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용 스틱에 대한 잡상
산을 좋아한다. 게으른 성정에 자주 가진 못하지만 가게 되면 마다하지는 않는다. 산은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산에 있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스틱이다.
산에 갈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스틱에 관해서도 그런 원칙이 있다.
첫째, 스틱을 휴대해야만 오를 수 있는 산은 가지 않는다.
둘째, 스틱 없이 산에 오를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산에 안 간다.
남한 명산 다 돌아다녀봐야 지리산 천왕봉이 1917m고 한라산이 1947m다. 나머지는 다 그 아래다. 최고봉이 2천 미터도 되지 않는 산들인데 여기 스틱이 굳이 필요 없다. 험한 산도 많다지만 어차피 기어다니는 게 편한 코스에서는 스틱 필요 없고. 아직 체력이 되니까 그냥 다니는 거고, 체력 다 되면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볼란다.
그런데 동네 뒷산을 가면서도 스틱을 꼬박꼬박 챙겨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다만, 스틱을 가지고 다니더라도 예의를 좀 지켰으면 좋겠다.
얼음이 언 바닥을 가는 것도 아닌데 스틱의 쇠꼬챙이로 마냥 푹푹 찍으면 가는 사람들처럼 꼴불견이 없다. 그거 고무로 된 커버가 다 있는데, 왜 굳이 커버 벗기고 그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흙바닥이며 바위 위며 나무 둥치며 푹푹 찍으며 가나? 자기 발등에 가시라도 박히면 견디지 못할 사람들이...
좁은 길 사람이 앞뒤로 바글거리는데 스틱을 앞뒤로 흔들며 올라가는 사람들. 진짜 뒤통수를 한 번씩 치고 싶다.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는 일절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다. 특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틱간수 제대로 못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들 많다. 제 편한 건 알아도 남 불편한 건 모른다.
산에 가보면 이러저러한 형태로 산 망치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산에 가는 사람들이 산을 버리고, 물에 가는 사람들이 물을 버린다. 가장 좋은 산행은, 뭐 어떤 여행이든 마찬가지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데, 쇠꼬챙이 튀어나온 스틱은 해결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암석은 깨지고 나무등걸은 찍히고 흙은 파헤쳐진다.
나는 어차피 가지고 다니지 않을 터이니 그렇겠다만, 기왕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스틱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흔적을 덜 남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을지. 산을 좋아한다면 이정도 생각은 좀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