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옥상옥에 대한 우려 - "도와달라"는 말의 진정성

몇 번 기회가 될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사법농단'을 자행한 양승태류는 감정만으로 따지면 종신형에 처해도 분이 풀리질 않는다. 현행 법제가 이들에게 엄벌을 내릴 수도 없고, 내려봐야 바람 한 번 지나가는 수준이 될 터인데 그 생각하니 더욱 화가 치민다. 이들에게 화가 치미는 이유는 '사법농단'의 내용이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원칙, 민주공화주의의 원리 일체를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거기 더해 또 하나 추가하고픈 죄상이 바로 검찰개혁을 도루아미타불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잖아도 검찰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사법농단'은 검찰에게 활로를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난 이것만으로도 양승태류가 한국 헌정사에 지울 수 없는 치욕을 안겼다고 생각한다. 칼부림의 대상이 되어 가루가 될 정도로 난자당해야 했을 검찰권력은 이번 정권에서조차 어깨 다 펴고 할 거 다하고 시간 지나가는 것만 보고 있어도 무방하게 되었다. '사법농단'은 검찰이 부패세력을 척결하기 위하여 온갖 힘을 다하고 있으나 적폐의 온상인 '사법부'가 검찰의 헌신을 방해하고 검찰을 무력화시키면서 검찰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구도를 만들었다. 검찰은 노나게 생겼다.

물론 개혁이라는 것이 일도 양단으로 이루어진다면 혁명하자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푸념이 나올 일도 없을 것이다. 집권 2년차를 지나고 있는 정권에게 화끈하게 검찰 다 뒤집어 놓을 것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법농단'에 대한 사회 전체의 전방위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서 입법부와 행정부는 사법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3권분립의 기초를 저해하면서 사법부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구시대의 작태를 재연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건 그동안 해도 너무할 정도로 행정부는 몸을 사렸다. 그리고 그 몸을 사리는 와중에 법무부와 검찰청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행정부가 자기 정화조차 못했다는 거다. 적폐청산에 온 정력을 불사르는 검찰의 노력에 찬 물 끼얹을까봐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의지가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길 바랬던 건데 그마저 안 되니 열불이 터지는 거다.

이 와중에 민정수석 조국이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개혁에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면서 "도와달라"고 SOS를 쳤다.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 왜 조국 수석은 "도와달라"는 글을 올렸을까

페이스북 글에서 조국은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사인사제도의 개혁, 검찰 과거사 청산 등 대통령령/법무부령 개정으로 가능한 검찰개혁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라고 현 정부 검찰개혁의 성과를 제시했다. 남은 과제는 공수처법 개정과 수사권 조정 등 법률 제개정의 문제인데 이게 지금 자한당 등 적폐본산의 방해로 진척이 잘 안 되니 국민들이 도와달라는 거다.

조국의 이 평가는 정당한가?

(i) 법무부는 탈검찰화 되었는가? - 천만의 말씀이다. 직제개편 약간 해서 검찰이 장악하던 국 몇 곳의 장을 검찰 아닌 인사가 맡게 된 게 전부다. 여전히 법무부는 검찰청의 행정수발업무를 수행한다.

(ii) 검사인사제도는 개혁되었는가? - 검사임용과정이 바뀐 것이라면 그건 바뀌었다고 할만하지만 그게 이 정부에서 한 일은 아니다. 그 외에 인사에 외부개입의 여지가 좀 있다고 할지라도 그거야 뭐 정권 이상한 놈이 장악해서 검찰이 냅다 걷어 치우면 그만이고. 그만큼 효과가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

(iii) 검찰 과거사 청산은 잘 되고 있는가? - 퍽이나 잘 되고 있겠다. 시행령 몇 개 바꾼다고 한들 검찰이 자기 살에 칼 대겠나? 검찰과거사 청산과정에서 위원회와 검찰이 힘겨루기 하고 있고 이걸 청와대나 법무부가 모른 척 냅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난리를 치지 않는가? 그리고 과거사 청산을 위한 과거사 주제가 지나치게 한정적이고, 검찰의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전무하다.

한편 공수처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이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만, 난 여전히 이 공수처 도입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심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이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수처 도입해봐야 뭔 소용이 있겠나? 옥상옥 하나 더 만드는 것 뿐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국이 "도와달라"고 하는 건 자칫 잘못하면 검찰개혁의 무산을 국민들의 책임으로 돌려버릴 위험마저 상존한다. 기껏 촛불들어 전 정권 끌어내고 이 정권 만들어줬더니 밥까지 떠먹여 달라는 건지 의문이다. 정치가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만, 이번 조국의 SOS는 상당히 떨떠름하다. 

검찰 하는 짓이 미워서 개혁 한다고 하면 부지깽이라도 들고 쫓아가겠지만, 이제껏 보여준 정권의 행보는 부지깽이 들고 뛰어가봐야 뒤통수만 맞고 또 끝나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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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20:36 2019/01/0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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