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교직생활이 남긴 것

행인님의 [대~한민국 고등학생] 에 관련된 글.

바로 앞글에서 행인은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인 바가 있다. 이 포스팅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가 아니라 이 글 올리느라 키보드에 실렸던 체온도 가시기 전에, 오마이뉴스에 어떤 현직 교사가 올린 글을 보게 되었다. 권영길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에 대해 태클을 거는 내용이다. 재밌는 것은 이전 민노당에 있을 때, 최순영의원실과 준비하던 '학생인권법'과 관련해 함께 논의를 했던 어떤 전교조 교사도 이 글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애들 안 때리면 교육이 안 되요~!"

 

이분이 학생들에 대해 걱정하시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정도다.

 

두발과 복장마저 자율화한다면 장발은 물론이고 파마, 염색에다가 찢어진 청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등교할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중략) 남자 어른들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행동이 흐트러지던 것이 다반사였지요.

 

언제나 그러하듯이 행인은 바로 이 대목에서 현직 교사들이 과연 어느 정도나 이와 같은 생각에 동의할지 궁금하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주장했지만 행인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학생들이 머리 염색하고 뽀글머리 파마하고 찢어진 청바지에 슬리퍼는 물론이려니와 자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통에 빤스바람으로 등교하면 어떻다는 건가? 게다가 이 27년 봉직하신 선생님,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서 자라나는 새싹들을 예비군하고 비교하나?

 

이 선생님의 희안한 발상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생체벌도 오히려 강화해야 합니다. 부모의 동의 아래 손바닥을 규정된 회초리로 일정 횟수 이내에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에서는 회초리를 파는 상점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보수 우익 할배들이 지들이 좌빨로 맘대로 규정해놓은 집단이나 사람에게 쉽게 내뱉는 말이 있다. "니들이 북에 가서 살아~! 북으로 가~!!" 이분들과 똑같은 말을 이분에게 던져보면 이렇다. "영국 가서 사세요." 물론 이분이 영국을 가서 교사노릇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 동네 회초리가 한국에서 사용되는 회초리와 동일한 조건 하에 사용된다는 보장도 없고.

 

문제는 이분이 현재 학교의 문제를 모르는 분이 아니라는 거다. 즉, "교육의 총체적 부실이 가져온 결과로 사회와 어른들이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학급당 35명의 학생에다가 주당 20시간이 넘는 수업, 무한경쟁으로 성적만 강요하는 사회분위기 등"을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결론은 영 엉뚱하다. 학생인권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애들 더 패야한다는 것이 이분 주장이다. 왜 이런 결론이 나올까?

 

적어도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다면, 이 분은 학급당 학생인원을 20명 이내로 줄이라고 하던가, 교사의 주당 수업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행정사무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임으로서 선생님들이 앞장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하던가, 입시폐지를 함으로써 대학입시경쟁에 아이들이 내몰리는 것을 막자고 주장하던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엉뚱하게 애들 더 쎄려 패야 한다뉘?

 

물론 이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지도하고자 하는 선의에서 학생인권법에 우려를 나타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과연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이분 한 사람 뿐인지, 그게 상당히 궁금하다. 이런 분들에게 교육받고 있는 학생들이 서울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역사특강'을 받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도 궁금하다.

 

행인은 이런 꿈을 꾼다. 애들이 머리 염색하고 뽀글머리 파마하고 찢어진 청바지에 슬리퍼는 물론이려니와 자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통에 빤스바람으로 등교할 수 있는 세상. 대학에 목매달지 않으면서 그 아름다운 10대의 시간을 수많은 추억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세상. 학생인권법에 우려를 표시하던 27년 봉직 현직 교사와는 정반대의 그런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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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8:28 2008/11/2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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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8/11/27 14:37

    행인님의 [27년 교직생활이 남긴 것] 에 관련된 글. 걍 기분 내키는 대로 (키보드를) 쳐 갈기는 것으로 대충 끄적여 올려놓는 행인의 씨잘떼기 없는 글에 fessee님과 디디님이 덧글로 훌륭한 글을 남겨주셨다. 본글보다 훌륭한 덧글들을 본글 아래 놔둔다는 것이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라서 두 분의 말섞기를 아예 새로 포스팅해본다. 물론 사전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나, 두 분 모두 흔쾌히 동의하시리라 믿는 바가 있는 데다가, 이 블로그의 쥔인 행인은

  1. 백만퍼센트, 행인사마의 글에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교실에 있으면 다 때려 죽이고 싶은 순간이 있으니 클 -_-; (물론 꾸욱, 꾸우우욱 -_- 하늘을 보고 심호흡을 합니다. 호호호) 죄업는 헤어와 파숑을 들먹이는 건 그야말로 논점이탈이라고 보고. "육체 노동이 골병과 빈곤을 부르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교육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엔 백번 동의. 낡고 닳은 도덕책의 구절 말고는 도무지 사람을 존중할 이유가 없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자아를 형성하는 중이니까요. ㅠㅠ

  2. 디디님/ 분명 학교 다닐 때는 그 "때려 죽이고 싶은" 학생이었음에 틀림 없는 저도 막상 교생을 나가보니 "때려 죽이고 싶은" 학생이 있더라는;;;; (교사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지요)
    개인적으로 "체벌"에 긍정적이긴 합니다만 그 "체벌"이란 게 "학생다운" 단정한 용모를 유지하게 하는 데 사용되거나 "때려 죽이고 싶은" 충동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는 데 사용되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래서 체벌을 찬성하는 이들일수록 체벌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제약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흠흠...

  3. fessee/ 음 +_+ 전 학생다운 단정한 용모를 싫어하고요. 체벌도 싫어해요. ㅎㅎ (그렇게 안읽혔다면 죄송 -_- 그런 뜻이었는데)

  4. 디디/그렇게 안 읽혔으니 염려 마십시옹...
    걍 디디님의 "때려 죽이고 싶은" 학생의 존재에 공감을 표하고 싶었을 뿐... ^^
    (행인님 블로그에서 뭔짓인지.. 디디님을 위해서라도 블로그를 만들어야 하나 ㅎㅎ)

  5. 두 분의 덧글을 본글로 올립니다. 사전 양해 없이 제 독단에 의해 결정한 사항임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ㅋㅋㅋ (사실은 양해해 주세용~~하고 청원하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