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박물관 - 공화춘 기념관이라고 해야 할 듯
"인천" 하면 떠오르는 명소 중 하나로 곧잘 꼽히는 게 차이나타운이다. 그렇긴 한데, 내가 인천에 있을 때는 차이나타운은 뭐랄까, 퇴색해가는 곳이라고 해얄까 아님 발전이라는 게 도통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해얄까 뭐 그런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냥 중국식 건물 몇 채, 그것도 그다지 화려했다는 기억은 도통 없고, 춘장 볶는 냄새만이 얼추 떠오르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연배만 해도, 훈련소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짜장면이었더랬다. 하지만 인천에서 공장생활을 하면서도 굳이 짜장면 등 중화요리를 먹으러 차이나타운을 찾지는 않았더랬다. 기실 나는 짜장면보다는 인천 곳곳에 널려 있는 횟집이 더 땡겼더랬다. 원래 산골출신(?)인지라 갯것을 기꺼워하기 어려운 체질을 물려받았을 줄 알았으나 웬걸, 바다에서 올라온 것들이 너무 좋아 나중에 나이 먹으면 산속에 들어가 살고자 했던 꿈을 포기할 정도...
공장 입사하고 얼마되지 않아 소주 한 잔 사겠다는 선배따라 연안부두 어느 포장마차로 들어가 난생 처음 '회'라는 걸 먹었을 때,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천지가 개벽하는 신기를 맛보았다는 거 아닌가... 이런 음식이 있다니, 식재료를 날것으로 먹는데 이런 맛이 날 수 있다니, 이러면서 알게 된 회맛에 인천 있는 동안 뭔가 특별하게 지낼 일이 있으면 대부분 회를 먹으러 돌아다니기도 했고.
중화요리에 더 관심이 가지 않게 된 계기는 공장에서 나눠준 연말선물이었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맞은 연말에 나온 선물이 밀가루 20kg과 설탕 10kg이었다. 이걸 집으로 들고가기도 뭐하고 설령 들고 간다한들 직장 잡은 아들놈이 기껏 밀가루랑 설탕푸대를 땀 삐질거리며 들고 들어간다든 것도 가오가 서질 않는 판이라 비슷한 생각을 한 동기들 몇이 가까운 중화요리집에 이 밀가루랑 설탕을 팔아 나온 돈으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결정하고 물경 30kg을 들고 돌아다녔는데, 들어가는 중화요리집마다 안 사겠다는 거. 결국 지금은 없어진 개항 100주년 기념탑 근처 중화요리집에서 짜장면 기타 만두 한 접시씩으로 교환하고 말았더랬다. 그 이후 중화요리집은 한 동안 별로 가지 않았다는...
그래도 기왕에 인천을 여행하는 것이니 빼놓을 수 없는 곳인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자유공원을 지나 갔는데, 저 맥아더 상이 옛날에도 저렇게 커다란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에는 굉장히 조그만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보통 어릴 때 기억은 다 컸던 것으로 기억되지 않나? 왜 난 거꾸로지? 거참... 저렇게 큰 규모라고는 생각을 못했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도 보고. 1982년에 세워진 조형물인데 뭔가 의미가 있겠거니 하지만 이게 뭔 의민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자유공원을 상징하는 거대 기념물은 다 미국과 관련이 있구나. 미국과 수교한 걸 기념하고, 맥아더를 기념하는 이 공원의 이름이 자유공원이라는 건 좀 아이러니하다. 마치 '미국=자유'라는 것 같고. 미국은 스스로 자유를 행사하지만 미국 아닌 존재들은 미국의 자유를 위해 자신들의 자유를 희생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일까? 미국의 51번째 주도 아닌데.
아무튼 이렇게 자유공원을 타고 넘어 도착한 차이나타운은 화려했다. 잘 꾸며놓았고 자유공원 반대편 입구까지 흘러 넘어오는 춘장볶는 냄새는 침이 고이게 만든다. 볼 거리도 많지만 아무튼 여기 저기 기웃대다가 들어온 곳은 '짜장면 박물관'
입구. 잘 꾸며놨다. 보기에 좋다. 입구에는 인천에 화교거리가 생기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연표가 붙어있다.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특히 중국에서 넘어온 쿨리들이 짧은 시간 동안 후딱 먹고 갈 수 있도록 내준 음식이 짜장면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형으로 설치된 짜장면은 당시의 것은 아니라고. 저 모형 짜장면은 오늘날의 것이고, 쿨리들이 먹던 그것은 저렇게 건더기가 많지도 않고 색도 검지 않고 거의 장을 면에 발라먹는 수준으로 먹는 거였다고 한다. 뭐 암튼 그렇고. 앉아 있는 쿨리 인형들은 중국복색을 하고 있지만, 그 옆의 사진들은 조선 노동자들이다. 뭐 같이들 먹고 그랬겠지.
이건 뭔가 개화기때 삘이 나고...
이건 뭔가 70년대 삘이 난다. 맛있겠다.
춘장에서부터 레토르트까지 시중제품을 전시해놨다. 내가 먹어본 건 윗줄에 3개, 둘째 줄에 2개가 전부다. 흐... 보통 짜장을 집에서 해먹고 싶을 때는 윗줄 왼쪽에서 3번째 있는 춘장을 사다가 직접 볶는다. 그러니 뭐 즉석식품을 많이 접하지 않은 게 당연할 듯
면류인데, 70년대에 분류된 건 아예 기억에 없고, 80년대 제품 중에서도 네 가지 정도밖에는 먹어본 게 없다. 이주일 아저씨 얼굴 그려진 우짜짜를 먹어봤다는 건 나도 좀 의외네. ㅋ
그러고보니까 내가 인스턴트 짜장면 제품은 아주 편향되게 먹었구나. 역시 90년대 2000년대 다 쳐도 두어가지 밖에는 먹어본 게 없구나.
이 쪽에서는 먹어본 게 없다. 전멸이구먼. 컵라면 종류를 먹을 때 짜장은 아예 먹어본 적이 없구나. 헐...
배달의 민족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차이나타운에서 출발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철가방', '달통이' 등으로 불리던 배달통들. 오른쪽 세 형태는 알겠다. 그보다 왼편의 배달통들은 신기하다. 배달의 기수들이 저거 들고 다니느라 고생깨나 했으리라.
박물관 출구 부근에 설치된 황금돼지. 앞뒤로 참 복스럽게 생겼다. 내 주변의 모든 분들이 올 한 해, 황금돼지 껴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저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시길 기원했다. 그래야 맛있는 짜장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지 않겠나. 몸 상하면 짜장면도 못 먹는다.
2019년, 좋은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박물관에 두고 나왔다.
아, 이건 그냥 부연하는 건데, 이 박물관을 죽 돌아보고 난 느낌은 이 박물관을 "짜장면 박물관"이라고 하기보다는 "공화춘 기념관"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전체적으로 공화춘을 소개하고 차이나타운 짜장면의 역사를 공화춘의 역사와 거의 등치시키는 것 같은데, 글쎄... 옛 공화춘 자리에 만든 것이니 그런지는 몰라도, 이미 공화춘이 짜장면의 시초라고 하는 것에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 공적 시설물로 공화춘을 짜장면의 시초로 못박아주는 게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짜장면 박물관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으면 다음 링크 이용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