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체제는 기본소득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사회국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가장 큰 부분은 국가구성원 전체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일 테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전제하는 국가가 사회국가적 복지체제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바로 자본가들이다. 이건 너무 간단한 공식인가? 간단하지만 이 안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불변의 원리가 내장되어 있는데,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자본가가 살 수 없고, 자본가가 살 수 없는 사회는 자본주의가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가 아닌 국가구성원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자본주의체제의 온존을 위한 복무지침을 명받는 바, 하나는 생산에서 초과노동을 통한 초과이윤의 생산, 다른 하나는 지속적인 소비로서 시장순환과 이윤의 생산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이클 또한 자연자원의 무한착취라는 가능성이 유지됨에 따라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노동력 재생산 기제와 일정한 소비능력이 갖추어져 있을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돌아가며 자본가의 손에 남는 것이 있게 된다. 복지국가는 그 윤리적 고고함과는 별개로 이렇게 자본주의시스템이 돌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구성요소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가는 자본주의체제가 이제 그 생명연장을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순환체계를 고민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자원의 고갈, 기술의 발달, 노동인구의 세계적 이동과 숙련도의 세계화 등은 어느 한 쪽에서 이윤을 챙겨 다른 한 쪽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던 기존의 구조로는 더 이상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소비여력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지속하기 위하여 제시되는 대안이 기본소득이다. 아...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것도 지겹구나... 나도 이 얘기 더 하고 싶지 않지만, 도대체 기본소득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지들 생각을 경전처럼 떠들기만 할 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이번 경향신문 특집 '세계 지성과의 대화(카를로타 페레스-불황, 불평등, 외국인 혐오, 1930년대와 판박이) '에서 역시 기본소득이 과연 어떤 유의미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카를로타 페레스의 말을 보자.
"현재의 평생직장에 맞는 대량생산 조건과 단기실업에 맞게 구성된 옛 실업보험 시스템이 예가 될 겁니다. 이는 임시직 선호경제(긱 이코노미 gig-economy)라고 불리는 체제에는 맞지 않아요. ... 별도의 정책으로 이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현재 논의되는 정책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입니다. 매달 소득을 지급하고 충분한 식량과 교통, 보금자리를 확보해주는 거죠. 개인의 통장으로 자동입금되고 현금인출기로 뽑아 쓰도록 합니다. 부정기적이거나 소득이 없을 때 보호작용을 하는 완충소득으로 제공하는 거예요. 물론 기존의 복지체계를 흔들지 않는 상황에서요."
카를로타 페레스의 말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야기되어온 기본소득과도 조금 결이 달라 보인다. "부정기적이거나 소득이 없을 때 보호작용을 하는 완충소득으로 제공"은 한국 기본소득론자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원리와는 배치된다. 한국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을 말 그대로 기본 베이스로 하자는 것이고 그 효과 중 하나가 '완충소득'일 뿐이다. 그런데 카를로타 페레스는 아예 '완충소득'이 기본소득의 목표인 듯 이야기한다. 나는 오히려 이런 입장이 더 솔직하다고 보는데, '완충소득'이라는 어려운 용어는 둘째치고, 기본소득의 기본적인 효용은 애초부터 임금노동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소비여력을 보장하자는데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레스는 "기존의 복지체계를 흔들지 않는 상황"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복지체제에 더하여 기본소득을 하자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 부분이 바로 그동안 기본소득론자들의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현물복지를 대체할 수단으로 현찰복지를 이야기하던 과거의 기본소득론자들과는 달리 오늘날 기본소득론자들은 현물복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물복지를 확장할 생각은 않고 왜 복지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시장에 맡기려고 하는지는 여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관점의 차이일 뿐 효과는 마찬가지라고 하면 그걸로 됐고. 그런데 페레스는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족 구성원이 받는 기본소득 액수보다 더 벌면 받았던 기본소득을 세금으로 돌려내는 겁니다. 자동으로 소득이 확인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은 기본소득의 액수가 얼마냐를 전제하면 안 된다. 그건 그냥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일정소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세율을 부과하겠다고 정하면 되는 거다. 이걸 기본소득에 연동하는 건 기본소득의 기본 취지와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한 재정확보를 위하여 세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일단의 계산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페레스가 이야기하는 형태로 세액과 기본소득을 연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고, 게다가 페레스는 "자동으로 소득이 확인되는 시스템"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과연 낱낱이 투명한 개개인의 소득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려니와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i) 개개인의 사적영역 일체를 건드리게 되는 것이 아닌지 (ii) 시스템을 구성하게 되면 그에 소요되는 각종 비용은 또 뭔지 모르겠다.
게다가 페레스 역시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재는 (실업보험제도 운영을 위하여) 직원들 임금과 지역 사무소 유지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시스템만 구축되면 관료행위를 거둬내는 방식에서도 비용 절감이 크죠."
그냥 간단하게 기본소득 제공하면 다른 사회복지체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행정비용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과 같은 이야기다. 난 기본소득론자들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있는데, 그럼 그동안 각종 사회복지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들과 그 운영유지를 위해서 소요되는 비용이 사회적인 재화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을 다 없애자는 이야긴가? 그 고용인들은 다 실업자가 되고 그 운영유지와 관련해서 돌던 돈은 그냥 다 사라지면, 그러면 그게 다 기본소득의 효과로 대치될 수 있다는 건가? 오히려 복지체계를 더 촘촘히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대면접촉을 통한 실질적 복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과 마찬가지로 페레스 역시 기본소득이 가져올 파라다이스에 대해서 많은 청사진을 제공한다. 그걸 일일이 다 소개하기도 귀찮고, 아니 뭐 기승전기본소득도 이젠 좀 식상하니 제끼자. 어쨌든 기본소득 관련부분만 보면 이 수준인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생산양식의 전환 즉 생산수단의 소유주체에 관한 논의 없는 기본소득 논의는 그냥 자본주의 만세, 영구불변 자본주의 이어나가자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 소득은 그냥 현찰복지의 확대일 뿐이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든 시민들이 최소한의 인격을 지키며 살도록"하는 방편으로는 가장 저급한 방식이며, 장담컨대 그 효과도 없을 거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현찰이라는 건 단지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만 역할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들은 종종 까먹는 듯하다.
카를로타 페레스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이지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뭐 뾰족한 시대담론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그가 이야기하는 기본소득 역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존치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제시되는 것에 무리가 없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기본소득을 환상적으로 이야기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 그게 솔직한 거다. 이걸 자꾸 무슨 사회변혁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한 그나마 괜찮다. 난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페레스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 그런 '좌파적 기본소득론자'는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