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호치민 3 - 하늘과 땅

청계천 일대를 걷다보면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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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외관: wiki media 출전

업어온 사진이다보니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주진 못하지만, 암튼 저렇게 지어놓고 청계천 판잣집의 재현이라고 소개한다. 나도 오목교 지나 안양천 판잣촌에 살았지만, 청계천 체험관 형태의 판잣집은 내 기억에 거의 없다. 일단, 안양천도 그랬지만 청계천 판잣집들의 대부분은 거의 외국의 수상가옥처럼 생겨먹었다. 개천과 인접한 곳에 짓다보니 기둥이 중요했던 거고, 지붕도 체험관처럼 판자로 잇기보다는 양철쪼가리거나 지푸라기로 얹은 것이 태반이었다. 나무판자는 건축자재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더랬다.

안양천 뚝방에서 개천과 반대쪽, 즉 뚝방이라 불리는 제방에서 개천 바깥쪽에 있는 집들은 그나마 저 체험관처럼 벽이며 바닥이며 갖출 모양을 제법 갖추고는 있었다. 그래봐야 다 쓰러져가는 흙벽에 초가지붕이거나 건설현장에서 아시바 쌓고 통로로 깔아놓은 구멍 뻥뻥 뚫린 철판 등을 잇고 얹고 한 지붕도 많았고. 이러다보니 큰 비라도 내리면 개천쪽에 있던 판잣집들은 쓸려 내려가기 일쑤였고, 개천 바깥쪽이나 뚝방 위쪽에 있던 집들도 무사하기가 어려웠다.

장마철이든 태풍이 불든 아무튼 개천이 불어나 물난리가 날 때 쯤이면,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손에 잡고 등에 업고 해서 시골로 물피난을 갔더랬다. 그게 때를 잘 맞춰서 가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고 물난리 난 후에 움직이게 되면 집도 난리고 도망가는 길도 난리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다. 그나마 안양천 뚝방에서 우리는 뚝방 위쪽의 판잣집(이라기보다는 초가집)이었는데, 뚝방 밑 개천 옆 판잣집들은 비 오고 나면 어김없이 새단장(!)을 해야 했다. 청계천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나온 노가바 중에 '저 푸른 초원 위에'를 패러디한 것이 있었는데, 그 노래말은 '청계천 다리 밑에...' 운운하던 것이었더랬다. 헐...

숙소에서 1군이라고 하는 호치민 시내까지는 약 3~4km 정도 된다. 숙소를 떠나 시내로 걷다보면 개천을 두 번 건너야 했다. 사이공강과 그 지류다. 두 번째 작은 다리를 건너려다보니 개천 좌우에 빛바랜 사진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뚝방 판잣집의 원형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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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운운하고 싶진 않다. 저 안의 현실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지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에서 저와 비슷한 판잣집의 안쪽에서 경험했던 삶이라는 건 추억이라는 고상한 어떤 행위로 대체될 수 없는 악몽이니까. 우리는 종종 과거의 어떤 일들을 낭만적으로 회고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그것도 사건 나름이고 사람 나름이다. 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특히 저 뚝방 언저리 개천 옆 판잣집 생활은 꿈에라도 나올까 두렵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도 저 안에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냄새가 나는 개천 옆에서, 그 연탄처럼 검은 개천의 빛깔을 등에 지고, 부박하면서도 힘겨운 삶을 그래도 살아가고 견뎌내고 있다. 그들은 또 그렇게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과거에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오늘 저들의 삶을 부정하거나 가엽게 여길 일은 아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든 그들도 미래 언젠가에 다른 모습으로 살아 있을 터이니. 다만 오늘 이 시간에도 그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반면, 바로 이 천변 옆으로는 기괴하리만큼 모순적인 마천루의 세계가 잇닿아 있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는 건물이며, 세계 어느 대도시에 견주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신도시들이 바로 이 판자촌 옆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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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이러한 모습에 대해 "이곳은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가 병존하는 세계다"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동시에 이곳은 전혀 다른 계급들이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저 81층 짜리 초고층 건물이 걸어서 불과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데, 40여년 전 한국 서울의 어느 개천 옆에 있었던 빈민가가 이 자리에 현존한다.

물론 한국이라고 해서 지금 이 순간에 이러한 모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난 호치민에서조차 밤 늦게 그리고 아침 일찍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보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 폐지 줍는 노인이 한국에서는 일상적이지 않은가? 초 빈곤층과 초 부자들이 동시대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는 건 호치민이나 서울이나 다를 바가 없을 터이다. 그러한 모습을 일상처럼 보고 살아왔잖은가? 그럼에도 비행기로 5시간 반에 걸쳐 날아온 이 공간에서 마주한 이 광경은 익숙한 것임에도 낯선 이질감을 계속 남겼다.

저 하늘 아래 가까운 자와 이 땅 지표에서 가까운 자들의 삶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같은 인류임에도 이처럼 하늘과 땅으로 갈려 사람들이 나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가. 

호치민에서조차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은 사라지기는 커녕 다시 더 머리 속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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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3 13:45 2019/10/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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