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를 탓하며
일머리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는지라 그럭저럭 내 할 바는 하고 사는 축에 속한다고 자위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정말 말 그대로 일머리 없는 사람을 만나면 아주 걍 빡이 확 쳐버리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나이가 먹는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좋은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게, 바로 이 일머리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거다. 나쁘게 달라진 게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그러니까, 예전같으면, 내가 생각한 대로 어떻게 일이 되어야 하는데 이걸 삑사리 내는 사람이 생기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어찌 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고, 대세에 지장이 없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고 그럴텐데, 그런저런 앞뒤를 재지 않은 채 일단 내가 그려놓은 어떤 그림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지게 되면 대번에 버럭질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옳고 그름이라는 게 너무나 분명한 때가 있었다. 그것이 단지 가치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까지 죄다 그런 표준이라는 게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그 표준이라는 건 나중에 생각해보니 매우 주관적인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만큼 객관적이며 보편적으로 보이는 것이 없었던 거였다. 어린 시절의 치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또는 그게 젊음의 표징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면 기실 그러한 가치관에서 발생했던 숱한 에피소드들이 지금 생각하보면 말 그대로 이불킥할 껀수들이었으니, 결국 내 기준을 외부에 강요했던 폭력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일에 대한 나의 표준이라는 건 그냥 없어도 무방한 경우가 꽤 많았던 거고, 그러다보니 일머리 없는 사람이 사고를 쳤다 한들 그게 그렇게 위중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일이 많았더랬다. 그걸 못참았던 거다. 그래서 사람들과 척도 지게 되고 싸움도 하게 되고 결국 감정의 골을 메우지 못한 채 등 돌리고 세월 지난 일도 많이 있더랬다.
이사에 준하는 집정리를 하는 와중에, 공부방에 넣어놨던 책들을 집으로 옮기기 위해 도움을 청했는데, 아뿔사, 그만 도와주러 온 동생이 사고를 쳤다. 처음엔 부아가 치밀어 한 소리 했는데, 기실 이 모든 사달이 다 나때문에 벌어진 일일고, 이 친구는 그저 도와주려고 왔다가 사고가 났고, 사고는 보험처리하면 되는 거고, 나야 뭐 일정이 다시 늘어지고 짝꿍에게 주어 터질 일이 생겼다만, 그렇다고 해서 뭐 세상이 뒤집어질 그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기에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성질낼 일이 아니라 도와주러 왔다가 개피를 보게 된 동생녀석부터 달래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
날도 싸늘해지는데 괜히 고생만 시킨 듯 해서 일은 그냥 뒤로 미루고 밥이나 먹자고 데려가 밥먹여 보냈다. 저도 놀랐을텐데 괜히 신경만 더 쓰지 않았으면 싶다. 그러고 나서 보니 이게 다 그냥 갑자기 날이 차가워져서 생긴 일이라고 치부하면 될 일이다. 추운 날씨 때문에 사고도 났지만 어쩌면 그 덕에 나도 이제 조금 철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일이야 뭐 다시 날짜를 맞추면 되겠지, 뭐.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는 것으루다가.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