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들고 간 꽃다발

1970년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치에 의해 희생당했던 유대인들을 기리며 사과를 한다.

빌리 브란트는 독일이 히틀러 나치의 광기에 휩쓸려 유럽에 죽음을 안겨다 주는 동안, 오히려 노르웨이로 스웨덴으로 망명을 하면서 반나치활동을 벌였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의 수상으로서 독일이 저지른 과거에 대해 참회하고 그 용서를 빌었던 것이다.

 

사과를 한다는 것. 그것도 과거의 행위에 대해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사과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뭐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해도 대충 꽤 어려운 것이라는 감은 온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통석의 염이고 뭐고 지난 세월 동안 온갖 형용사를 다 동원했지만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신들도 원폭의 희생자라는 비감한 통한이 그들 가슴 속에 살아남아 있는듯 하다.

 

어찌 일본 뿐이랴. 독재정권의 피해자가 두 눈 벌겋게 뜨고 아직 살아 있는데, 과거를 묻지 말아달라고 애걸 복걸해도 모자랄 판에 끝까지 잘 했다고 큰 소리 뻥뻥치는 집단들이 우리 주변에도 살아있는 것을. 어느 순간 애국의 화신이 되어 나타난 이들은 허연 머리칼 휘날리며 원로노릇까지 하고 있다. 이들은 사과를 할 줄 모른다. 오히려 사과 받고자 한다. 원로를 대접하지 않는, 장유유서가 물구나무를 서버린 오늘날을 한탄하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전은 씻을 수 없는 악몽이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미국의 용병이 되어 참전했던 그곳에서 자국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전사들과 죄없는 양민들을 학살한 죄과를 지니고 있다. 일본이 한반도의 남북전쟁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듯이, 남한은 베트남 전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준비했다. 베트남 전역에서 쓰러져간 이름모를 사람들의 피는 그렇게 국익이 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베트남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베트남 해방전쟁이 미국의 패배로 막을 내린 후 30년이 지났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30년 후의 남한에서는 나라의 이름만 달리한 베트남전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 또다시 미국의 용병이 되어 남의 나라 사람들의 피를 먹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열사의 땅 한 구석에서 영문도 모른채 폭탄을 맞고 숨져가는 사람들의 피는 다시 우리의 국익으로 현현한다. 베트남인들의 피가 한각의 기적에 거름이 되었다면, 이라크 사람들의 피는 국민소득 2만불의 거름이 될 것인가...

 

베트남 혁명의 아버지 호치민이 잠든 하노이의 묘소는 가히 성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매일 그곳을 찾아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 생전의 호치민은 화장을 원했지만 죽은 자의 소원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자들의 요구는 망자의 유지를 거부한 채 그를 영원히 사람들의 시선 안에 두고자 노력했다. 묘소 안에 밀납인형처럼 처리되어 유리상자 안에 누워 있는 호치민. 그리고 호치민의 유해 주변으로 진시황릉의 토용처럼 도열해 있는 병사들. 묘소를 둘러보는 베트남 사람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존경심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밀려드는 허탈감. "영웅"은 죽어서조차 자신의 의지를 초월하는 소명을 간직하는 것인가?

 

아무튼 호치민의 묘소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외국의 국빈이 베트남을 방문할 때 반드시 거쳐가는 코스가 바로 이 호치민 묘소다. 영원할 것 같았던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끝장낸 나라 베트남. 미국과 맞장을 떠서 승리한 유일한 나라 베트남. 그리고 그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 거쳐가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듯이 보인다.

 

이곳에 노무현이 갔다. 그리고 헌화했다. 그는 꽃을 바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서글프다. 30여년 전 미국의 용병이 되어 그곳의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던 한국의 대통령. 30여년이 흐른 오늘 국익을 위해 이라크 사람들에게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기 위해 파병을 결행한 한국의 대통령. 그가 해방을 위해 프랑스와 싸웠고, 미국과 싸웠던 베트남 사람들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헌화를 했을까?

 

더 늦기 전에 베트남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사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과의 진실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더 이상 국익이라는 미명으로 남의 나라 사람들의 피눈물을 앗아가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호치민의 묘소에 헌화를 한 뜻이 살아날 것이다. 30여년 전의 죄과에 대해 침묵하면서, 30여년 후 또다시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면서 피해국의 지도자 무덤에 얹어 놓는 꽃다발은 모욕일 뿐이다. 우리에겐 수치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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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0 17:38 2004/10/1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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