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2009년 8월과 2018년 8월의 소묘
행인님의 [페놀과 디클로로메탄의 거리] 에 관련된 글.
트랙백을 건 저 글을 쓸 당시, 무기력을 강요하는 절망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국가는 노동자를 테러범으로 취급했다. '진압'당하는 노동자들은 법을 요구하였지만 법에 의해 배제되었다. 그들은 법 밖에서 법에 의해 소멸당하는 모순을 눈 뜨고 겪어야 했다. 그것도 온 몸에 강력한 유기용제인 디클로로메탄을 뒤집어 쓰면서. 디클로로메탄은 쌍용 노동자들의 육신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녹여버렸다. 그 잔인한 '진압'의 장면은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원망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현장의 비명이 연대한 활동가들의 통신을 통해 전달될 때, 나는 기껏 이명박과 조현오와 경특을 향해 욕을 하는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없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2009년 8월 4-5일 진행된 쌍용차 강제진압사건에 대하여, 이 사건의 최종승인자가 이명박 청와대였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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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유발되는 흔한 질문은 역시 '국가란 무엇인가'일 것이다. 쌍용자동차가 무너지고, 노동자들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 건 물론 이명박 정권이 시작한 게 아니다. 이미 노무현 정권때부터 쌍용의 노동자들은 국민이기보다는 생산라인에 투입된 인력'자원'에 불과했고, 소모품일 뿐인 그들은 당연하게도 국익을 위하여 언제든 폐기처분될 위치에 놓여 있었다. 노무현 정권 이래 그들은 폐기처분의 길을 걸었고, 이명박 정권은 그들을 종말처리했다. 공장에서 잘리고, 테러범으로 몰렸던 그 과정 전반에서 국가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환영(幻影)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쌍용차 노조원들을 강제진압한 것이 청와대의 승인에 따른 것임을 확인하는 것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는 청와대의 승인이나 묵인이 없었는가? 아니 오히려 청와대로 상징되는 이 국가는 그 사태를 유발하고 유인한 주범이 아니었던가? 강제진압의 승인을 청와대가 인지하고 그에 대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승인을 했다는 건 인과관계상 당연한 수순일 뿐이다. 분노의 근거를 공식문서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외에, 이미 이 모든 분노의 원인은 노동자가 테러범으로 전락하고 진압당해야만 하는 국가의 적이 되도록 체계가 마련되던 초창기부터 누적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달리 말하면, 이번에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때문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자적 반인권적 작태에 대한 평가와 단죄는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가 노동의 피와 땀을 인정하기는커녕 정권보위를 위한 소모품정도로 생각했던 그 이전의 정권과 그 이후의 정권 모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껏 이명박 죽일놈이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만 몇 번 외치다가 또다시 쌍용자동차의 문제는 지지부진하게 된다. 그 사이 또 얼마나 죽어나가야 하겠는가? 이미 30명이 떠나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