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고시계(考試界)라는 잡지가 있다. 말 그대로 고시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출간하는 잡지다. 어차피 고시하고는 인연 자체가 없는 행인으로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잡지다. 어쩌다가 한 번씩 옛날 자료나 논문을 찾기 위해 들춰보는 정도다.
연구실에 이 잡지가 정기적으로 배달되는데, 우연찮게 심심풀이로 최근 판(2009/7)을 들췄다가 원로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의 "시론"을 보게 되었다. 결론은, 어 쉣... 눈 버렸다...
내용은 별 거 없다. 북한이 개판을 치고 있다. 이 와중에 남한 내에서는 과격분자들(김철수의 표현대로라면 "내부의 적")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럴 때는 집회 시위 적절히 해야 한다. 밖에서 떠들지 말고 안에서 논의해라. 공익과 국가수호를 위해 한 마음 한 뜻이 되자. "민주국가 없이는 시민의 자유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구조가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김동길, 조갑제, 지만원 등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글을 쓴 장본인이 한국 법학계에서 최상급 원로 대접을 받고 있는 헌법학자라는 것. 게다가 판매하신 교과서는 얼마나 많은지... 하다못해 공무원 시험 준비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허영, 권영성과 함께 그 고명하신 성함을 우뢰와 같이 들어봤으리라.
결정적으로 이분 글에서 주저앉아 버린 부분은 바로 이 구절.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허가된 집회라도,
헌법이 집회의 허가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로 여겨지지 않는다. 법학이라는 학문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용어의 정의에 충실한 표현을 해야만 한다. '아'와 '어'의 차이로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다못해 학부생이 레포트를 작성할 때라도 주요 단어의 정의를 항상 염두에 두고 문장을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원로학자되시는 분이 이런 표현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바로 기상천외의 경지가 되겠다.
이 분들에게 배운 그 수많은 제자들과, 이분의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한 그 수많은 관료들은 도대체 뭘 배운 걸까? 이 기본도 되지 않은 시론씩이나 읽어가며 고시를 공부하게 될 수험생들은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될까?
갑자기 "공공의 적 2" 결론 부분에서, 젊은 재단 이사장과 함께 은팔찌 차고 호송버스에 오르던 고위인사의 한탄이 떠오른다. 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는데, 대충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구만" 뭐 이런 말이었던듯. 이분 글 보면서 왜 이런 생각이 났을까? 행인은 애국자도 아닌데.
여하튼 법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이런 글을 읽으면 참 슬프다. 내가 왜 법을 공부했나 싶다.
영희도 각종 노동법에서 양벌규정을 사용자의 개선노력이 있으면 벌하지 않는 것으로 죄다 개정해 놨더만... 철수랑 영희랑 잘들 노는구만요 -_-;;
옛날 국어책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말썽을 피우는군화...
다행히도(?)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은 시론을 읽지 않습니다. 고시계의 합격기만을 열심히 섭취할 뿐!
이번에 노무현 합격기 다시 실었던데 그거 많이들 봤겠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