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맬 것인가 한강에 뛰어들 것인가
선택이라는 건 예를 들면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정도가 되어야 판단의 가치가 있다. 어차피 죽을 건데 한강에 빠져 죽을래 화장실에서 목을 맬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지금 민주노총에게 강요되는 '선택'은 딱 후자인 듯하다. 경사노위에 들어가도 죽고 안 들어가도 죽는다. 들어가게 되면 친자본정책의 알리바리만 제공하다가 굶어 죽고 안 들어가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해 죽는다(고 협박당한다). 어찌할 것인가?
계속 하는 이야기지만, 정부와 여당은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경사노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조차 만들어줄 생각이 없다. 예컨대 여당인 더민당의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그냥 노조 하지 말라고 하는 법안이다. 이런 법안이 여당의원으로부터 나왔다. 그런데 그 여당이 민주노총에게 안 들어오면 죽는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 여당이 보조하는 정부 역시 밖에서 죽느니 안에서 죽으라고 손짓한다. 어찌할 것인가?
경사노위의 사용자측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노동조합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최소한 정부와 여당은 이 안이 어떤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런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 있다는 정도까지만이라도 제스쳐를 취했어야 한다. 그런데 여당 의원인 한정애가 저런 개정안을 제출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는 어차피 정부여당은 경사노위에서 노동조합의 입장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에게 손짓한다. 기왕 죽을 거 들어와서 우리 체면이나 세워주고 죽어라. 이런 판국에, 그래, 어찌할 것인가?
오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얼마나 논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조합법을 둘러싼 문제 뿐만이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를 이원화하는 방안, 노동현안에 대한 정부여당의 모르쇠 일관, 비정규직 철폐 내지 정규직화 공약의 실종, 더 나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기만적 언술마저 폐기하려는 현재의 상황 등이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2월 중순을 거치면서 상반기 내내 모든 이슈는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로 잠식될 것이고, 그 와중에 북한을 시장화 내지 자원기지화에 대한 청사진을 통해 남한의 노동문제와 경제문제를 희석하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경사노위에서 다루어지는 안건 역시 이 흐름에 뒤섞이게 될 것이며, 당면 남한 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시도들은 그다지 반향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럴 바에는 상반기 중에 정부여당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정치적 흐름을 만들거나 이러한 흐름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나마 정부와 여당이 일정하게 노동의 입장을 인정하는 가시적 태도를 취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나는 민주노총이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사노위 같은 기만적 기구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입장에는 반대한다. 그럴 거면 그냥 민주노총 하지 말고 지하운동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허수아비 취급 당하는 게 뻔한 판에 들어가 기왕 죽을 거 깔끔하게 죽을 건지 지저분하게 죽을 건지 선택을 강요당하는 입장에 서지는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