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일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세상

언제가 어떤 광고 카피로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문구가 뜬 적이 있다. 한국사회의 현실은 '다이나믹' 정도로는 부족하고 언제나 "다이나마이트" 급은 된다. 아니, 다이나마이트는 그나마 안전관리가 가능하니 그 원료가 되는 니트로글리세린급 정도라고 해야 할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성이고 이성이고 나발이고 간에 가장 중요한 건 먹고 자고 입는 거다. 식주의(食住衣)가 그것이다. 통상 '의식주'라고 하지만, 난 이 순서는 옳지 않고, 식주의 순이 맞다고 우긴다. 어쨌든 먹고 사는 게 인간이 생명유지를 위한 필수요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흘 굶은 사람 앞에서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 운운하는 건 매를 버는 짓이다.

인간의 삶은 이 먹고 사는 것에서 출발한다.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 있을 때, 인간은 그 다음에 이성이고 지성이고 키워낼 수 있다. 당장 사흘 열끼 굶어서 벽돌이 식빵으로 보이는 사태에 이르면, 지성은 마비되고 이성은 상실된다. 이 삶의 양태가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예측 가능할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지금 한 덩어리의 밥을 먹지만 이게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사흘 안에 뭐 하나라도 뱃속에 우겨 넣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게 되면 행복같은 개소리는 입에서 나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한다. 그 일을 지금 말고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삶은 불행하다. 지금 하는 일이 장기적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삶의 풍요로움을 위한 계획이라는 게 가능하다. 오늘도 내일도 내가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통해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며, 그 대가를 통해 오늘도 내일도 먹고 살 확신이 있어야 행복이라는 걸 손에 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노동자들이 이러한 지속가능성, 예층가능성을 충분히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오늘 출근하면 저녁엔 병풍 뒤에 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조건, 한 해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비정규성, 갑을관계는 고사하고 주종관계로 구조화된 고용관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은 개나 줘버리라는 태도가 만연한 반인권적 사회환경...

파인텍 굴뚝농성의 종료를 알리는 언론기사의 제목에 "극적타결"이라는 말이 붙었다. 가만 보면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이 자기 생명을 갉아먹어가며 장기농성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이 간난신고끝에 겨우 정리가 끝나면 항상 "극적"이라는 수식어가 동원된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개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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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극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합의의 내용은 또 뭐였던가? 본사인 스타플렉스 정규직고용도 아니라 파인텍으로 고용승계하는 게 중심이다. 노사 양측이 합의를 했다지만, 기실 꼴랑 이 합의를 보자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하늘 바로 밑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던가?

관련기사: 연합뉴스 - 파인텍 오는 7월부터 공장 정상화...조합원 5명 업무 복귀

이게 "극적"의 전부다. 이게 "극적"이 되는 사회가 한국이다. 그리고 이런 "극적"인 일이 일상으로 벌어지며, 이런 "극적" 사건을 위해 한국의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일하면서 일터에서 죽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고,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굴뚝을 기어올라가 죽기 직전까지 단식을 해야 하는 이 극적인 삶이 노동자의 삶이다. 한국에서는... 다이나믹하지 않은가?

"극적"인 일이 벌어져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극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비일상적인 일상이 지속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인간의 행복? 인간의 존엄? 그건 오늘이고 내일이고 내가 별안간 일터에서 죽지 않을 수 있고, 일감이 끊겨 굶어죽지 않을 수 있고, 굴뚝에 굳이 올라가지 않고 단식을 하지 않더라도 난데없이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 숱한 시간동안 고통을 감내했던 노동자들과 그리고 그들과 연대했던 수많은 동지들에게 감사하는 한편, 다시는 이런 "극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극적"인 일이라는 건, 내가 좀 "극적"으로 먹고 살만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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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0:43 2019/01/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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