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닥치고 있는 로스쿨 지지단체들

재밌는 기사가 하나 떴다. 민주당 정세균 의원이 로스쿨법 개정안을 발의했단다. 로스쿨 신입생 선발로 한동안 전국 대학이 들썩이더니 그 뚜껑을 열어본 결과 서울 및 수도권이 전국 싹쓸이. 사법계의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로스쿨이 필요하다고 그 난리를 쳤으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강준만의 말만 옳은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인 거다.

 

또 재밌는 기사가 있다. 이번엔 홍익대가 로스쿨법 위헌소송을 걸었단다. 로스쿨 입학 총정원제를 규정하고 있는 로스쿨법 제7조가 위헌이라는 거다. 인위적으로 로스쿨 입학정원을 제한함으로써 직업의 자유, 대학자율권, 법률의회유보원칙 등을 위반하고 있으므로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미 로스쿨 논란이 불거졌을 때부터 예측했던 일이다. 미쳤다고 서울대가 막판에 로스쿨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겠나? 애초 서울대는 로스쿨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더랬다. 그건 로스쿨 못받겠다고 깜찍하게 앙탈을 부렸던 고대의 입장과 거의 비슷한 이유였는데, 기껏 로스쿨 정원 150명 받아봐야 사시 합격생 배출 인원보다 현격히 그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게 암만 봐도 손해보는 느낌이었던 거다.

 

그러나 마음 한 번 돌리면 피안이 여기 있는 법. 로스쿨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손해볼 것이 없다는 간단한 산술계산이 성립한다. 비록 자교 로스쿨에는 150명만 수용하더라도 전국 각 로스쿨에 서울대 학부출신들 죄다 보내놓으면 본전은 뽑고도 남는 장사가 되는 거다. 2000명 정원 로스쿨 입학시험 합격자 중에서 전국 각처 로스쿨을 자교출신자가 반만 먹어도 무려 1000명. 서울대 입장에서는 뽀대나는 장사는 아니더라도 전혀 밑천 떨어지는 장사는 아닌 것이다.

 

비단 서울대만이 아니라 서울의 소위 상위권 대학의 내심은 대충 이런 거였더랬다. 그리고 죄다 비스무리한 수준으로 짱구를 굴려가며 계산기를 두드렸던 거고. 그리고 그 계산이 수퍼컴퓨터가 계산한 것만큼이나 정확한 계산이었다는 것이 이번 로스쿨 입학전형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법률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지방로스쿨의 수도권 대학 출신자 합격비율은 전북대 74%(59명),경북대 73%(88명), 영남대 71.4%(50명), 전남대 67.5%(81명), 부산대 62.5%(7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대의 경우에는 합격자 39명 전원이 타대학 출신이었으며, 이중 수도권 대학 출신이 71.8%(28명)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전북대와 원광대 두 대학 로스쿨에 합격한 140명 중 도내대학 출신은 불과 11명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분노가 솟구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이건 뭐 자리 펴주고 돈 대주고 살림살이까지 다 장만해 놓았더니 그게 다 다른 집 혼수감 되어버린 상황이다. 합격자 발표 이후 주변 민심이 흉흉해지니까 어떤 지방 대학의 관계자는 "지역 인재 육성과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는 어긋나지만 우수인재의 지역 유입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앉았다.

 

이런 현상은 단지 입학생의 지역편중현상문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입학한 학생들이 나중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후 어디로 가느냐에 있다. 당연히 밥벌어 먹고 살기 유리한 곳으로 갈 거고, 죄다 서울 내지는 수도권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어차피 낯선 땅도 아니고 지들이 살던 곳이라 편하기도 하거니와, 지역 사법수요라는 것으로 성이 찰만큼 밑천 투자하는 것이 적은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로스쿨 운영방식으로는 이렇게 로스쿨은 서울 및 수도권 대학들이 싹쓸이하고, 각 지방 대학교와 지역 자치단체가 알뜰하게 꾸려놓은 밥상은 다 먹어치운 후에 정작 볼일 다 보면 짐빼서 다시 서울로 학생들 다 돌려보내주는, 지방으로서는 침만 흘리다 마는 일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참여정권때 지들이 난리 버거지 피우면서 로스쿨 만들자고 설레발이를 쳤던 열우당의 일파들이 염치도 없이 지역할당제를 내용으로 하는 로스쿨법 개정안을 내고 있는 거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다분하다. 지역할당제라는 것이 결국은 지방 로스쿨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없을 텐데, 지방대학 로스쿨은 걍 눈뜨고 당하고만 있겠는가? 동네의 입장이야 어떻건 간에 로스쿨이 있는 대학의 입장에선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중요한 거지 로스쿨 입학생의 집이 강남에 있건 마라도에 있건 상관이 없는 거다.

 

결국 이번엔 지방대학교들이 난리를 치게 될 터인데, 그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홍익대학교의 헌법소원이다. 이번에 홍익대가 헌법소원을 해서 그럴 뿐이지, 실상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한 각 대학교는 죄다 홍익대의 헌법소원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원배분에서 헛물을 켰던 소수인원배정 로스쿨 역시 이 헌법소원을 기화로 정원제철폐요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태세다. 그런데 이거 매우 어렵다.

 

우선 헌재가 이 헌법소원의 취지를 인용할 가능성이 무척 적은데다가 위헌결정이 나더라도 그 후폭풍은 가히 감당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애초 로스쿨 지지자들은 한국형 로스쿨은 일본형 로스쿨의 전철, 즉 애들만 죄 뽑아놓고 나중에 합격률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그런 폐단을 결코 밟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쌩구라를 쳐놨었다. 그런데 정원제 폐지를 하거나 혹은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원을 대폭 늘려준다고 해서 법조계가 변호사 정원을 대폭 증원하는데 찬성을 할리가 없다. 따라서 쌩돈 쳐들여 로스쿨 진학한 학생들만 나중에 식은 땀 흘리며 뿌렸던 돈만 아깝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지역할당을 하게 되면 지역대학 로스쿨들 역시 홍익대와 비슷한 이유로 헌법소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건 뭐 법률 하나때문에 헌재 연구관들만 바빠지게 생겼다. 뭐하러 이런 꼴같잖은 짓을 몇 년을 두고 반복해야 하나?

 

그런데 진짜 어이가 없는 것은, 사태가 이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로스쿨만이 사법개혁의 지름길이라고 입에 게거품물고 달려들었던 시민단체나 교수들, 이 상황에서 입닥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교수들이야 지들 밥그릇이 걸려 있으니 그렇다고 치자. "올바른 사법개혁" 어쩌구 하던 단체들, 그 단체들 지금 뭐하고 있을라나?

 

예상했던 대로 이 문제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 로스쿨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는 완전히 무시한 채, 일단 해놓고 보자는 식으로 정권의 밀어부치기를 방조(물론 지들은 아니라고 할 터이지만)했던 이들은 결국 문제가 갈 데까지 가고 있는데도 완전 쌩까고 앉아 있다.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면 애프터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들이 일조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으면 그걸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결자해지의 자세다. 언제까지 입닥치고 앉아 있는지 지켜보겠다. 아, 물론 어떤 방안을 내놓더라도 로스쿨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서로간의 밥그릇 크기때문에 벌어진 사태는 두쪽 다 밥그릇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할 때만 해결책이 보이게 된다.

 

중간에 거간을 서려면 그렇게 양쪽 다 밥그릇을 내려놓게 하고 거간을 설 일이다. 거간질 잘못하면 지금처럼 나서야 할 때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닥치고 앉아있게 되는 거다. 이런 모습은 건강한 21세기 시민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할 시민단체 혹은 인권단체의 자세가 아니다.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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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21:31 2008/12/1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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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9/01/13 21:30

    행인의 [입 닥치고 있는 로스쿨 지지단체들] 에 관련된 글. 왠만하면 걍 잊고 살라고 했는데, 꼭 잊을만 하면 기사가 하나씩 눈에 띈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가 아니라 입학준비시즌을 맞이하여 각 대학 로스쿨이 입학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소위 '선행학습'을 실시하고 있단다. 기사가 떠도 꼭 이런 류의 기사가 뜬다. 어차피 입학하면 정규커리큘럼을 통해 배울 내용들을 선행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미리 가르치는 이유는 뭘까? 우선 가르치는 내용

  1.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이름 하나...

  2. 로스쿨법을 강력히 주장하고 지지했던 이른바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아마추어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던 셈입니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지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지금의 사법고시가 문제가 많으니까 그 대안으로 로스쿨이 좋다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죠.

  3. 빨간뚱띵이/ ^^;;; 아마도 제 머리속에 스쳐지나가는 그 이름과 같은 이름일 듯 합니다.

    참군/ 앞으로 더 첩첩산중이 될 거라는 것이 더 큰 문제죠.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