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기본소득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가끔 공화주의적 맥락에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시도하는 분들이 있다. 노력은 가상한데,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공화국의 동료시민으로서 연대를 강조하는 그 이론들은 그러나 기본소득의 원천이 되는 일정한 잉여이윤을 만들어내는 다른 동료시민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대충 생략하고 있다. 그냥 기본소득의 재원을 부담할 의무가 있는 자본과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를 가진 대중으로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이다.
후배와 관련된 논의를 하던 중 당연히 공화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또 끼어들게 되는데, 내가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공화주의의 측면에서도 현재 기본소득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공화주의적 관점은 균형을 현저히 잃은 것이다.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적 공화주의를 이야기할 때 가장 흔하게 동원하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바로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대로 가져간다"는 공산당선언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이야기하면서 공화주의를 끌어들이는 기본소득론자들은 "필요에 의한 분배"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당 기관지에도 이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지만, 마르크스의 저 말은 분명히 "if~than"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들은 간과한다. 다시 말해, "필요에 의한 분배"를 위해선 반드시 "능력에 따라 일한다"는 공화국 시민의 의무가 전제되는데 이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적 공화주의에 입각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원칙이 담보되는 '기본소득'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이 다름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주체의 문제다. 달리 말하면 계급투쟁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생산수단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상황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기본소득을 '사회주의 이행강령'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허위의식의 발로다. 현재 논의되는 기본소득론은 그냥 현찰복지일 뿐이며 자본주의 시장체제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 한국의 주류 우파 정치집단이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경제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