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의 정치, 얼마나 먹혀들어갈런지
전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우익적 불만에 기대 좌익적 사회불안의 공포를 팔면서 정치적 우위를 점하는 현상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로 성과를 거둔 곳도 꽤 된다. 미국을 필두로 남미와 유럽, 아시아에서 고루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푸틴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 역시 이러한 경향에 기댄 것이고, 여기에 굳이 중국까지 끼워넣지는 않아도 될 듯. 그러고보니 한국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이 대게 이런 상황이구나. 미, 중, 러, 일...
한국이라고 해서 이런 경향이 없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도 훨씬 전부터 꾸준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외부의 적, 즉 일본과 조선(북한)은 기실 이러한 우익적 공포마케팅이 성공을 거두거나, 굳이 성공이 아니더라도 본전치기는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주었다. 최근 그 수위가 상당히 낮아졌고, 또 다른 적대의 대상이 시대의 진행과 더불어 새로이 등장하니 보다 다양하게 공포마케팅의 소재가 늘어나기도 했다. 소수자라든가 이주민이라든가 페미니즘이라든가 등등.
이러한 근저의 배경으로 인해 한국은 언제라도 우익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나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게 좀 재밌는 것이 어느 정도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와 그 지속가능성 등은 연구의 동기까지 유발할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흥미롭다.
최근 유튜브에서 홍준표와 유시민이 다이다이를 뜨는 형국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그들이 뭐라고 떠들던 그건 그닥 중요한 사안이 아니고, 오히려 둘이 다이다이를 뜬다는 형국이 마치 한국의 좌우대립의 한 형식처럼 프레임이 만들어져간다는 것이 문제적이다. 보혁이라는 고전적 구분의 잣대를 들이밀더라도 이 둘이 그 잣대 안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홍준표가 보수인가하면, 홍준표는 보수의 가치를 전형적으로 위배한 자이다. 한편 유시민이 진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보면 일부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내 판단에 의할 때 그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 실제 보수적 가치를 더 잘 대변하는 자이다. 결국 이렇게 따지면 보수의 입장에서 홍준표는 상식 외의 자고 유시민은 상식 내의 자 정도로 분류가 가능하겠다. 결국 프레임은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보수주의 안에서 상식 대 비상식이 되지 않겠나 싶은 거다.
하지만, 공포마케팅을 통해 이익을 보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유시민의 행보를 빨갱이의 그것으로 몰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지난 70년 그게 잘 먹혀들어갔으니. 여담이지만, 희안한 게 뭐냐면, 빨갱이 때려잡자는 게 애초 왜정시대에 일본 정부로부터 기인한 것인데, 한국의 보수라는 자들이 어떻게 이건 친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지 의아스럽긴 하다. 암튼 그건 그렇고.
이 좌우대립 프레임을 들고 나온게 이언주인데, 이언주는 유시민을 사회주의자로 분류한다. 하긴 뭐 진보연 하는 자들 중에 젊어서 사회주의를 입에 한 번 올려보지 않은 자가 있겠냐만은, 유시민도 그랬을지 모르겠다만은, 이언주의 이러한 구도설정은 아주 오래된, 그래서 식상하다못해 신물이 넘어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철벽의 30%를 움직일 수 있는 그 낡은 틀을 다시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온다.
경향신문 : 이언주, 유시민 뜨니 저격? "노회한 꼰대이자 한물간 사회주의자"
이러한 우익의 공포마케팅이 세계적으로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현실에서, 어쩌면 지지층을 결속하고 우익의 재구성을 목적하는 이언주류가 채택할 아주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좌우 대립 프레임은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다. 이게 너무 낡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당장 내용적으로 유시민과 홍준표가 이런 프레임을 적용하기에 적절한 적대관계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런 건 이언주류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만 잡으면 성공이니까.
자, 여기서부터 관전의 포인트는 과연 이제 이러한 프레임이 현실 정치에서 일정한 효과를 실질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먹혀들어가면 자동적으로 2020 총선과 그 직후 이어질 대선은 좌우대립구도로 정치공간을 구획할 수도 있다. 이게 좋지 않다는 건 아니다.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반대로 먹혀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면 우익은 곧바로 먹힐 만한 대립구도를 들고 나올 거다. 최근 잘 먹혀들어가는 소수자, 이민자, 페미니스트에 대한 적대로.
개인적인 바람은 뭐 별 거 없다. 이언주 같이 뇌가 청순하다못해 잔주름 하나 없는 상태의 인물들을 좀 안 보게 되는 건데, 이건 대책이 다른 게 아니라 그 자리를 그나마 생각이라는 걸 머리속에 집어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게 되는 거다. 이게 하세월인데, 적어도 이념적 차원에서 저 돌탱이들과 맞대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현재 스코어로는 저 위치에 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 그렇다고 손 빨고 앉아서 저들의 공포마케팅이 먹혀들어가는 꼴만 보고 있어야 하는지도 답답하고, 반대로 이쪽 역시 별로 하는 거 없이 그동안 공포마케팅으로 연명해왔는데 별반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그렇다.
그냥 당분간은 좀 더 쉬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