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대 국민 사기
내가 비록 재야의 영세 자영 독립 연구자이긴 하지만... 뭔 혓바닥이 이렇게 길어... 백수라고 하면 될 걸... 암튼 그렇지만, 알량하게나마 헌법을 전공하고 그걸로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때때로 안타까운 것은 같은 헌법으로 같은 체계에서 같은 교재로 공부했던 사람들이 곡학아세를 일삼는 모습을 볼 때이다.
헌법은 내 공부의 결론으로는 관계의 집대성이다.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역사와 역사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공간과 시간의 관계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모든 관계들이 녹아 있는 세계가 헌법의 세계다. 헌법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설정을 일정한 구조로 질서잡고 이를 선언한 법률체계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 선언은 난데없이 모든 사람들의 각성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 온갖 정치적 투쟁과 타협을 거쳐서 비로소 형성된다. 그러다보니 헌법은 완성을 향한 과정일 수는 있어도 완성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관계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그 관계를 주도하는 주체와 끌려가는 주체는 언제든 뒤바뀔 수가 있다. 털 난 영장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되면 털 없는 영장류가 만들어놓은 헌법체계는 전복된다.
그러다보니 살아 있는 헌법의 활동은 해석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모든 주체 간의 투쟁이 헌법체계 안에서 벌어진다. 헌법은 정치의 결과물이 동시에 정치의 출발점이기도 하므로 이러한 투쟁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헌법은 주체에 따라 같은 조문이라도 언제든 차이가 나는 해석이 등장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차이가 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공통된 전제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전제를 무시하게 되면 해석투쟁이 아니라 그냥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전쟁을 해야 한다. 헌법해석투쟁이 아니라 헌법수호세력과 헌법창조세력 간의 전쟁 말이다.
해석의 차이라는 건 이런 거다. 예를 들어 현행 헌법 제41조 제2항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조문에 국회의원의 정수에 일정한 하한이나 상한을 정한 규정을 둔 것은 박정희 쿠데타 헌법, 즉 제5차 개정헌법에서였다. 제헌헌법에서는 정수에 대한 규정이 아예 없었고, 제1차 개정에서는 국회를 양원제로 변경하면서(물론 이승만 정권 내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국회의원의 정수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을 두었던 것이 다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만든 헌법에서는 국회의원의 정수를 150인 이상 200인 이하의 범위에서 법률로 정하도록 헌법에 못박았다. 국회라는 대의기구의 대표의 수는 국민의 혹은 유권자의 질과 양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에도 이렇게 아예 헌법에 못을 박은 이유는, 최소한의 범위는 적어도 쿠데타 정권이 민주적인 정권이라는 포장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하겠으나 최대한의 범위는 국회가 정권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을 정도로 제약을 둘 수 있는 범위를 찾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나중에 붕괴되는데, 즉, 박정희가 72년에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여기에 집어 넣은 것 중 최악의 정치체제가 바로 통일주체국민회의인데, 이 기구를 넣고 나니 의회를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굳이 헌법에 의원정수를 규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유신헌법은 다만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만을 넣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서 만든 80년 헌법에서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는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고, 이 규정이 87년 헌법을 만들 때도 그냥 들어왔다. 이게 왜 80년에 200인 이상으로 정해졌는지, 그리고 87년에 왜 그냥 그대로 이어졌는지는 따로 연구를 해야 하겠지만, 그건 뭐 시간 남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기로 하고, 다만 여기서 지적할 건 이 정수가 고정불변의 것이어야 하는가 정도이다.
헌법 규정의 표현 자체만 보더라도 이 규정은 "200인 이상"으로 되어 있을 뿐 그 이하나 혹은 상한을 정하고 있지 않다. 전두환이가 만든 헌법이라고 할지라도 이건 박정희가 만든 63년 헌법보다는 상당히 발전된 형태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의원정수규정은 인구의 변동이라던가 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수용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이걸 헌법에다가 아예 몇 명에서 몇 명까지로 딱 못박는 건 기실 그 헌법 만든 놈이 다 해먹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전두환이는 그런 점에서만큼은 박정희보다는 세련되었다는 거...는 무슨 개뿔이나. 암튼 그렇고.
1980년 한국의 인구는 38,123,775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당시 선거기록이 없어 유권자가 몇 명인지는 알 수가 없으므로(대통령선거가 있긴 했는데 그게 체육관 선거였고 전두환이가 뽑힌 선거였던지라 인구 따지기에는 별 의미가 없으므로)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1981년으로 계산해보면, 1981년 당시 총 인구는 38,723,248명으로 집계되며 유권자는 21,094,468명으로 유권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53,47%에 이른다. 이 때 국회의원의 총 수는 지역구 184석에 전국구 92석으로 총 276석에 이르렀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전두환이가 대통령 먹었을 때 국회의원의 정수는 유권자 대비 약 76,429명 당 1명, 전체 국민 대비로는 약 140,301명 당 1명 꼴이 된다.
그로부터 37년이 흐른 2018년에 한국 인구는 51,635,256명으로 집계된다. 2018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없었으니 2016년 통계로 계산해보자. 2016년 한국인구는 51,245,707명으로 집계된다. 유권자는 42,100,398명이었다. 20대 총선에서는 세종시 지역구가 한 석 늘어나면서 의원정수가 300명이 되었다. 이를 다시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국회의원정수는 인구대비 170,819명 당 1명, 유권자 대비로는 140,334명 당 1명 꼴이 된다.
산술적 계산으로만 보더라도, 현재 국회의원 정수는 1981년 당시에 비해 유권자 대비 절반으로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유권자의 수만 가지고 국회의원 정수를 따져본다면 1981보다 유권자의 수가 두 배로 늘었으니 의원도 두 배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인구대비로만 보더라도 비율적으로는 현재 국회의원의 수가 약 365명은 되어야 한다는 거다. 1년도 365일, 국회의원도 365명... 어째 라임이 착착 맞는 듯한 느낌적 느낌이...
재야의 영세 자영 독립 연구자... 백수에게 남는 건 시간 뿐인지라 이렇게 쓸데없이 계산기를 두드려봤는데, 난데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 건 다 나경원 덕분이다. 어제(3월 12일) 있었던 나경원의 국회연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헌법사안이 열거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특히 몇 가지 헌법적으로 아주 중요한 쟁점이 걸려 있었기에, 헌법을 전공한 재야의 영세 자영 독립 연구자...로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다.
나경원이 제시한 헌법적 문제는 (i) "정치의 본질이란 책임과 해결" (ii) "문재인 경제정책, 위헌" -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정책, 사회주의정책 등 (iii) "미세먼지" "탈원전" "전교조 등 노동정책" (iv)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있다" (v) "선거제도" - 비례대표, 의원정수 300 (vi) "자유민주주의의 붕괴" - 전체주의 검열 등 굵직굵직한 것만 봐도 이정도다. 시간이 남아 도는 재야의 영세 자영 독립 연구자... 아 이거 뭐 줄임말을 찾든지 해야지... 백수?... 암튼 그러니 각 주제에 대해서도 시간 내서 한 번씩 살펴보면 재미는 있겠지만 그건 뭐 놀다가 지치면 하기로 하고, 오늘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 건 나경원의 이런 발언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정수의 무한확대...를 초래한다는 것! 결국 의원정수는 300석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의 헌법정신에 반한다는 것"
주권자가 가지고 있는 기본권 중 매우 중요한 것이 자신의 대표를 가질 권리이다. 이 권리는 대의민주주의원리의 핵심 원리이자 의회주의원리의 기본 전제다. 이건 헌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장 밑바닥에 깔고 가는 전제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부정되고 오로지 직접민주주의만이 남아 있는 체제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부정될 수 없는 원칙인 거다.
기본권은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특정한 사정이 조성되어 이에 따른 조건이 분명하게 지켜지지 않는 한 축소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를 가질 권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라. 간단한 산수만으로도 우리가 대표를 가질 권리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유권자 대비로만 보더라도 1981년보다 지금 우리는 겨우 절반의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멀리 제헌 당시로 돌아가보더라도 참담할 지경이다. 당시 국회의 구성을 위해 합의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10만 선량(選良)'이다. 전체 국민 10만 명 중에 한 명꼴로 대표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17만명 당 한명 꼴로 대표를 가지고 있다. 물경 70년 전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나경원이 "의원정수 300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불문의 헌법정신"이라고 하는 건 과거 헌법재판소가 서울은 관습헌법상 수도라고 선언한 것을 능가할 정도로 개구라다. 그런 헌법정신이란 건 없다. 쿠데타로 정권잡은 놈이 만든 헌법을 제외하고 어떤 민주주의국가의 헌법이 국민의 대표를 가질 권리를 축소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나? 그런 정신머리 없는 헌법을 가진 국가는 제정신이 아닌 국가다. 그렇다면 나경원의 주장에 따르면 결론은 둘 중 하나인데, 우리 헌법이 정신이 없는 헌법이거나 아니면 나경원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거나.
앞서 곡학아세라는 표현을 했는데, 나경원의 경우는 곡학아세라기 보다는 사기를 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정치학적 용어로 하자면 "대국민사기"라는 거다. 나는 전부터 이야기하지만 나경원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기보다는 지적 수준을 이용해 국민들을 기망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판사출신이라는 권위를 앞세워, 즉 법률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법을 왜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법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상상계를 현실처럼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건 기망행위다.
이런 자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봐야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러한 사기꾼들 때문에 정치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게 되고, 그 혐오감 때문에 국회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오히려 지지를 얻게 되는 현상이다. 대표를 가질 권리를 스스로 축소하자고 하게 되는 주권자들의 모순적 심리는 바로 이런 사기꾼들이 조장한 이따위 망발 때문에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기치는 것들은 입을 꿰메고 코구멍으로 밥을 처먹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