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반성
다른 이들이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너무 쉽게 갈라치고 너무 쉽게 싸우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답답하다가 문득 돌이켜보니 나도 예전엔 그랬었구나. 그래, 언제쯤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청춘이라는 것을 훈장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었을 즈음 나도 세상이 꽤나 명확한 것처럼 여겼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피와 아... 싸움은 있었지만 결코 악수는 없었던 시절. 매사 화나 있었고 매사 조급했었다. 세계는 전복의 대상일 뿐이었고, 뒤집어져야 할 세상에 순응하는 모든 자들은 숙청의 대상이었다. 혁명이라는 말은 너무나 달콤했고, 투쟁이라는 말은 사무쳤다. 사랑이니 애정이니 하는 말들은 배부른자들의 몫이었고, 온통 머리 속에는 계급과 착취와 변혁과 그리고 그와 유사한 무엇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 과거의 나는 어느 순간 매우 소심해지고 무뎌졌다. 어떤 때는 이것이 바로 나이 들어가는 것인가라며 소스라칠 때도 있었다. 일상은 무료해지고 주머니는 비루해지고 그러면서 관계에 대해 고민이 깊어갔다. 그러다가 몸과 마음이 두부모 부서지듯 뭉개진 후 힘은 더 없어지고 한량이 되어간다. 이것은 나이 들어감이 아니라 퇴화의 작용일까.
나이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체력은 떨어지고 뇌는 과거만큼의 정보처리를 버거워한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 모든 것의 작동이 멈추면 그 때 나는 사라지겠지. 누군가는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고 하던데, 나는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 두려운 건 그냥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다. 다시 또 변화하지 않은 채, 탈피의 순간 그 황홀했던 경험을 더는 겪지 못한 채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점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진다. 나가서 부딪치고 깨져야 비로소 다른 나로 나아갈 수 있을 터이나, 그러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다. 그러면서도 생각은 더욱 복잡해져서 저들처럼 쉽게 판단하고 빠르게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또다시 시간만 흘려보낸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아, 아침부터 너무 칙칙하다.
일단 할 일이나 다 마무리하고. 얼마 남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