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 "쇼"?

紅知님의 [Good Job!!!] 에 관련된 글.

 

이게 "파블로프의 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조건반사인지는 몰라도,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벌어지는 센세이션한 사건이 눈에 띌 때, 행인은 불현듯 '그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면 잠을 못이루는 행인, 급기야 '그분들'이 요즘 판돌아가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한 소리씩 내뱉어 놓으셨을까 검색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기대에 어긋남 없는 '그분들' 중 한 분의 발언을 소개하게 되었도다. 오늘 행인의 포스팅을 장식하게 된 '그분'은 영등포 지역구 의원씩이나 하고 계시는 전여옥 의원. 며칠 전 말씀이긴 하나 국회의사당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는 이종격투기 생중계와 연결해 볼 때 매우 시의적절한 발언이 아닌가 하여 혼자 보긴 아까운 마음에 살짜쿵 소개하는 바다.

 

지난 15일자로 전여옥 의원께서 자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제목은 이렇다.

 

"그래도 '쇼'는 계속된다?"

 

모 이동통신회사 선전기획물은 아니고, 바로 그 전날에도 이분은 국회의사당에서 야당이 몸빵하는 것을 두고 "쇼"라고 선언하는 글을 올렸다가 만세탕(악플)을 댓사발은 잡수셨다. 그러나 찌질한 악플러들의 궁시렁거리는 몇 마디에 주눅들 사람이 아닌 이분, 기어이 한 마디 더 할라고 저 글을 올렸던가보다. 그런데 그 내용이 구구이 격언이요 절절이 금과옥조다.

 

"저는 일차적 문제는 정치인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유권자' 즉 국민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내 말이 그말이다. 유권자인 인민의 책임도 있겠지.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분이 유권자 책임론을 새삼스레 거론하는 것은 어째 좀 어색하다. 사실 유권자들에게 오늘날 정치파행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원천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주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물타기가 될 우려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자신의 표를 던지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봐야 하는데, 하나는 신뢰고 하나는 기대다.

 

신뢰는 유권자가 제한적으로나마 파악하게 된 대상의 과거 경력과 인물됨에 대해 "이런 사람이라면 정치를 잘 하겠거니" 하는 판단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기대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해주겠거니"하는 자기 이해관계의 반영이다. 이 둘이 결합함으로써, 또는 적어도 어느 한 가지를 충족함으로써 유권자는 자신의 표에 대상의 이름을 올리는 거다.

 

유권자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거나 냉소하게 되는 건 최소한 '기대'라는 부분에 충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대'의 충족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의원들에게 있다. 하라는 짓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하고 있으니 유권자가 쌩까게 되는 거다. 그렇기에 유권자 책임론은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전여옥이 이야기하는 유권자의 책임은 어느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있을까? 신뢰? 기대? 전여옥은 책임을 져야할 유권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밝힌다.

 

"그 허구 헌 날 하는 쇼에 언제나 속아 넘어가는 국민들"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쑈걸 중 한명인 전여옥 의원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참 아이러니긴 하나 꾹 참고 들어보자.

 

그런 국민들이 누구냐 하면, "예산안 통과 때 보여준 쇼를 보고 '그래도 민@@당!'하며 무수한 댓글을 다는 분들"과 함께 "그래도 저 사람들은 우리들을 위해 몸싸움을 하고 울부짖는구나"라며 감동먹는 띨한 국민들이라는 거다. 이런 국민들 때문에 쥐뿔도 없는 정치인들이 '쇼'로 먹고 살게 됨을 전여옥은 한탄한다. 어째 이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천하의 일본도 없다고 큰소리를 쳤던 사람이니 뭔가 큰 뜻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속 글을 읽다보면 아주 기가 막힌 비유가 나온다.

 

전여옥은 쥐뿔도 없이 '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표를 던지는 책임 많은 유권자들을 이렇게 비유한다.

 

"마치 똑똑한 여성이 바람둥이 남성에게 너무도 쉽게 넘어가듯이, 너무도 괜찮은 성실한 남성이 집안 거덜낼 여성에게 눈이 멀듯이 말입니다."

 

호오... 그렇다면 어찌하란 말인가?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 현상이 상열지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투표행위에서도 나타난다는 획기적 사실을 발표하신 전여옥 의원께서는 이런 띨한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야 '쇼'가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단 말인가?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행동하는 다수'의 길을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선전선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이거다. 실천하지 않는 자, 그 입을 다물라. 거리로 나오지 않는 자,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치우라. 뭐 이런 거 아니겠는가? 이렇게 전여옥 의원이 정말 옳은 이야기를,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언 얼마만이란 말이냐? 맨날 영등포역 노숙자들을 치워주겠다는 씨잘데기 없는 소리나 늘어놓고 다니던 분이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되나 쇼킹은 다음 순간이다.

 

"제가 정치에 들어온 이유는 2004년 탄핵쇼의 와중에서 '침묵하는 다수'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랬다. '침묵하는 다수'를 위해 한 몸 살신성인 하는 마음으로 여의도로 진출하여 거리거리의 노숙자들을 일소하고, 대한민국 1%의 무궁한 앞날을 위하여 99%의 등짝을 후려갈기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전여옥 의원은 국회로 진출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1%가 다수여, 99%가 다수여? 어째 그넘의 1%는 하루가 멀다하고 먹을 거 더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쓰는데 99%는 집회도 맘대로 못하고 온라인도 맘대로 못이용하는 세상에 떨고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시끄러운 1%를 위해 초개와 같이 뻘짓을 하시는 분이 침묵하는 다수를 위해 국회로 갔다니 기절초풍할 일이다. 게다가

 

"가슴치는 호소와 눈물, 몸부림도 불사하면서 나만은 깨끗하며 나만이 신선한 정치인이라고 눈을 똑바로 뜨고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감히 묻는 이들이 있답니다."

 

이런 이중적인 인간들이 국회에 있다는 것을 폭로까지 해주신다. 행인도 그런 사람 몇 알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하나가 전여옥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지금까지 자아비판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숭고하게 자아비판을 하던 전여옥 의원, 마지막 힘을 모아 아랫배 근육을 경직시키면서 힘차게 힘차게 외친다.

 

"이제 더 나은 나라, 더 선진화된 정치를 위해 '침묵하는 다수'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아... 동의 100%다. 이제야말로 '침묵하는 다수'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동안 닥치고 있던 입을 열고, 쉬고 있던 손가락을 풀고, 감추어놨던 연장을 꺼내들고 "결단"을 해야 한다. 더 큰 목소리로 떠들고, 더 활발한 움직임으로 키보드 위를 종횡무진하고, 손에 손에 연장을 들고 거리 거리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싸가지는 쥐뿔도 없으면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감히 묻는 정치인들의 마빡에 힘찬 삽질을 해주고, "쇼"를 중단하게 함으로써 "더 나은 나라, 더 선진화된 정치를 위해" 힘찬 전진을 시작해야 할 때다.

 

개인적으로 전여옥 의원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본인이 원했던 것처럼 "침묵하는 다수"가 들고 일어서는 그 때, 어디 튀지 마시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두 팔 활짝 벌리고 "침묵하는 다수"의 힘찬 행진을 온 몸으로 받아주시라는 거다. 그 "침묵하는 다수"가 전여옥 의원을 보면 감격에 겨워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으나 어쨌건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니 어떤 사단이 벌어지더라도 전여옥 의원은 행복하리라.

 

그 날의 사태는 의원회관에서 보좌관들이 소화기 뿌려대고 워햄머질 해대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만은 내 자신있게 장담한다. 더불어 그 와중에 위대한 전여옥 의원께서 말 그대로 "분골쇄신" 되더라도 그분은 끝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황홀감에 행복하실 것 역시 장담하는 바이다. 하루 속히 "침묵하는 다수"가 손에 손에 연장들 들고 거리로 나오기를 행인도 기대한다.

 

덧 : 그런데 항상 궁금한 것은 "침묵"하고 있다는데, 얘네들은 그 사람들이 다순지 소순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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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9 18:57 2008/12/1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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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번 느끼는 거지만 행인님의 포스팅은 언제나 시원시원하십니다. 쎈스가 넘치시는데요... 뽀쓰 넘치는 포스팅 항상 감사합니다. 속시원하군요.

  2. 처음처럼/ 저보다는 여옥님께 감사를. ㅎㅎ

  3. "하루 속히 "침묵하는 다수"가 손에 손에 연장들 들고 거리로 나오기"를 태평양 건너에서도 기원합니다.^^

  4. 삐딱선/ ㅎㅎㅎ 내년에 그렇게 될까봐 쟤네들도 무척 겁먹고 있더라구요. 태평양 건너의 기원이 조만간 실현될 것 같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