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파를 구분하는 훌륭한 기준에 대하여

저 남쪽녘에 있다는 전설의 까페 헤세이티는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 목록 중의 한 곳이다. 그곳의 주인장이 예전부터 여기 저기서 톡톡튀는 말들을 내놓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 장소의 운영방식이 매우 독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더 커진다. 커피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곳 주인장이 국제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싣고 있는데 오늘 보니 또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좌우파의 기준을 다양하게 구분하면서, 최소한 이분법으로 살지는 말자고 주장한다. 

국제신문: [세상읽기] '이분법 공화국'으론 안 된다/황경민

요지는, 진보/보수 구분하는 이분법은 피아의 구분을 통한 극한대립만 조장할 뿐이므로, 가치관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그 일환으로 좌우의 경계도 여럿으로 구분하여 보자는 것이다. 그는 7색깔 무지개처럼 좌우도 7가지로 구분하자면서, 극좌, 좌파, 중도좌파, 중도, 중도우파, 우파, 극우로 나누면서 각각의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모든 현상을 피아로 구분하여 정립하면 만사 쉽게 볼 수는 있다. 칼슈미트가 제시한 '정치적인 것'의 핵심이자 그 출발이 바로 우적개념의 적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간단하던가. 이분법이 판치는 사회는 결국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의 대립으로 정리된다. 이 양자간의 대립은 인간이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결코 결론이 나지 않을 싸움이다. 애초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뇌가 발달하고 인지능력이 향상된 인류의 사고방식으로는 현저하게 그 가치가 떨어지는 구분이다. 먹느냐 먹히느냐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의 한계가 인류로 하여금 사회계약으로 진전하도록 강제한 거 아닌가?

일단 이 칼럼에서 나누는 좌우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그 기준을 경제구조와 생산수단의 소유에 두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나는 적어도 '극좌'는 아닌가보다. 이 칼럼에서 '극좌'는 "무장혁명을 통해 체제를 뒤엎자고" 하는 부류인데, 나는 나이 서른이 되면서 무장혁명따위 망상에 불과하다고 선언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선언으로 인해 택도 아닌 쌈박질도 했다만... 허허 추억돋네...

암튼 이 칼럼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아직은 '좌파'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하지만 과연 이 기준들만으로 좌우를 구분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이나 환경이나 동물권이나 과학기술 같은 분야 역시 나름 7색깔 무지개에 버금갈 정도로 다양한 좌우의 구분이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나는 생물학적 한계와 구태의연한 행태의 체화로 인하여 아무래도 페미니즘의 경우 중도좌파를 넘어 더 왼쪽으로 들어가진 않는 듯하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나는 아마도 중도쯤에 위치하지 않을까 싶고, 동물권으로 들어간다면 아마도 중도우파정도로 분류될지도 모르겠다. 과학기술의 경우엔 중도쯤 될 듯 하고.

그렇다면 이 칼럼의 기준이나 내가 생각한 각 분야의 기준으로 볼 때, 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 이렇게 자신을 알게 되면, 나는 더 좌나 더 우로 갈 어떤 기준에 대해 고민하게 될 터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은 좋은 글이다.

그나저나, 이 칼럼에서는 '우파'와 '극우'를 인지할 수 있는 표지를 제시하지 않고 생략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좀 제시해줬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칼럼의 기준이 '명징하게 직조된' 기준은 아닐지 모르지만, 보다 다양하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동의하게 된다.

덧: 난 저 제목에 '공화국'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용법에 대해선 불만이다. 이건 다른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두고 "~공화국"이라고 명명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같다. 예컨대 한국사회를 비꼬는 말 중에 "삼성공화국"이라거나 "검찰공화국" 같은 말들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어떤 특정 권력이나 세력이 자신을 우월적 지위에 놓고 자신 외의 구성원들을 위력을 동원해 지배하는 체제는 '공화국'이 될 수가 없다. 이 칼럼의 제목은 이 칼럼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공화국은 본질적으로 이분법적 내란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고안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난 이 공화국이라는 말이 자꾸만 오용되는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지배자 없는 지배를 원칙으로 하는 공화국의 의미가 완전 반대로 사용되는 일들이 빈번하다는 건 그만큼 이 사회가 공화국과는 먼 사회라는 걸 상징하는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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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11:02 2019/09/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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