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직 사무관의 '폭로'에 관한 다른 생각
어제는 건조하게 사실관계와 법률관계를 검토해봤는데, 그 포스팅 하자마자 당사자의 자살소동이 있었다. 살아 있을 때 발견했다니 다행이다. 여담이지만, 난 죽을 때 죽더라도 정리는 좀 깔끔하게 하고 가길 바란다. '폭로'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들은 다 묻혔다. 나중에 세월 지나 진상규명 운운해봐야 떠날 놈은 다 떠나고 덮을 건 다 덮힌 상태에서 겉만 깔짝이다 끝난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죽은 자의 한도 안 풀리고 남은 자들의 궁금증도 안 풀린다.
암튼 뭐 그건 그렇고, 이 사건이 국회 운영위 생방송과 전직 사무관의 자살기도 이후 언론에서 그다지 내용적인 보도는 하지 않고 있다. 와중에, 이 사건이 함의하는 바는 그저 국채 발행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던가, 긴축재정이나 확대재정을 일도양단식으로 갈라놓고 뭐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국채발행이나 인사외압의 문제라는 소재가 워낙 선정적이다보니 거기에 눈길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흥미로운 건 그 소재를 둘러싼 진행양상에서 한국 공직사회의 어떤 병목을 보게된다는 점이다. 전직 사무관은 내부의 의견이 상향논의되지 않은 채 상명하복의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부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기재부의 공식입장 및 관료사회 내부의 시스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정책사안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도 정상이고, 논의 후 결정을 행정을 통할하는 최고집행단위에서 판단하는 것 역시 정상이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전직 사무관의 논리가 적절한지 여부는 차치하고, 우선 관료사회의 명령계통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면 결국 하급관료가 상급관료의 눈치를 보는, 그래서 흔히 '영혼이 없는' 상태로 머무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더불어 특히 기재부라는 부처의 특징일지도 모르겠으나, 하긴 뭐 전부터 이 기재부 관료들이 다른 관료들에 비해 훨씬 더 목에 깁스를 하고 다니는 경향이 있긴 했다만, 어쨌든 기재부라는 부처가 한 국가의 재정을 틀어쥐고 있다는 자부심이 과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돈이 지들 사비도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재정인데다가 국정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고 한다면, 장부상의 입출상황에 국한한 판단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하게 이해관계에 대한 분석과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이 있어야겠지만, 전직 사무관이 올려놓은 글을 보면 그런 과정보다는 내부적으로 기존 방침을 따를 거냐 말 거냐 또는 긴축을 하는 게 좋은데 정부가 확대하려는 것이 문제다는 정도 수준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긴 이러나 저러나 해도 국회가 쪽지돌려 예산 따느라 소소위를 관행적으로 열어버리는 거나 뭐 차이가 있을까 싶다만...
이번 건은 그런 의미에서 관료사회의 내부 논의구조가 실상은 그저 형식에 머물러 있음을 고발하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뭐 이런 생각이야 하나마나 언젠 그런 적이 없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