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심의민주주의, 알리바이
여론조사의 결과를 여론 그 자체라고 믿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안에 대한 판단을 할 때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때로는 그 고려의 비중이 높아져서 여론이 민주주의의 일정한 척도로 사용될 정도다. 단순한 여론조사를 넘어 여론을 조직화하는 과정으로 이용되는 방법이 심의민주주의의 심의절차다. 이번 정부는 핵발전소 신설 등과 같은 미묘한 사안에서 심의민주주의의 과정을 잘 활용했다.
문제는 이러한 여론의 수렴이나 심의민주주의적 절차가 기껏해봐야 정부의 입장을 변명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사용된다는 거. 지난 핵발전소 신설 관련 심의민주주의는 정권이 자신의 공약을 뒤집어 엎기 위해 여론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이번 지소미아는 그 반대. 물론 여론조사업체마다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가장 최근 여론조사인 MBC와 코리아리서치의 조사결과는 55%의 국민이 지소미아 연장을 반대한다고 했고, 종료반대 여론은 37.5%에 머물렀다. 여론을 천명으로 알고 있는 정부라면 당연히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을 터고.
하지만 여론조사는 그저 여론을 참작하겠다는 것일 뿐이고, 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심의민주주의 절차는 원래 강력한 의지가 있었으나 여론이 이에 대하여 반대하므로 여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어느 경우든 정부는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였다고 알리바이를 내세울 수 있는데, 결국은 국민들의 중지를 모아 정부가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게 꼭 불의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절차적인 측면에서 여러 모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고, 그 검토의 일환으로 여론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심의민주주의적 절차를 거칠 수도 있다. 여론을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있지만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정치적 부담을 안고 가야할 일도 있다. 정치를 하거나 정책을 짜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곤욕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불의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편의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기준이라는 것이 사라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여론조사나 심의민주주의적 절차 자체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고 나면 정부는 언제나 알리바이를 확보했다고 생각하지만 대중들은 아예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하여 진행한 여론조사나 심의민주주의적 절차가 오히려 정부정책에 대한 원천적 불신을 낳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지소미아의 문제는 별도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니 넘어가지만, 이번 결정은 결국 이 정권이 마지막 기대던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적 측면에서조차 대중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그래도 지지층이 되어줄 수 있는 대중들마저 잃어버림으로써 이 정권의 이후 정치적 동력이 상당히 손상되지 않을까 싶다.
하긴 뭐 나야 국가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측면은 아에 없는 사람이니 별로 큰 무리가 없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