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폐지는 위헌인가?

자유한국당이 연일 뻘타를 치는 와중에 이에 대응하는 측에서는 거의 멘탈이 붕괴될 지경인지 모르겠다. 하긴 뭐 정신이 없는 것들을 상대로 제정신을 가지고 싸우려니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다만. 암튼 그러다보니 어찌 보면 저것들 페이스에 말려서 같이 혼미해지는 일들이 벌어지는 듯한데 그럼 안 되지. 정신 나간 것들하고 다퉈도 내 정신은 잘 간수하고 있어야 나중에 뒤탈이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관계법 개혁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 바치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에게 일단 경의를 표하면서, 그러나 아무리 성질이 나고 빡이 쳐도 한 템포 늦추더라도 생각해 볼 문제들을 좀 더 생각해 보고 가시기를 주문한다.

하승수 변호사가 어제자 경향신문 칼럼에 올린 글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는 위헌이다. 헌법 41조 3항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구를 안 정해도 위헌인 것처럼, 비례대표제를 폐지해도 위헌이다. 헌법은 선거구와 비례대표제의 존재를 전제하고,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하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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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변의 신심은 너무나 잘 알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는 좋지 않다. 왜냐하면 헌법의 해석상 비례대표제 폐지를 곧장 위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41조 제3항에 적시된 내용들, 즉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그 내용 자체가 반드시 법률의 내용으로 포함되어야 할 것을 규정한 것이라기보다는 법률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들의 예를 열거한 예시규정으로 보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법률에 선거구에 대한 내용을 넣을 수도 있고 비례대표제에 대한 내용을 넣을 수도 있고 그 외에 이에 준하는 선거에 대한 내용들을 넣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뒤집어 말하면 이것들을 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일 이 규정을 하변의 논리처럼 적시된 각 제도들을 빠짐없이 골고루 법에 넣어서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석한다면, 현행 헌법 체계 하에서 표의 등가성(1인 1표, 1표 1가)을 가장 확실하게 담보할수 있는 방법은 (독일식) 연동형 밖에는 없다. 이러한 해석 하에서는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제시한 전면 지역구제나 일부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전면 비례대표제 같은 건 현행 헌법체계에서 존재할 수 없다. 녹색당 일부 등이 주장하는 추첨제 같은 건 현행 헌법 체계에서는 꺼내들 수조차 없게 된다.

본 조항은 열거조항으로 봐야 하며 경직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애초 선거법에서 대의기구를 구성하는 방식은 정치수준이나 주권자의 의식수준,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국민적 합의에 따라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거나 통으로 계수하는 정도까지도 용인할 수 있는 개방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헌법이 굳이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을 적시한 것은 이러한 제도들이 기왕에 잘 알려진 것들이니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예도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일 뿐, 이거 이외에는 안 된다고 못박은 것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를 싹 다 없앤 안을 들고 나오자 그 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려다보니 위헌 운운하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완전 지역구 선출만으로 획일화된 법안을 들고나온다 하더라도 이는 위헌이라고 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전면 비례대표제 법안을 누군가가 들고나온다고 할지라도 이를 위헌이라고 할 수 없다. 똑같이 녹색당이 추첨제를 들고 나온다고 한들 이를 위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추첨제가 현행 제도는 존치하되 일부 의석만 그렇게 한다고 하거나 전면 추첨제로 하자고 하거나 마찬가지다. 

나경원 까라 자유한국당 떨거지들이 하는 짓이 가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딮빡친 마음에 저것들 다 위헌! 이러면 다음 논의가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하변에게 묻고 싶은 건 이런 거다. 하변은 일단 지금 나온 안으로 민주당과 야3당이 합의하고 나중에 추가협상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거 진짜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이야긴가?

예컨대 민주당이 들고나온 석패율제 같은 제도는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의 유력 인사들 패자부활전 치뤄주는 격이고, 그렇게 될 경우 종국에는 일본 자민당 같은 괴물정당을 낳게 될 우려가 큰데, 그거 나중에 민주당이 추가협상해서 빼줄 가능성이 있나? 오히려 석패율제야말로 2001년 헌재가 1인1표 전국구 위헌을 결정한 법리로 따지자면 위헌 아닌가?

아무튼 간에 하변, 힘 빠지지 말고 건승하시길 기원하고. 더불어 저 나경원 류의 정신나간 자들은 좀 어떻게 한 방에 휴거 같은 거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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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6:14 2019/03/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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