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즐기자, 스포츠!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보는 것도 좋아하고 뛰는 것도 좋아한다. 복싱도 좋아한다. 역시 마찬가지다. 배구, 탁구, 당구 등 구기종목들이 그렇고, 태권도, 유도 같은 격투기 종목들이 그렇다. 물론 이제는 직접 필드에서 뛰다간 사지 멀쩡한 곳이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가 아니라 백프로 그렇게 되겠지...ㅜㅜ
내가 생각해도 체질상 잘 하지 못하는 운동들이 있다. 농구가 그렇고 야구가 그렇고, 요즘 흔한 '이종격투기' 같은 게 그렇다. 농구는 유전된 신체 사이즈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주는 것이 싫고, 야구는... 걍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 이종격투기는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이념상 받아들일 수 없는 스포츠들이 있는데, 골프와 스키가 그것. 이건 내 이념에 따라 거부하고 있는 운동들이다. 지금까지 할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던 운동들이다.
언젠가, 꽤나 오래 전에, 한 20년 전쯤인 듯 한데, 인권운동을 하는(현재도 현역이므로) 한 활동가가 자신은 프로야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자본에 포섭된 이런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것을 남들 앞에서 드러낸다는 게 꺼려진다고 고백을 한 일이 있다. 난 그 말을 듣고 예의없게도 그 앞에서 웃고 말았다. 난 위성방송 접시안테나 달 때 없는 돈 처발라서 설치했는데, 그건 순전히 각국 프로축구 경기를 보고 싶을 때마다 보기 위해서였다...
한때,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한다면 과연 프로축구는 사라질 것인가,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축구경기는 지금보다 훨씬 재밌을 것인가? 이따위 고민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동네축구에서는 뛰는 맛이 있고, 보는 축구에서는 레알마드리드로 뭉친 지구방위대와 FC바르셀로나로 뭉친 은하수비대를 보는 맛도 있는 거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이념적으로 승인하고 안 하고를 떠나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경이로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3분 3라운드 스파링을 해본 사람들은 3분 15라운드 경기를 뛰는 복서들이 신으로 보인다. 축구경기장에서 웬만큼 물 좀 마신 사람들이라면 호날두나 메시가 지구인으로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거고. 웬만큼 '빠따질' 해본 사람들은 야구선수들의 허벅지를 보며 감동해버리게 되고, '쇠질' 좀 했다는 헬스장 출입자들은 그래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면 그가 출연한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보다 그의 '갑빠'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타 등등 마찬가지.
스포츠가 천박한 국가주의, 민족주의, 쇼비니즘에 동원되는 현상이 있다. 비판받을만 하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 현상을 비판하다가 아예 스포츠 자체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논지들을 간혹 본다.
뭐 그렇게 따지면 어떤 문화적 자원들이 국가주의, 민족주의, 쇼비니즘에 동원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겠나? 그렇다고 해서 그거 다 불필요하고 이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히틀러가 바그너를 이용했다고 해서 파쇼에 의한 클래식 음악의 동원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클래식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조영남의 화투그림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어차피 그림이라는 게 힘을 가지는 것 역시 투전판에서 배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돈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미술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온라인 게임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게임무용론 내지 망국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X같아하는 말이 뭔지 아냐?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거야. 정말 X같은 말장난이지.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X같은 새끼들이 나쁜거지."
넘버3, 3류 검사 최민식의 이 말은 명언이다. 이건 스포츠에도 어울린다. 스포츠가 뭔 죈가? 그걸 갖다 써먹는 민족주의자, 국가주의자, 쇼비니스트들이 문제지. 요즘은 시간도 없고 티비도 없고 돈도 없어 그닥 잘 못즐긴다만, 앞으로는 시간도 내고 돈도 벌어서 스포츠 열심히 즐기며 살란다. 아, 티비는 돈 있고 시간 있어도 사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