.0으로 들어가보니 노무현은 일단 2라운드 정도에서 지가 할 말은 다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고, 그 동네에서 한마디 한다는 넘들 엉덩이나 두드려 주면서 어른노릇이나 할 생각인 듯 하다. 그나저나 분기탱천, 한 판 하자고 덤볐던 심상정은 앞으로 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다.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하고 정치가다운 글을 써야 한다. 노무현은 그렇게 했고 심상정은 그닥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노무현vs심상정의 다음 라운드가 그닥 기대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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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8:34 2008/11/1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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