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넘은 멋있었다.
* 이 글은 현근님의 [강아지를 보면....]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촌놈 어릴적은 그저 멍멍이랑 뒹굴면서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다니는 일이 주업이었다. 하여튼 행인은 짐승을 무진장 좋아했다. 어린이들도 좋아하지만 암튼 강아지니 고양이니 송아지니 하는 것들이 죄다 좋았다.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진지 누군지 기억은 확실하게 나지 않는데, 쬐깐한 흰색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 강아지가 진돗개란다. 무슨 진돗개가 귀도 축 늘어지고 꼬랑지도 짧달막하고 목소리도 낑낑 거리는 것이 무슨 진돗개냐고 칭얼거렸는데, 족보있는 개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영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이름도 흰둥이라고 불렀다.
요렇게 생겼던 넘이...
그러나 과연 진돗개는 진돗개였다. 쑥쑥 커나가면서 귀가 쫑긋 서고, 꼬리가 굵직하니 털이 복스러워지면서 말려올라갔다. 영민하기가 이를데가 없었다. 아무튼 강아지때부터 훈련시킨다고 봉당에서 집어던지기도 하고 걷어 차기도 했는데, 두 살쯤 되니까 이게 정말 멋진 진돗개가 되어버렸다. 몸집이 작았던 행인은 흰둥이를 타고 다니겠다고 아둥바둥 했지만 이넘이 행인을 태워주지는 않았다.
암튼 이넘이 성장한 이후 이름은 흰둥이에서 백구로 바뀌었다. 그게 그거지만서도... 우리는 이넘을 빽구라고 불렀다.
이렇게 변했다... 멋쟁이 빽구~~! 그 때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걸...
빽구는 개줄을 하지 않았다. 지 멋대로 돌아다니게 두었지만 주인 알아보기를 하늘같이 알아보고 동네사람들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았다. 어떻게 동네사람들을 다 기억하는지는 몰라도 한동안 외지에 나가 있다 온 사람들에게도 아는척을 할 정도다. 하지만 진짜 낯선 사람들이 동네에 들어오면 상당히 무서워졌다. 그럴 때는 옆에서 붙잡고 있어야 한다. 행인이 옆에서 손을 대고 있는 한 빽구는 절대로 남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이넘이 쬐끔 큰 이후로는 집에서 아침과 저녁 이외에는 먹지 않았다. 점심과 새참은 모두 나가서 해결하는 것이다. 동네에는 온갖 종류의 잡견들이 다 있었다. 개중에는 덩치가 송아지만한 도사 잡종도 있었다. 그러나 이넘들은 빽구가 오면 알아서 기었다. 지들 먹던 밥그릇도 빽구가 오면 슬며시 밀어놓고 빽구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빽구는 나름대로 온 동네를 쏘다니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겁없는 쉐끼들은 빽구가 지 밥그릇에 주둥이를 들이밀면 일단 개기고 봤다. 그러나 그 개김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한따가리 하고 나면 어김없이 그 다음부터 빽구에게 밥그릇을 들이 밀었다. 같이 동네를 다니다 보면 참으로 웃기는게 빽구가 지나가는 동안에는 개들이 찍소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히 다가와서 친한 척 하는 넘들은 있었지만서도.
그러던 어느날 동네에 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냥을 좋아하시던 당숙이 바로 길 건너 맞은편에서 살고 계셨는데, 사냥의 효율극대화를 위한 기초준비작업 차원에서 사냥개를 들여놓으신 것이다. 포인터 두 마리를...
이렇게 생긴 넘 두 마리가 동네에 들어왔다.
아주 비싼 개란다. 성질도 사나와서 한 번 물면 주인이 올 때까지 놓치 않는다고 한다. 겁을 엄청나게 주는 바람에 이 개 근처에도 가기 어려웠다. 진짜 성질 사나왔다. 삐꺽 소리 나는 대문을 밀치고 들어갈라치면 천지가 무너지는 것처럼 짖고 난리가 났다. 묶여있지 않았다면 그냥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기세였다. 덩치도 웬만큼 큰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린 행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그런 무시무시한 짐승이었던 것이다.
이넘들은 밥을 처먹어도 고기만 먹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깡촌에서 먹다남은 밥만으로도 호강인 똥개들이 천지 태배기인데, 이 포인터들은 사람도 제대로 먹기 힘든 고기를 허구한 날 먹고 앉아 있었다. 동네사람들 심사가 불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 행인이 보기에도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행인은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고기를 못먹었다. 이상하게 고기냄새가 역겨워서였는데, 사실 먹을 고기도 없었다. 그런 판국에 개쉑덜이 고기잔치라니...
그렇게 포인터 두 마리가 당숙의 집에서 자리를 잡게 된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평소같으면 벌써 들어왔어야할 빽구가 집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다. 우리 집은 나무로 짠 대문이 있었는데, 이 빽구란 넘이 힘이 굉장히 좋아서 그 뻑뻑한 문을 어깨로 툭 치면 대문이 활짝 열리고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십중팔구 빽구가 저녁 먹으러 귀가한 것으로 알면 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넘이 오질 않는 것이다.
평소 아침과 저녁은 칼같이 집에서 해결하는 이넘의 성격상 들어오지 않을리가 없는데, 행인은 대문 밖엘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빽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 있다가 잠시 안에 들어와 있는데, 갑자기 문 밖에서 대문짝을 긁는 소리와 함께 낑낑 대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같으면 기냥 문을 밀치고 들어왔을 빽구가 계속 밖에서 문을 못열고 낑낑 거리는 것이다. 놀래서 문을 열었더니 그 하얗던 빽구가 피범벅이 되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귀는 찢겨져서 너덜거리고, 앞다리와 목덜미, 허벅지 등의 털이 다 뜯겨 나가고 살점이 뭉텅이로 없어져 있었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는데 비틀거리는 폼새가 곧장 죽을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놀란 행인, 우리 빽구 죽는다고 난리 법석을 떨고, 어른들이 뛰어나와 개 피를 닦고 된장을 바르고(?) 난리가 났다. 광목천 뜯어다가 상처를 싸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갑자기 대문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당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개쉑기 어디 있어? 이놈의 개쉑기 오늘 내 죽여버릴껴!!"
부엌에서 빽구의 몸에 된장을 바르고 있던 식구들이 이번에는 또 뭔일인가 하고 죄다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거기에는 엽총을 들고 분기탱천한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는 당숙이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아니, 이사람이 지금 무슨 일이여?"하고 묻자, 이 당숙 왈,
"아, 그 진돗갠지 뭔지 그놈쉑기가 지금 우리 사냥개 두마리를 아주 골로 보내버렸단 말에요. 내 이놈을 그냥~!"
행인, 아 이렇게 빽구가 가는구나, 생각을 하자마자 울음이 터져나왔다. 식구들이 당숙을 뜯어 말리면서 당숙의 집으로 몰려갔는데, 행인도 거기 껴서 가게 되었고, 암튼 갔는데 가보니 이건 빽구가 당한 것은 기냥 약과였다.
포인터 두 마리가 널부러져 있는데, 숨만 할딱거릴 뿐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있는 거였다. 포인터 두 마리와 빽구가 쌈을 벌린 거였고, 마침 그 때 집에 당숙은 없었고 아주머니랑 애들만 있었는데 무서워서 내다보지도 못했다는 거다. 서둘러 경운기 시동을 걸고 포인터 두 마리를 얹고 읍내로 달렸다. 당숙과 어른 한 둘이 따라갔다.
가만 생각해보니 일이 이렇게 된 거였다. 빽구, 평소대로 동네 순찰 한 바퀴 돌면서 뭐 맛있는 거 좀 있음 줏어먹고 이렇게 실실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당숙 집 앞에 이르렀는데, 아니 생판 보도 못한 넘들 둘이 서서 실실 쪼개는 거지 머. 게다가 이넘들 밥그릇에는 고기 뼉다구까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해설라므네 평소 동네를 완전장악하고 있던 울 빽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포인터 두 마리의 밥그릇에 주둥이를 들이 밀었을 거다.
그래도 명색 포인턴데,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 이넘들 가만 보니 되도 않은게 불현듯 나타나서 지들 밥그릇에 주둥이를 들이밀더란 말이지. 포인터의 가오가 있지 이런 도발행위를 그냥 놔 둘 수가 있었겠는가? 첨에 좋은 말로 타일렀을 것이다. "야, 뭐냐, 너?" "요런 싹퉁머리 없는 넘이..." "좋게 말할 때, 아니 좋게 짖을 때 그냥 가라, 응?"
뭐 이랬을 것이다.
그러나 동네 터줏대감이자 실질적 왕초노릇을 하고 있던 울 빽구, 신고도 없이 나와바리에 들어와 영업하는 것도 아니꼬운데 누가 대장인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깝죽거리는 이 겁없는 포인터 두 마리를 보자 영 배알이 꼴린 것이다. "이것덜이 내가 누군지 알고..." 뭐 이렇게 했겠지. 일단 덩치와 쪽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포인터들. 고마 성질 못죽이고 뎀볐을 것이고, 천하무적 일기당천의 울 빽구 이 두마리를 향해 분노의 이빨을 들이밀었을 거다.
그리고는 일대 격전. 안 봤으니 그 상황이 어떨지는 몰라도 아마 황룡 청룡이 여의주를 다투고 범과 사자가 타이틀 매치를 하는 정도는 되지 않았을라나? 그리고 그 결과 빽구는 부상, 포인터 두 마리는 전멸.
병원에 입원했던 포인터 두 마리가 다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두 달이나 흘러서였다. 들리는 말로는 포인터 두 마리 사오는 돈보다 치료비가 더 많이 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되고 당숙 화 풀게하느라고 술상 좋이 차려졌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빽구를 앞세우고 동네 순찰 한바퀴 돈 다음에 집으로 들어가는데, 이 짜식이 갑자기 당숙집 대문으로 쑥 들어간다. 다급한 행인, 포인터도 무섭고 당숙도 무서워서 빽구의 목덜미를 잡아 댕겼지만 애들 힘쯤이야 간단히 제압하는 빽구의 파워에 밀려 그냥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병원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포인터 두 마리가 매서운 눈빛으로 빽구를 노려보며 으르렁 거렸다.
빽구의 얼굴이 갑자기 사나워지며 어금니를 드러내곤 같이 으르렁 거렸다. 아 이런 쉬바... 겁먹은 행인 토낄려 하는 찰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포인터 두 마리가 꼬리를 샅에 감추더니 슬금 슬금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한참 물러설 때가지 으르렁 거리던 빽구, 거리가 왠만큼 벌어지자 설렁 설렁 다가가서는 포인터들의 밥그릇에 주둥이를 들이 밀었다. 아, 거기에는 퇴원 후 포인터들의 정양을 위해 당숙이 특별히 준비했을 고기 뼉다구들이 그득했다.
포인터들이 슬금슬금 쳐다보는 눈빛을 무시하고 빽구는 고기 살점을 다 뜯어먹고 국물까지 훌쩍 훌쩍 빨아마시더니 기어이 뼉다구 하나를 물고 나서야 돌아섰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 물론 행인은 그냥 빽구의 뒤만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명실상부 동네의 오야붕이 되어버린 우리의 빽구. 그날 이후에도 동네 돌아다니면서 온갖 맛있는 밥을 시식하고 다녔다. 몇 년 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빽구는 동네의 왕이었다. 아무튼 그넘은 참 멋있는 넘이었다. ㅋㅋㅋ
우와.. 개의 세계란 것이 또 있나보구만요.
개줄 한번 풀리면 꼭 동네 개 한 마리씩 저 세상 보내고야 마는
함양의 뭉이가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