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하자는 걸까?

행인[희망과 대안 없는 "희망과 대안"] 에 관련된 글.

 

창립식의 헤프닝과 박원순의 글을 통해 기왕에 짐작은 했다만, "희망과 대안"은 좀 난처하다. 물론, 희망은 언제나 필요하다. 비록 절망의 한 가운데에 있더라도 언젠간 빛 볼 날이 있을 거라는 기대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희망이라는 게 그닥 돈도 들지 않는 거고, 덕담으로 한마디씩 하기에 얼마나 간편한가? "쥐 구멍에도 볕들 날 있는 거여~" 하긴 쥐구멍에 볕 한 번 제대로 들었다가 사회몰골이 영 말이 아니긴 하다만.

 

대안이라는 것은 그래서 필요한 거다. 구체적으로 걸어볼 뭔가가 없다면 희망은 그저 몽상일 뿐이다. 문제는 그 구체적인 대안이라는 것이 언제나 희망사항이라는 거다. 구체적인 내용의 실현을 희망하고자 하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구체적 대안이 나와줬으면 하는 희망사항. 여기에 문제가 있다. 로또 대박을 학수고대만 하고 있는다고 대박이 터지는 것은 아닐 터. 일단 복권부터 사놓고 볼일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희망과 대안"은 일단 말빨 센 사람들부터 우선 모아놓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복권은 사지도 않은 채 당첨금 사용처부터 정하자는 꼴이다.

 

레디앙과 인터뷰를 진행한 "희망과 대안"의 운영위원 하승창은 끝내 구체적인 대안의 제시를 하지 않는다.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걸 내놓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인터뷰를 재독 삼독 해봐도 대안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는다.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 대안을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는 십분 이해하겠으나, 이런 식이라면 그냥 무작정 깃발 앞으로~! 한 후에 사람 모이는 거 봐가면서 어디로 갈지 결정해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거 아닌가?

 

"파병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한미 FTA도 비준만 남은 상태다. 지나간 것을 지나치게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개인 생각이다."라는 대목에서,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는 건 행인만이 아닐 것이다. 파병은 과거로 끝날 일이 아니라 계속되는 현실이자 미래이기 때문에 그토록 반대했던 거 아닌가? 이라크에서 병력이 철군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거기에 갔었다는 사실, 그들이 거기서 한 일은 지금의 상황이고, 그리고 그 파병이 남겨놓은 후유증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한 번 트인 물고는 계속 터지는 거다. 아프간에 파병하는 것은 이라크 파병과 다른 차원에서 논할 일이 아닌 거다.

 

한미FTA도 그렇다. FTA 자체에 대한 판단을 하기도 전에, 그것이 '한미' 간 FTA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투쟁을 했던 결과, 그 투쟁동력들이 한-EU FTA에서는 제대로 제 모습조차 내보이질 못했다. 비준만 남은 상태로 볼 일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해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거다. 물론 이 근본적인 고민이라는 것은 이명박 정권은 엄두도 내지 않을 것이며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고로 하승창이 이야기하는 "지나간 것"은 이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본연의 문제로 재부각되어야 할 일들이다. 그런데 이런 거 제껴놓고 시작하자는 건 뭐하자는 걸까?

 

결과적으로, "희망과 대안"이 이야기하는 참여라는 것은 아무리 하승창 본인이 반MB연합(혹은 반신자유주의진보연합)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넓은 판을 만들고, 진보정당이든 민주당이든 그 안에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대중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떤 수사를 걸치더라도 선거공학일 뿐이다. 단순히 표의 숫자로 확인되는 것만을 정치행위로 인식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은 다른 목소리로 예전에 들었던 구호를 제창한다. 시민사회가 만든 "판"으로 "닥치고 대동단결"

 

무엇보다도 지난 번 확인했던 박원순의 글과 이번 하승창의 인터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정당정치라는 것 자체를 전혀 존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뭐 그까이꺼 존중하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다. 그러나 아주 어색한 것은, 정당정치를 이렇게 호구로 생각하는 이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정당정치형 정치판이라는 사실이다. 정책을 놓고 선거를 통해 평가받는 것. 그런데 그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는 결국 정당이 받게 된다. 무소속? 무소속은 걍 1인 정당일 뿐이다. 이런 구도를 이용하고자 하면서 정당정치를 물로 보는 이 사고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라리 각 정당의 정책에 대한 호불호부터 먼저 밝혀주는 것이 좋겠다. 예컨대 각 당 교육정책을 비교한 후 "희망과 대안"은 00당 교육정책에 100점, XX당 교육정책에 0점을 주겠다라고 하던가. 한나라당 정책이 좋으면 그거 100점 줘도 무방한 거고. 정당 정책에 대한 구체적 호불호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막연히 이명박 정부 까고 한나라당 까고 민주당 까고, 덤으로 군소야당들 특히 진보정당들에게 구체적 대안이 있니 없니 하는 경마장 관전평으로 일관하는 것은 심히 보기 안 좋다.

 

기분나쁜 데쟈뷰를 보는 것은, 이 "희망과 대안"이 취하는 포지션에서 마치 민주노총(특히 임성규위원장)이 민노당, 진보신당 양당에 대해 재통합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거. 민주노총의 양당통합요구의 근저에는 "좋게 말 할 때 내 말 들어라"라는 같잖은 압력이 놓여있다. "희망과 대안"의 모습에서도 역시 "우리가 깐 판에서 놀아라"라는 모종의 압력이 엿보인다. 재미있다. 정치는 하고 싶은데, 똥물에 발담그긴 싫고, 뭐 그런 건가?

 

물론 당연히 앞으로도 "희망과 대안"의 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볼 거다. 재보궐 끝난 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고민하겠다고 하는데, 거기서 어떤 말들이 나오게 될지 기대가 된다. 대안으로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드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데, 우째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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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22:15 2009/10/2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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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병과 FTA에 대한 저들의 판단, 진정 그런가? 희망없는 대안, 대안없는 희망,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깃발만 들었으니 남은 것은 휘날리는 먼지와 구린내...

  2. 아 @_@ 정말 잘 쓰신다능... 배우고 갑니다요 @_@;

  3. 같잖은 압력? ㅍㅎㅎㅎㅎ 100% 공감!!

  4. 글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한-EUFTA투쟁이 한미간 FTA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투쟁을 했던 결과로 인해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반FTA 투쟁은, 농민들의 당사자운동을 포함하여 한국진보연대를 중심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계열의 활동가들이 주도하여 나갔습니다.
    실제 운동에 있어서 운동권 대학생들과 청년들의 노고가 많았음은 두말할 것도 없구요..

    다만.. 이미 당시의 투쟁에서도 FTA라는 문제 자체가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였으며, 운동권 투쟁의 방식으로 막기에도 어려움이 매우 많았습니다. 더하여 당시의 투쟁 방식도.. 운동권의 고루한 방식이었죠.. 여하튼 다양한 요소에 의해 실패한 투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투쟁을 주도하던 대부분의 활동가들과 학생들이 이미 반FTA 투쟁이 대중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음을 뼈져리게 느낀상태에서, 다시 한EU-FTA 저지를 위해 동력을 조직하고 운동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생각은 해보셨나 궁금하네요.

    행인님이 블로그에서 씹는거야 몇분의 시간으로 충분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직하고 운동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지.. FTA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농민들이 입을 심각한 타격과, 부품소재분야 중심의 중소기업들과 그 노동자들이 입을 피해를 생각해서 외면하지 못하기에 나설뿐이지...

    이미 현장은 뭔가를 '할 수 있다'라는 희망적 분위기가 아닐 뿐더러..

    시류의 관심도 말하시는 '파시즘' '공안독재' '헌재' '사법정치' '재보궐' '민주주의?'와 '경제' '주식' '부동산' '금값' 등의 현실분야와 거시분야에 있음이야 더 말할 것도 없구요..

    행인님 글을 읽다보면.. 지니신 식견이나 지식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솔직한 제 감상을 말하자면..
    '그래서 뭘 하자는 건데?' 라고 되묻고 싶어지네요..

    재미있기는 합니다만...
    저한테는 사회인사나 정치권, 시국을 씹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취미는 없거든요.. ^^

    • "한-EU FTA 투쟁이 한미간 FTA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투쟁했던 결과로 인해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라는 거 부연하자면요, 이런 거죠.

      까놓고 말해서 그동안 FTA 반대투쟁이 어떤 거였나요? 예를 들어 한-칠레, 한-중 FTA 과정에서 투쟁의 중심 주제는 농업이었죠. FTA가 전 산업분야에서 폭발한 것은 한미 FTA가 가장 컸습니다. 그 과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활동가들"이 나섰고, 뭐 거기에 운동권 대학생들과 청년들의 노고도 많았어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한미 FTA와 관련한 1차 보고서에 관련분석보고서를 함께 실은 바 있고, 당차원은 물론 활동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투쟁과정에 동참했으니까요.

      그런데 투쟁의 과정을 바라보는 관점이 약간 다르군요. 당시 반FTA투쟁이 운동권의 고루한 방식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대중성을 상실했다는 것... 그건 "다양한 요소에 의해 실패한 투쟁"으로 평가하는데 하나의 부분일 뿐이구요.

      저는 그것보다도 과연 운동권 차원에서 FTA라는 거 자체에 대한 합의가 있었느냐 하는 걸 문제삼고 있는 겁니다. 당시 에피소드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일부 연구집단과 활동가 단위에서 FTA 자체에 대한 문제를 분석하고 총론적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실제 그런 방향을 가지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특정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한미 FTA 반대투쟁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에 묶여 있었던 많은 인력들과 각 단체에 관련되어있었던 활동가들이 미처 FTA 자체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기 전에 무조건 한미 FTA 투쟁에 달려들 수밖에 없게 되었구요.

      님이 느끼시고 계시는 동력조직의 어려움이나 운동창출의 어려움이 어느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생각은 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블로그에서 간단히 몇 분만에 씹는 내용들이 그렇게 허술한 관념이나 감상평 정도의 수준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죠. 제가 아는 분야에서만큼은 그저 씹는 데 몇 분이나마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생각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선 아예 말을 하지 않죠.

      현장의 분위기가 대단히 침체되어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현장의 분위기는 분위기대로 둔 채, 명사들끼리 모여서 기존 정치판에 대해 훌륭한 말을 해대는 사람들에겐 저도 그분들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취미"는 없습니다. 님께서 "그래서 뭘 하자는 건데?"라고 물으시기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에 대해선 제 블로그에서 누차 제 입장을 밝힌 바 있죠. "희망과 대안"을 고민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직접 "희망과 대안"의 똥물에 뛰어들어보시라는 겁니다. 경마장 관전평 같은 이야기들은 나중에 회상록에나 쓰시고 말이죠.

      예컨대 박원순선생 같은 경우, 저는 개인적으로 참여연대풍 혹은 희망제작소풍의 운동방식에 대해 예전부터 많이 경계해왔던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 운동방식이 바닥에서 박박 기고 있는 이름없는 활동가들의 활동을 매우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던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고, 운동의 방식을 기계적인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박원순의 입장과 박세일의 입장이 뭐가 다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진보에 대해 구체적 정책을 요하는 그 사람들이 과연 지금까지 진보진영에서 내놓은 정책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과 고민을 했는지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희망과 대안"에 대해 희망이 느껴지지 않고 대안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겁니다.

  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저 나름대로 비판하고 뭉개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돌보고 키우는 일 해왔고 지금도 그걸 해보고자 준비하는 중입니다. 바닥에서 발로 뛰는 분들에 대해선 항상 감사하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그분들과 함께 하고자 하구요. 다만 "희망과 대안"처럼 만들기는 쉽고, 비판은 자신들이 독점하는 거 그런 건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