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은 또 물 건너 가는가
쟁의행위에 대하여 과도한 손해배상을 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쟁의에 대한 기대이익을 포기하게 만들어버리는 게 현재 노조탄압의 주요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쟁의를 민사소송으로 가져가 조합 및 조합원은 물론 그 주변의 사람들 전부를 경제적으로 쥐어 짜는 건데, 이걸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도 한다. 이에 관해서는 훌륭한 논문이 있다.
김종서, "전략적 봉쇄소송 제어 방안: 비교법적 연구", 민주법학 제70호. 2019.07.
전략적 봉쇄소송은 기본적으로 민사소송을 그 수단으로 하지만 한국은 여기에 더해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죄를 물어 형사소송으로도 가져간다. 노동자들은 민형사상으로 옭죔으로써 쟁의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한다. 쟁의만 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 빌어먹을 손배가압류로 인하여 수도 없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살인도구인 것이다.
쟁의를 이유로 과도한 손해배상을 하도록 만드는 이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무력화한다는 거다. 법적으로는 그렇고 역사적으로나 정치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방식의 노동탄압은 근대민법의 3대 원칙이 수립되던 시기인 18세기 말엽으로 시계를 되돌리는 것이다.
사적소유절대의 원칙과 계약자유의 원칙이 신인류의 비전인 것처럼 시민혁명의 승리선언 옆에 자리하면서 노동자들은 합법적 착취에 시달렸다. 문명을 가장한 야만의 도구였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와서 노동권이라는 권리가 계약자유의 원리와는 다른 측면의 가치에서 조망됨으로써 이 도구는 폐기되었다. 한국의 손배가압류는 이 폐기되었던 야만의 도구를 21세기에 되살려놓았다.
최소한 이런 야만의 일부라도 억제하기 위해 발의된 법이 있었다. 소위 '노란봉투법'이라고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20대 국회에 계류된 이 법안은 발의일자가 2017년 1월 18일이다. 하지만 이 법은 이미 19대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발의된 바가 있었다. 19대에서도 발의되었지만 폐기되었던 이 법이 이제 20대에서도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2017157]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강병원의원 등 24인)
이 개정안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법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현행 법 체계 전반이 변경되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판례가 천명한 기준 자체를 바꾸진 못한다. 판례는 쟁의행위가 손배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는 쟁의 주체의 정당성, 쟁의목적의 정당성, 절차적 합법성, 행위의 합법성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대법원 2011.3.24.선고, 2009다29366)
그런데 현행 노조법을 보면 이건 실제로는 그냥 쟁의 하지 말라는 법이다. 대법원의 저 기준은 법 제37조 이하에 기초한다. 그런데 이 쟁의행위에 대한 법규정을 보면 쟁의를 하기까지의 조정과 전치를 거치는 등 기간과 절차가 복잡하고, 필수유지업무규정 등 쟁의를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이 규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이 노조법 덕분에 합법적 파업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더라도 여전히 파업을 어렵고, 손배는 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이 '노란봉투법'이 갖는 의의는 적지 않다. 이 개정안은 "집단적 행동에 따른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만 되더라도 손해배상의 짐을 개인이 떠맡아 안고 허덕이다가 떨어져 죽고, 목 매달아 죽고, 분신해 죽는 일은 없어질 수 있다. 최소한 개인에 대한 살인무기로서 손해배상의 위력은 현저히 떨어뜨릴 수가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 20대 국회는 이 법안을 처리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연말 지나고 나서 남은 임기 중 임시회의 몇 차례 열어서 일사천리로 통과시킬 때 어영부영 처리될 가능성도 있지만, 워낙 민감한 법안이므로 그렇게 쉽게 휙 지나가지는 않을 거다. 자한당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이 정부는 별로 의욕이 없는 것 같다. 스웨덴 따라배우자고 떠들지만, 정작 이렇게 노동자들의 이해와 직접 관련이 있는 제도의 개선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뭘 하자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촛불따위 백날 들어봐야 헛짓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