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망가에 의존하지 않는 진보정당?

진보정당운동 또는 노동정치세력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잖은 사람들이 "명망가에 의존하는 진보정당운동"을 비판하거나 자조하는 말들을 자주한다. 이젠 이런 이야기들으면 짜증도 나지 않는다. 그냥 김이 빠질 뿐.

이런 말 하는 사람이 그냥 방구석에 처박혀 짱구만 굴리는 이론가이거나, 아니면 정당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닥치고 혁명! 이러구서 뛰는 사람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소위 '직업적 정치인'을 진보진영으로부터 배출하고자 그 노력을 다했던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황당할 정도다.

제도권 내에 '직업적 정치인'을 양성하고, 이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을 제도화하려는 게 정당운동의 요체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이런 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취지에서 명망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추동하여 우리의 스피커를 만들고, 이 명망가를 위시하여 확장을 도모하며 명망가가 계속해서 그 위치를 지키고 더 발전해나가도록 유지 보수하는 것이 정당운동활동가의 자세이자 목표가 아니었나?

이게 그동안 삑살이가 자꾸 나서, 기껏 있는 자원 없는 사람 끌어모아 국회의원 등 어떤 주요 지위에 앉혀 놓으면, 종국에는 연명치료에 급급해 다른 데로 튀어버리니 실망했을 수도 있고, 나도 뭐 그런 실망을 안 느껴본 거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이런 일련의 역사적 과정들을 통해 얻은 결론이 "명망가에 의존하지 않는 진보정당"이라면 이건 좀 어이가 없다. 아니,명망가가 없어도 되는 정치를 하겠다면 굳이 제도권 정당을 왜 하려고 하는가?

예컨대 단병호 위원장이 노동운동가로서 높이 평가받을 위치에 있었는데, 기껏 정치인을 만들었더니 별다른 내색도 없이 한 번 하고 손 떼어버렸는데, 이건 명망가에게 책임성을 부여하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를 선도하도록 추동하지 못한 데에 문제가 있는 거지, 단 위원장을 바라만보고 있어서 망한 건 아니잖은가?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그건 자신의 명망성을 더 책임있게 활용하려고 하지 않은 단 위원장이 비판받을 지점이 아닌가? 

진보신당-노동당 측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자기 개인의 정치를 위해 통진당이나 정의당으로 옮기면서 정치적 동지의 뒤통수를 후려 갈긴 것에 화가 나 명망가 정치의 무상함을 토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먹튀질을 했다고 해서 이 사건으로부터 얻은 결론이 명망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진보정치운운하는 것이라면 이건 뭘 잘못 먹은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하더라도, 아니 그럼 명망가 없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건가? 대중들에게는 뭐 기대도 않고 뭘 같이 하지도 않을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명망가가 문제면 그 명망가 개인을 평가하든지, 아니면 그렇게 명망가가 뒷덜미에 칼 꼽고 튀게 된 원인이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향후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뭘 해얄지를 논하는 게 순리다. 그 결론이 자꾸만 "명망가에 의존하지 않는 진보정당"으로 흘러간다면, 그냥 정당하지말고 단체를 하던가, 아니면 이름 없는 자들이 뭉쳐 지하로 스며 혁명운동을 하던가 그렇게 하는 게 맞다.

덧. 아닌 말로, 쿠데타도 불가능할 정도로 안정화된 사회구조에서 체제전복을 전제하는 무력혁명을 일으킨다는 건 그냥 망상각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노정을 단지 하루 아침에 왕의 목을 매달던 수준에서 검토할 것이 아니라, 혁명의 과정과 강도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제도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결하고. 이거 무시하고 그냥 닥치고 혁명 운운하면서 "명망가에 의존하지 않는" 운운하는 자들은 일단 앞으로 제끼고 볼란다. 이런 자들과 더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피곤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9/01/14 13:49 2019/01/14 13:49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